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처음으로 혼자 목욕했던 날
신랑은 항상 내게 말한다.
- 좀 내려놓는게 어때??
그럴 때마다 도대체 뭘 내려놓으라는건지 나는 의아함을 넘어 솔직히 불만스러웠다. 내가 남편에게 혹은 아이에게 갖는 관심은 당연한거 아닐까? 가족과 살림말고는 딱히 다른 일도 없는 전업주부인 내게 자꾸 내려놓으라는 잔소리처럼 들리는 조언은 뭐랄까...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말처럼 서운하게 들릴뿐이다.
지방살이 3년차,
서울태생, 30년을 넘게 서울에서만 살다가 남편의 새로운 일 덕분에 지방에 내려오면서 오롯이 남편과 아이만 보고 살게 된게 누구때문인데란 원망아닌 원망도 해보면서 처음 1년간은 사람을 사귀어보려고 애썼지만 텃새에 시달리기도하고, 지방 소도시에서 기대하기 힘든 대도시의 익명성과 그것을 뛰어넘는 지나친 관심에 점차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피로감보다는 우리세식구, 우리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집중하는 것이 나의 즐거움이 된 나였다.
그래서 어쩌면 나의 이러한 가족에 대한 집중과 관심은 남편이 느끼기엔 집착, 아이가 느끼기엔 귀찮음으로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걸 모르지 않기에, 남편의 말 한마디는 뜨끔하기도 혹은 너무 씁쓸하기도하다.
나의 하루일과중에 가장 마지막에 하는 일, 그리고 꼭 하루도 빼먹지 않고 의식처럼 하는 일이 아이를 씻기는 일이다.
요즘은 아이가 어릴때는 남편이 씻겨주기도하고, 도와주기도 하는 집이 많다던데 바쁜 남편덕분에 신생아때부터 항상 혼자 아이를 씻겨왔고, 또 아이가 어릴적 아토피도 있었어서 하루도 빠짐없이 (잠든 아이를 깨워서라도) 꼭 목욕을 시켰다. 아이가 커갈수록 샴푸 따로 컨디셔너 따로 써서 머리를 감겨주고, 바디워시에 페이스워시에 아이전용수건으로 물기를 닦은 후, 로션을 바르고 옷을 입힌후에 또 한참을 길고 긴 머리를 드라이해주고나면 나는 땀으로 샤워를 하과 진이 빠졌다. 내 몸이 아파서 하루쯤 남편에게 부탁하고 싶다가도 왠지 모르게 조금씩 커가는 딸을 목욕시키기는 좀 어려운지 도와주지 못하는 남편이 밉다가도 그래 이 일은 내 일이지란 마음으로 아이를 깨끗하게 씻기고나면 그렇게 또 뿌듯할 수가 없다.
그런게 내 일이고 내가 우리가정에 기여하는 일이고 더 나아가 내 존재의 이유지.
라고 생각하고 점차 전업주부의 프로패셔널을 지향하고 있는 요즘 내게 우리딸 제이가
- 엄마, 나 이제 목욕 혼자해보고 싶어
란 말은
남편이 나에게 좀 내려놓는게 어떻겠냐고 매일같이 말하던 그 서운하고 얄미운 말보다도 더욱 더 짙고 깊게 마음을 이상하게 눌렀다.
- 왜? 엄마가 씻겨주면 편하잖아
- 그렇긴한데 이제 나도 6살이고, 1층 언니는 혼자 씻는데. 그래서 나도 이제 혼자 씻는 연습을 좀 할래
공교롭게 며칠전 다녀온 아동성폭력예방 부모교육강좌의 강사님이 아이가 6~7살이 되었다면 엄마 속이 터져도 아이가 혼자 자신의 몸을 씻을 수 있게 교육하고 기다려주어야 한다고 했었다. 그래야 아이들이 자신의 몸을 관찰하고 더 자세히 알아가며 그 과정은 아이가 자신의 몸을 소중히하고 그래서 타인의 몸도 소중하다는 것을 배워가는 과정 중 하나라 했었다. 그 강의를 들을때만 해도 그래 그건 알겠지만 우리 애는 아직 어려서 초등학교나 가야 가능한일일텐데, 그 강사는 애를 키워보긴한건가? 너무 이론적으로 말하는거아냐? 하는 생각을 했던 나인데... 내 아이가 먼저 혼자 씻겠다고 한다.
그래놓고나니 딱히 반박할 여지도없이
- 그래, 그럼 씻고 나와서 머리 말리는 것만 엄마가 도와줄께.
아이가 너무 좋아한다. 벌써 어른이 된마냥 거울을 보며 샤워를 즐긴다. 어디선가 본건 있는건지 머리를 흥얼거리며 기분좋게 샤워를 차곡차곡 해낸다.
중간에 컨디셔너가 잘 안나와서 나에게 한번 도움을 요청하긴 했지만, 옷까지 다 입고나서 머리를 말리려고 보니 머리가 잘 안 헹구어져서 결국엔 다시 샤워를 하긴 했지만 아이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혼자 잘 씻고 나왔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아이가 많이 컸구나 하는 기특함과 함께 지금은 샤워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씩 더 내 손이 많이 필요하지 않겠지. (그러고보니 몇일 전부터 혼자서 머리를 묶을 수 있게 된 것도)
어느샌가 정말 나는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 “내려놓기”를 해야하는구나, 해야만하겠구나.
그 때가 되어서 의연하게 내려놓지 못하면 나도 참 힘들 수 있겠구나.
아이가 조금 구석구석 닦지 못하고 나온다하더라도 혼자 샤워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칭찬받을 만한일인 것처럼 그렇게 사소한 것부터 시작되는 나의 내려놓기.
모처럼 쉬는 날, 아이가 가족이 아닌 친구들과 놀고싶다 하더라도
친구가 놀러온날 아이가 살짝 방문을 닫고 논다해도
엄마가 사다주는 옷이 아니라 친구들과 함께 옷을 사러간다해도
남자친구가 생긴다해도
결국엔 내려놓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