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월드가 부활한다고?

나의 20대 속에 들어있는 그 아이는...

by 팜므홍

요즘 2005년에 머물러 있다는 어느 유튜버가 인기이다. 그 영상을 찾아보다가 익숙하게 들려오는 기타 연주로 시작하는 그 노래... 프리스타일의 Y.

내 나이 또래라면.. 누구나 아는 그 노래에 어찌나 가슴이 쿵쾅거리듯 설레든지. 정말 오랜만에 가슴이 쿵쾅거렸던 것 같다.

내 20대의 기록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싸이월드의 BGM 이였다. 아마도 나뿐만은 아니겠지? 그러니 지금까지도 대표 BGM으로 회자되는 것이겠지.


스무살이 되던 해, 대학에 입학하고. 같은 학번, 같은 과의 그 아이를 좋아하게되었다.

처음엔 장난스럽게 시작했다. 음... 그 아이는 늘 어두운 표정으로 어두운 옷을 입고, 누가봐도 나는 힙합을 좋아해 라는 스웩으로 아웃사이더처럼 다녔으니까. 늘 밝은 기운을 뿜어내는 것이 미덕이라 여겼던 스무살의 나에게 있어서 재미난 먹잇감(?) 이었다. 짖궃게 장난을 친것도 먼저 말을 걸게 된것도 내가 시작이였다. 어두었던 그 아이의 표정에서 그 특유의 매력적인 눈웃음을 만들어내는게 기뻤고, 그 기쁨이 좋아함... 그리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어진게 아닐까?

우리는 그렇게 캠퍼스커플 이 되었다. 대학생이 되던, 어른이 되던 그 해의 여름은 그래서 더 반짝반짝 빛났던 것 같다.


우리의 첫 데이트.

는 종로였다. 영화를 봤는데, 그 제목이 아직도 기억난다. “동승” 어린 동자승들의 이야기였던가? 내용이 뭐 중요하겠어.

아주 쓴 아메리카노를 좋아하고, 힙합을 좋아하고, 그래피티를 끄적이는 것을 좋아하던 그 아이...

함께 홍대 NB 라는 클럽을 종종갔었다. 그 곳에서 일하는 친구가 있었던 까닭도 있지만 우리 둘다 힙합을 좋아했다. 둠칫거리는 음악에 뉴에라 모자를 가지고 재간둥이 처럼 춤추던 모습, 가수 팀의 “사랑합니다” 노래를 정말 잘 부르던 모습.

작고 귀여웠던 스쿠터를 타고 북악스카이웨이를 드라이브 하거나, 우리집에서 인천까지 엉덩이가 아플 만큼의 거기를 간 적도 있다.


팍스아메리카를 배우던 그 때에 세상에 중심이 곧 우리가 될 거라고 자부하던 그 아이였다. 아버지에 대한 상처가 깊었던 그 아이를 나는 참 많이 사랑했다. 나의 밝은 기운으로 항상 웃게 해주고 싶었지... 그러던 어느날 그아이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사흘을 꼬박 그 아이 옆에서 지켰던 기억이 있다. 참으로 슬퍼하던 그 아이의 얼굴과 눈이 지금도 생각난다. 그 아이의 가족이 모두 새로운 곳으로 이사하고 자리잡을 때 나를 포함한 친구들이 함께 했던 사진이 있다. 그 사진들도 싸이월드 어느 페이지 한 곳에 머물러 있겠지.


20대의 젊은 남녀의 연애가 그러하듯 우린 참 많이 싸우고 다투기도 했지만 대체로 가장 뜨거웠고, 설레였던 그 시절으로 기억난다.

지금, 그때를 생각해보면 치열하게 싸우던 그 때 마저도 사랑스럽게 기억나는 건 젊은이의 사랑은 다 그렇기 때문이 아닐까


해병대에 입대를 했다. 지금도 기억난다. 905기.

해병대 검사를 받으러 가는 날, 함께했는데 아주 긴 시간동안 나는 그아이를 기다릴 정도로 모든 것을 함께 하고 싶었다.

그가 입대후, 나는 내 눈물을 비커에 모아보겠다고 난리를 부렸고, 한달여 정도 미리 예약해놓은 문자들이 왔다. 그 문자들도 싸이월드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오늘은 내가 입대한지 3일이 지난날이야, 너는 아직도 울고있겠지?”

