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영화 데이트
유난히 고된 한 주를 보낸 날들의 주말에는 나와 아내 모두가 쓰러지 듯 누워만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아내는 부지런해서 자꾸 일어나 무언가를 하며 보내려고 하고 나는 그런 아내를 자꾸만 데려와 쉬자고 한다. 더욱이 우리 부부는 모두 집순이, 집돌이 성향이기 때문에 주말에 집에 있는 게 매우 행복한 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너무 집에만 있으면 답답하기도 하고 또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시간을 보내기만 하면 왠지 시간을 허비한 것처럼 느껴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그런 우리에게 최근부터 소소한 취미가 생겼다. 월에 한두 번 주말 저녁에 함께 OTT로 영화를 보는 것이다.
에게? 겨우? 싶을 정도로 흔하고 특별할 것 없는 취미일지 모르겠지만 여러 시도를 거쳐 다다른 또 하나의 시도이다. 영화야 정말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취미인 것은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우리 부부는 둘 다 문예창작을 전공했기에 스토리텔링에 관심이 많은데 그것을 시각화한 영화도 좋아하는 것이 공통점이다.
다만 우리는 각자 영화를 보는 것보다 ‘함께’ 영화를 보는 것을 즐긴다. 그것은 비슷하지만 분명 다른 활동이다. 아내는 온전히 2시간을 내내 나와 함께 꼭 붙어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영화를 함께 보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나도 물론 그것이 좋다. 나와 아내가 하나의 공통된 무언가를 공유하면서 함께 생각을 나누는 것이 좋다. 때론 같은 생각에 맞장구를 치기도 하고 때로는 정반대의 생각에서 논쟁하는 것들은 내가 아내와 함께 영화를 보는 걸 좋아하는 이유다. 아내는 매우 똑똑해서 다양한 지식도 가지고 있고 매우 논리적으로 타당한 근거를 제시하며 대화하기 때문에 머리가 시원해지는 느낌이 들어 좋다.
영화를 보는 내내, 또 본 이후에도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잠자리에 드는 요즘에서야 그동안 얼마나 사는 것에 급급했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나의 생각과 다르게 회사에서는 내 삶을 허물면서까지 더 열심히 일 할 것을 원한다. 내가 직장에서 일을 하는 것은 내 삶을 지속하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함이지 나를 소모해서 회사를 성장시키기 위함이 아니다. 하지만 자꾸 몰아붙이는 상황에서 결국 나는 휘둘리며 중심을 잃을 때가 많다. 회사보다 가까운 가족에게 양해를 구하면서 지내게 되었다. 아내와 강아지와 보내는 시간을 자꾸 줄여야만 겨우 지낼 수 있었다.
나는 아내와 얘기할 때 종종 영화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돈이, 회사가, 성공이 태풍처럼 몰아치는 세상 속에서도 어디엔가 존재하지 않을까 싶은 평화로운 삶을 꿈꾸고 욕심을 내려놓고 실제로 살 수 있는 삶. 시시하고 재미없을지언정 조금 더 행복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아내와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