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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그리드 Nov 03. 2023

지상파 예능은 어떻게 살 것인가

콘텐츠 카트 07

해당 글은 뉴스레터 '콘텐츠 카트' 로 발행한 글입니다.

누구보다 빠르게 읽으시려면, 여기서 구독 가능해요.


얼마 전 미국 박스오피스 1위로  화려하게 등장한 작품은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극영화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테일러 스위프트의 에라스 투어 콘서트를 담은 콘서트 실황영화였지요. 이 영화는 지금까지 미국 내 박스오피스 수익은 약 1.5억 불을 달성했고, 전 세계적으로는 2억 불이 넘었습니다.(10/30 기준)


실제로 테일러 스위프트의 공연은 미국의 소비자 물가와 GDP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미국 대륙을 들썩이게 하는 이벤트였죠. 스위프트는 올해 3월부터 지난달까지 진행한 1차 미국 투어에서 300만여 관객을 동원하며 1조 원이 넘는 티켓 수입을 올렸다고 하네요. 당시 티켓 예매 경쟁으로 예매를 하지 못했던 팬들의 수요가 영화관 개봉 이후 폭발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팬데믹 이후 공연 관람과 놀이공원 입장 등 엔터테인먼트 관련 비용이 급등하는 것을 펀플레이션(Fun+Inflation)이라고 부른다는데요. 이런 신조어가 생각날 정도로 직접 즐기고 놀 수 있는 ‘경험 소비’를 많이 한다는 소리가 되겠지요.


팬데믹 이후 콘텐츠를 소비하는 형태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영화관에서 공연 영상을 보고, 유튜브에서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OTT에서 영화를 보는 게 당연해진 세상입니다.




콘텐츠 소비 형태의 변화 

오늘은 지상파 프로그램, 특히 예능 프로그램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해요. 최근에 기다렸다가 TV에서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경우는 거의 드문 것 같습니다.  (최근 임영웅이 출연한 <놀라운 토요일>이 3.9%를 기록하면서 평소의 두 배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한 사례도 있지만요) 사실 동시간 시청률이 화제성과 일치되는 시대는 이제 아닙니다. 과거와 달라지지 않은 방식으로 책정하는 시청률의 시대는 지났다는 것은 이미 팬데믹  이전부터 나오고 있는 중론입니다. 시청론 무용론도 대두되고 있고요.


그만큼 사람들이 보지 않으니, 방송국들도 비상이죠.  디지털 광고 매출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것에 반해 방송 광고 매출은 코로나 이후로 눈에 띄게 줄고 있고요. 지상파와 PP(채널) 광고매출 모두 코로나19 이후 회복된 것으로 보이나 방송광고 경쟁력 약화와 디지털광고 시장 확대 영향으로 이전 매출 규모 이상으로 확대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겁니다.


60대 이상은 TV 의존도가 50%를 넘고, TV를 일상생활에서의 필수 매체로 인식하는 것에 반해 TV를 필수 매체라고 생각하는 1020세대의 응답 비율은 1.6% 밖에 되지 않죠.


게다가 최근엔 고령층까지 TV 시청시간을 줄이고 있다는데, 그 원인으로 TV에 의존해온 65세 이상 고령층이 스트리밍(OTT 플랫폼) 서비스를 이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해요.

위기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상파 예능의 몰락  

<무한도전>(aka. 무도)은 여전히 짤로 돌아다니고, Z세대에게도 ‘밥친구’로 불리고 있을 정도인데요.  이런 무도 같은 국민예능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까 말씀드렸듯, 시청률과 화제성은 비례하지 않으며 시청률이 절대적인 기준이 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예능을 소비하는 형태는 이제 처음부터 끝까지 틀어놓는다기보다는, 재미있는 부분을 잘라놓은 클립이나 짤, 혹은 누군가가 패러디한 온갖 영상들을 본 경우가 많아요.


세상엔 고퀄리티의 콘텐츠 너무 많은 상황에서 1시간이 넘는 예능프로그램을 시청하는 것은 꽤나 버거운 일입니다. 요새 주변에 이번주 <나혼산> 봤어? <나는 SOLO> 본 적 있어? <스우파 2>는?이라고 물어보면, “어, 나 그거 짤로 봤는데.”라는 대답을 많이 들을 수 있으니까요.