“일주일 정도가 지난 너는 잘 먹고 잘 지내는지 궁금하다.”

같은 내용들이 문자로 올때마다 세상 무너져 내린, 정말 진짜 전쟁에 연인을 떠나보낸 어느 영화속 여주인공 처럼 엉엉 울었던 그 나날들....

그 어떤 로맨스영화보다 달달하고 절절한 기억들인지 모른다.

매일 편지를 썼고, 노랑색 편지봉투에 보라색 테이프를 둘렀던 편지는... 800통이 넘었던 것 같다.

그아이가 휴가를 나오고 돌아가는 길의 기차역에서 제복을 입은 그 아이가 나를 와락 껴안고 기차에 올랐던 그 순간을 우연히 지나가던 어느사진작가가 사진으로 남겨주었다. 그 아이의 어머니와 함께 포항을 같던 일... 나를 보며 참으로 기뻐하던 그 아이의 얼굴도 영화 속 한장면을 여러번 돌려본 것 처럼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제대 후, 많은 것들이 바뀌어있던 건 당연하거겠지

나는 졸업을 앞둔 4학년이고, 그 아이는 이제 다시 대학생이 되어 갈길이 먼 순간이었으니까

우리의 이별은 당연한 순서고, 그렇게 헤어졌다. 나의 첫 인턴생활을 응원해주기 위해 아침 출근길에 스쿠터를 타고 내가 탄 버스를 따라서 압구정까지 오던 그 아이는 참 로맨틱했지. 꽃을 선물하고, 편지로 마음을 표현할 줄 아는 아이였으니까.


크리스마스 이브날, 명동역에서 헤어졌다.

헤어진 것도 진짜... 하하하! 로맨틱의 끝이었다. 어머니께 데이트비용을 받았다며 둘이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고,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우리는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나는 취업전선에 뛰어든 졸업생이고, 그 아이는 아직도 대학생이었던 동갑내기 커플이었으니까.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려고 명동역에서 나는 전철을 탔고, 그 아이는 갑자기 승강장에 멈추어서 지하철을 타지 않은채 나를 바라봤다.

나도, 그 아이도 서로 무슨 일인지 알 것 같은 표정으로 그렇게 지하철의 문이 닫혔고,

우리는 헤어졌다. 5년의 연애가 끝났다.


다시는 여자를 만나기 않겠다고 맹세하던 아이는 다음 해에 바로 신입생과 복학생의 연애를 시작했다고 한다.

너무 연락하고 싶어 죽겠던 그 때의 나는 핸드폰 번호를 바꾸었다.


내가 결혼 하던 때에 나와 굉장히 친하게 지내던 그의 어머니가 축의금으로 50만원을 그 아이를 통해서, 그 아이는 같은 과 친구를 통해서 보내려다가 어린 여자친구의 엄청난 난리속에 포기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참 웃었다. 그리고 다른 건 몰라도 그 어머니의 깊고 또렷한 그 눈동자가 참 그리웠다. 무척 아름답고 현명한 분이셨는데... 강인한 분이셨고, 우리 둘은 많은 것들을 함께 했었다. 인사동을 참 좋아하셨던 분인데...

친구들의 결혼시기가 있던 때에 오며가며 마주쳐서 안부정도는 물었는데,

지금도 간간히 소식은 들린다.


나의 뜨거웠던 20대 초반의 전부는 그 아이가 아닐까?

직장생활을 시작하자마자 지금의 남편을 만났고, 그 아이와는 참 많은 부분이 다른 지금의 남편을 다른 방식으로 사랑하게 되어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는 인생의 전부가 되었지만

음.. 지금은.. 나는 그 아이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그 뜨겁고 건들면 터질듯한 찬란했던 사랑이야기가 나의 이야기고, 그 덕분에 한번씩 꺼내볼 수 있는 아련한 로맨스가 내게도 있다는 것이...


싸이월드는 그런 것 같다.

그 순간의 날것들이 모두 들어있고, 그러기에 꺼내보고 싶은 시간들이 있다.

그 날의 그 때의 나를 보고 싶은 날이 있다.

싸이월드가 부활하는 날은 하루종일 추억에 젖어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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