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레버넌트를 보았다. 'Revenant'라는 단어의 어원은, "back"을 뜻하는 re-와 "com"을 뜻하는 -ven- 이 합쳐져 '망령', '유령' 등을 뜻한다. 한국어판 부제인 '죽음에서 돌아온 자'로 받아들이면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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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첫 장면에서 숲에서 휴 글래스와 그의 아들이 사냥에 나서는 장면에 이어, 바로 인디언들 맞붙는 전투씬을 노골적이고 생생하게 보여준다. 전투장면 특유의 서스펜스가 루베즈키 촬영감독 특유의 롱테이크 기법과 자연광을 이용한 촬영방식을 통해 10분만에 몰입하게 만든다. 관객이 보기에 매우 생경한 1800년대라는 시간적 배경과, 겨울 숲이라는 공간적 배경에 쉽게 적응하게 만든 것이다. 전투씬이 꽤 잔인해서 "이거 15세 맞아?"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미국에선 R등급 판정을 받았다.
영화는 문명이 자리잡지 않은 오롯한 자연을 배경으로, 인간에 대해 탐구한다. 돈에 눈이 먼 이기적인 피츠제럴드의 배신과 우유부단하면서도 현실과 타협하는 브리저를 비롯하여 많은 캐릭터들의 인간성이 여실히 드러난다. 문명사회와는 달리 24시간 일거수 일투족을 남과 공유하는 자연 속에서 인간은 다름아닌 생존이 최우선이며, 그에 따른 행동은 즉발적이다. 그리고 인간도 하나의 동물인 이상, 인간성에는 동물적인 감각도 수반된다. 이는 레오의 모험을 통해 보여지는데, 대표적인 장면은 초반부 곰과 싸우는 장면이다.
곰과 싸우는 장면은 영화의 골자만 봤을 땐, 위기이자 사건의 발단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장면은 인간과 동물의 보편적인 특징을 보여주며, 이는 주제에 맞닿아 있다. 곰이 왜 휴 글래스에게 달려 들었는가. 주인공과 곰은 갑자기 만나지 않았다. 숲을 정찰하던 중 새끼곰 두마리를 발견하게 되고, 총을 겨누는데 이 장면을 굳이 롱테이크를 써서 보여준다. 그리고 큰 곰이 나타나서 휴 글래스를 덥친다. 곰의 공격성이 자식을 아끼는 마음에서 기인함을 알 수 있다. 결정적으로 주인공을 1차로 지지고 볶은 뒤, 자기 새끼들에게 다가가 괜찮은지 살피는 장면을 보여준다. 바로 이전 씬이 아들 호크에 대한 휴 글래스의 부성애를 보여준 장면이었는데, 이 두 씬에서 공통성을 보여줌으로써 자식에 대한 사랑이라는 기초적인 감정을 묘사한다. 여기에 더해, 원주민들 또한 딸을 찾기 위한 여정을 한다는 점을 영화 내내 보여주기까지 한다.
영화는 종종 로우 앵글을 이용하는데, 특히 때마다 나무를 비춘다. 바람이 한번 불지만, 나무는 끄떡하지 않는다. 영화에서 아들 호크는 속삭인다. "비바람이 몰아쳐도, 나무의 밑동이 튼튼하면 걱정 없어요." 글래스는 계속 이 말을 상기한다. 인간의 밑동은 다리라고 할 수 있다. 다리 뼈가 부러져 영화의 절반 이상을 포복으로 이동하는 글래스는 밑동이 잘린 나무로 보인다. 하지만 그의 진짜 밑동은 다리가 아닌 의지일 것이다.
단편적인 사건들을 통해 보여주는 회귀(revenant)들은 그의 의지로부터 비롯되었다. 그것은 무덤에서 무덤 밖으로부터 시작된다. 물과 땅을 넘나들며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기도 하며, 낭떠러지에서 대지로 가기도 한다. 이러한 점을 참고 했을 때, 죽음으로 상징되는 말의 사체를 가르고 내장을 꺼내어 그 안에서 옷가지도 걸치지 않은 채 자는 장면은 단지 자극을 주는 장면이 아니라 미학적인 효과를 준다. 다시 말해, 주제를 돕는다. 그래서인지 꽤 흥미로운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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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러닝타임이 길고, 따라서 좀 지루한 감이 있었다. 이냐리투 감독을 좋아하지만, 개인적으로 그의 영화를 볼 때마다 주제 의식에 집착하는 모습이 보인다. 내 메시지를 관객에게 각인시켜야 한다! 라는 강박이 느껴지는 것이다. 개별적인 씬에서 노골적으로 라이트 펀치를 날리진 않지만, 씬마다 잽을 계속해서 날리는 느낌이다. 다중 플롯을 즐겨 사용했던 그의 과거 때문일까? 하여튼 그러다 보니까 영화가 길고, 다 보고 났을 때 몇몇 장면은 빼도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버드맨>은 지루하지 않았지만, <레버넌트>는 조금 지루했다.
마지막으로, 배우들의 열연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나는 레오의 연기가 미간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미간을 찌푸리는 그의 표정은 한 인간의 내면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사태의 심각성에서 캐릭터의 심리 상태나 복잡한 생각 등이 절로 다가오는 것이 느껴진다. 채식주의자인 그가 생간을 먹는 장면에서 보여주는 리얼함도 연기에 대한 진정한 태도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디 형도 조연의 역할을 잘 해냈다. 얄미우리만치 계산적이고 비열한 캐릭터를 잘 소화했다. (보면서 워크래프트3 휴먼 유닛인 '라이플맨'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사진 첨부는 생략.)
끝없이 도전하는 이냐리투 감독과, 그래비티-버드맨-레버넌트를 잇는 루베즈키 촬영 감독의 앞으로의 행보도 궁금하고,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