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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필 Mar 01. 2024

한 번도 못 했던 일

반갑기 때문에

대학을 졸업하고 벌써 5년이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나는 글에서 도망치 듯 살아왔다. 문예창작을 졸업하고 사회로 나가면서 어떤 친구들은 계속해서 글을 쓰고 또 어떤 친구들은 영영 책과 글을 쳐다도 보지 않게 된다. 내 경우에는 글을 쓰는 게 싫기도 했고 사실 무섭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계속해서 평가받고 나 또한 평가하는 수업에 익숙해져 자유롭게 쓴다는 느낌을 잊어버린 것 같았고 동시에 누군가가 내 글을 봐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제 진짜 혼자라는 것을 자꾸만 상기시키는 것 같아 두려웠다.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졸업한 후에 학교 앞에 집을 구했다. 산책 삼아 걸으면 10분 정도 안에 다다를 수 있는 거리. 학교에서 영영 제명되어 버리는 것 같아 물리적 거리감이라도 좁히고 싶었다. 내가 저 학교를 졸업했고 나는 글을 썼었다는 것을 계속 상기시키기 위해.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정말 짧고 달콤했던 꿈을 꾼 것처럼 그간의 일들이 순식간에 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역시, 나는 그동안 정말 좋은 꿈을 꾼 거였구나. 오히려 그쪽이 믿기가 수월했다.


  그 뒤로 나는 회사에 들어가 돈을 벌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고 그 사람과 조금 더 미래를 그려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안정적인 수입이 생기면 그 안에서 계획을 세울 수 있고, 계획을 세우면 마치 정말 그것이 이루어질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결국 월급이라는 시스템에 편입해야 했다.


  우연히 나는 아내와 함께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면서 학교로 가게 되었다. 매년 초에는 학교 입구에 신춘문예 당선 또는 수상한 내용을 현수막으로 제작해 걸어두는 전통이 있다. 나는 그 사람들의 학번과 이름, 당선된 장르 등을 보면서 나의 학번보다 얼마나 빠르거나 늦는지, 얼마 만에 당선이 됐는지 세어보곤 했다. 나에게 얼마나 시간이 남았는지, 나는 얼마나 늦었는지 속으로 세며 자학하는 못난 행동을 했었다. 그래서 사실 현수막을 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자꾸만 눈이 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얼마 전에 우연찮게 밤산책으로 들른 학교 입구에서 낯익은 이름을 발견했다.


  나와 가깝게 지내던 친구의 이름이 현수막에 적혀 걸려 있었다. 나는 너무나 반갑고 기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제야 한 번도 다른 사람의 등단 소식을 기뻐해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친구의 등단을 축하하기 위해 가까웠던 친구들과 몇 년 만에 만났다. 대부분은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등단한 그 친구는 여전히 유쾌하고 밝고 친근했다. 엊그제 보고 다시 만난 것처럼 이질감 없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왔다.


  누군가의 잘 됨을 보는 것은, 특히나 나와 경쟁 상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잘 되는 것을 보는 것은 힘들다. 그 마음은 스스로를 계속해서 갉아먹는다. 하지만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다르다. 내 사랑의 대상이 잘 됐다는 소식은 그 어떤 것보다도 반갑기 때문에 진심으로 축하할 수 있다.


  나도 다시 글을 쓴다. 이제는 어떠한 명예나 보상 없이도 다시 쓸 수 있게 되었다. 누구에게도 스스로를 비교하며 비하하고 싶지 않고 나 자신을 인정해 줄 수 있는 용기도 생겼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글을 쓰며 각자의 삶의 모양으로 잘, 지낼 것이다. 서로를 응원해 줄 수 있다면 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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