하다못해 볼 수 있는 플랫폼도 너무 많기 때문이에요. 화제성 1위인 <나는 SOLO>의 경우는 각 OTT에 비독점으로 팔린 덕에, 넷플릭스, 티빙, 웨이브, 쿠팡플레이까지 들어가 있습니다. 그 와중에도 2~3%의 시청률이라니 대단하긴 하네요.



MBC의 사과 - 힘의 균형이 무너지다

MBC와 하이브의 불편한 관계에 대해서 알고 계시나요?  2018년 연말 시상식을 둘러싸고 갈등이 불거진 후로. 하이브 소속 가수들을 MBC에서 볼 수 없었죠. 그러던 MBC가 하이브에게 4년 만에 사과의 제스처를 보냈습니다. MBC가 먼저 고개를 숙였고, 하이브가 이를 받아들인 것입니다. MBC 입장에선 수많은 K-POP 아티스트를 거느린 1위 엔터회사 하이브와 언제까지고 척을 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비단 연말 시상식, 음악 방송, 예능과 같은 TV 방송 프로그램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바로 유튜브, 그러니까 디지털 콘텐츠 때문인데요. 아이돌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무척 크죠.


MBC는 ‘MBC kpop’이라는 케이팝 전용 채널을 운영하고 있고, 구독자수가 1000만이 넘는 메가채널이죠. 여기에는 음악방송 이후의 온갖 직캠들과 자체 콘텐츠들이 올라오고 있어요. 각 방송사마다 비슷한 채널을 보유하고 있는데요. KBS는 ‘KBS kpop’(구독자수 829만 명), SBS는 ‘스브스케이팝 X INKIGAYO’(구독자수 774만 명)을 운영 중입니다.  CJ ENM은 Mnet K-POP이라는 2000만 명이 넘는 채널뿐 아니라, ‘스튜디오 춤’이라는 케이팝 아티스트들의 퍼포먼스를 중심으로 한 채널을 운영하고 있고요.(구독자수 482만 명)


방송국의 디지털 콘텐츠에 대한 의존도가 점점 커져가고 있습니다. 이런 전략의 뒤에는 적은 제작비로 짭짤한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점, 젊은 제작진들의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트렌디한 콘텐츠를 도전해 볼 수 있는 장이라는 점에서 메리트가 있죠. 게다가, 콘텐츠들의 주요 수익원 중 하나인 간접광고(PPL) 규제가 방송 콘텐츠에 비해 덜한 것도 장점이고요. 일단 채널이 커지기만 하면, 광고 단가의 경우 OTT인 티빙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콘텐츠 제작비는 압도적으로 차이가 난다고 해요. 방송국들은 수년 전부터 기존 인기 있는 IP를 유튜브에서 스핀오프 형식으로 편성한다던지, 유튜브에서 시험한 콘텐츠의 주인공을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시키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해오고 있습니다


유튜브로 간 예능

대학내일이 운영하는 뉴스레터 캐릿에 따르면, 2023년 상반기 Z세대가 가장 재밌게 본 유튜브 채널 1위는 MZ대통령 이영지의 '차린 건 쥐뿔도 없지만' 이었다고 해요. 


이 ‘차쥐뿔’에 기획으로 참여한 인물은 KBS2에서 ‘해피투게더’를 연출한 김광수 PD인데요! 그는 ‘조현아의 목요일 밤’ ‘뱀뱀의 뱀집’ ‘이용진·이진호의 용진호건강원’ ‘몬스타엑스 형원의 채 씨 표류기’ 등의 크레딧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어요. 그는 “이제 예능 프로그램의 판은 완전히 유튜브로 넘어왔다. 콘텐츠 플랫폼의 구조가 완전히 바뀌고 있어요. 방송사에는 위기, 콘텐츠 제작자들에겐 기회"가 될 거란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제약이 없고, 트렌디하고, 실시간 반응까지 반영할 수 있는 유튜브야 말로 예능에 최적화된 채널이라는 거죠.



예능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유튜브의 인기 급상승 동영상을 보면 이게 유튜브인지, TV 방송 프로그램표인지 헷갈릴 정도로 이제는 익숙한 기존 예능인들이 유튜브를 점령한 것을 볼 수 있어요.

유재석의 핑계고, 신동엽의 짠한 형, 박명수의 할명수, 탁재훈의 노빠꾸탁재훈, 장도연의 살롱드립 등 본인들이 가진 정체성을 활용한 토크쇼 기반의 웹예능이 넘칩니다.



그래서 어떻게 될까? 지상파+ 가 살아남는 법


1. PPL 이 구원투수일까?

유튜브 콘텐츠의 수익구조는 TV와 유사합니다. 조회수를 통해 구글로부터 받는 광고 수익(방송으로 치면 TV 광고 수익)과 제작지원(PPL)로부터죠.


유튜브 콘텐츠의 PPL 비용은 수천만 원에서 억대까지 가지각색입니다. 2020년 자료이기는 하지만, 구독자수에 따라, 형식에 따라 광고금액이 천차만별인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중간 수수료를 떼는 구조긴 하겠으나, 조회수 수익 외에 PPL으로 조달되는 제작비의 비중이 상당하단 소리입니다. ‘먹을 텐데’의 성시경은 “지상파 프로그램 2.5개 하는 것과 비슷” 하다고 말하기도 했죠.  최근엔 인기 채널의 경우, 한 콘텐츠에 두 가지 PPL을 집행하기도 합니다.


영화, 드라마 등 홍보를 위해 술 마시면서 토크를 나누는 웹예능에 나온다고 가정해 봅시다.  웹예능 측은 주류업체로부터 PPL을 받아 해당 술을 콘텐츠를 홍보하러 나온 게스트와 함께 마시는 컨셉으로 내용을 구성할 수 있죠. 주류업체와 영화드라마 측으로부터 모두 광고비를 챙길 수 있는 구조입니다. 꼭 다양한 PPL로 제작비를 충당하는 TV 드라마와 유사한 것을 볼 수 있어요.


드라마의 제작비는 방송국에 제작단부터 납품하느냐,  OTT 오리지널로 판매하느냐, OTT (비) 독점 납품 + TV 방송하느냐에 따라 수익 구조가 천차만별인데요. 콘텐츠 투자 열기가 활발했던 2020년 자료라서, 지금은 마진 금액이 훨씬 줄었다는 얘기가 있지만 참고해서 볼만합니다. 보면, 제작비의 10-20% 정도를 PPL에서 충당해서 마진을 남기는 형태죠.



방송사의 경우 제작비를 광고 매출에서 충당하는데, 전체 매출의 30% 이상을 광고에 의존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이 비율이 점차 줄어드는 추세라고 합니다. 그래서 대안으로 새로운 광고 형태가 필요하며, 그중 ‘PPL 광고’를 활성화시키는 것이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태생 자체가 유튜브처럼 제작비를 줄일 수도 없고, 방송 광고 매출은 점점 떨어지므로 다른 형태의 광고를 고려해야 한다는 이야기인데요.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효과적일지는 의문이긴 합니다.



2. 방송국이 아니라 제작사?


피지컬:100 , 나는 신이다, 좀비버스, 코미디 로열.

모두 넷플릭스로 오리지널로 서비스되거나 될 예정에 있는 작품들입니다. 위 작품들의 공통점이 있는데 모두 MBC 혹은 MBC 출신들이 만들 프로그램이라는 점이죠.

<피지컬:100>과 <나는 신이다>는 MBC 시사교양본부 PD들이 만든 작품이죠. <피지컬:100>을 만든 장호기 MBC PD의 인터뷰에 따르면 해당 기획서를 본부 파일럿 프로그램 공모전에 기획안을 냈으나 시사교양 정규 프로그램으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고 MBC 편성이 막히자 내부 승인을 받아 넷플릭스에게 제안한 후 넷플릭스 오리지널로서 해당 프로그램을 제작했다고 합니다. <나는 신이다>의 선정성 등으로 논란을 일으키긴 했지만, 방대한 자료를 가진 MBC + 심의에 보다 자유로운 넷플릭스의 협업으로 가능했던 콘텐츠였지요.


<좀비버스>(박진경 PD)<코미디로열>(권해봄 PD)의 경우 MBC 출신이자, 현재는 카카오TV 소속인 PD들이 제작한 콘텐츠입니다. 카카오TV는 이름 있는 크리에이터들을 채용해서 오리지널 미드폼 드라마, 예능 등을 공격적으로 제작했는데요. 그러나 다른 OTT에 비해 존재감이 약했고, 콘텐츠를 점차 외부 채널에도 공급하는 등 전략이 애매해지면서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 사업을 중단했습니다. 그 후로, 이제는 ‘스튜디오’ 로서 내부 인력을 활용하여 콘텐츠를 제작하는데 주력할 것으로 보여요.


몇 년간의 콘텐츠 부흥기를 지나 점차 콘텐츠를 선보일 수 있는 창구가 줄어가면서, 넷플릭스만 바라보고 있는 상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큰데요. 지상파마저도 넷플릭스의 하청기지화되는 게 아니냐며 걱정하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  박성제 전 MBC 사장은 ‘지상파 채널을 소유한 글로벌 미디어 그룹‘으로 MBC를 규정하면서  OTT 진출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고 답하기도 했습니다.


매출 위기를 겪고 있으나 제작 역량이 있는 지상파와 양질의 콘텐츠 수급이 필요한 넷플릭스가 서로의 니즈가 충족되어 <피지컬:100>이나 <나는 신이다> 같은 결과물이 나왔지만, 지속성에 대해서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지상파 내부에서도 이에 대한 조직적인 성과라기보다는 PD 개인의 역량에 따른 결과로 보는 의견이 있는 데다가, 이를 사업적으로 어떻게 확장할 지에 대해 고민하는 단계로 보여요. PD 입장에서는 기회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자신의 작품을 알리고, 그를 발판으로 이적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인력 유출 이슈도 있을 것 같고요.


MBC 간판인 김태호 PD가 ‘TEO’라는 제작사를 차린 후, 정종연 등의 스타 PD들을 모아 유튜브, OTT 등에 다양하게 콘텐츠를 제작하고 납품하고 있는 상황을 통해 보면 가능성이 없는 일은 아닐 겁니다.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지상파라는 성곽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 속도가 매우 빨랐죠. 시작은 종편이었고 그다음은 유튜브 그리고 넷플릭스였습니다.


지상파에서 갈고닦은 크리에이터들은 OTT, 유튜브 등에 양질의 콘텐츠를 공급하는 주요한 자양분이 되고 있습니다. 특히 메타코미디로 유명한 피식 대학, 숏박스 같은 채널들은 지상파 출신 코미디언들이 뭉쳐서 만든 채널인데요. 팬데믹 이후로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이 사라지면서 갈 곳 없어진 개그맨들이 유튜브에서 터를 잡아 성장한 것이죠.코미디 채널들이 유튜브에서 유독 강세인 이유는 “지상파에 존재하는 각종 규제로부터 자유롭고, TV처럼 시청자 층이 폭넓지 않아 윤리적 비난에 대한 부담 없이 자유로운 개그" 가 가능해서라고 하죠. 


지상파는 엄격한 방송법을 준수해야 합니다.  심의 기준을 따라야 하는 데다 제작비도 높으니 리스크를 회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규제는 지상파를 자체검열하도록 만들었지만, 그만큼 권위를 세워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과 같이 바뀐 환경에서 왜 우리만 가지고 그러냐, 규제를 완화해 달라고 외치는 지상파의 요구가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닙니다.

최근  SBS는 예능본부를  따로 분사한다고 밝혔죠.  몇 년 전 타 스튜디오 S로 드라마본부를 분사한 것과 유사한 목적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드라마에 이어 예능까지 제작 후 외부에 납품하는 독립된 제작사를 육성하겠다는 뜻입니다. 


지상파는 앞으로 어떤 길을 가게 될까요?





*뉴스레터 '콘텐츠 카트' 로 발행한 글입니다.

콘텐츠 카트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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