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고 싶어도 곧 알게 될 거예요.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너한테만 하는 말인데,"
"이거 비밀인데,"
"이거 아무도 모르는 건데,"
회사에서 자주 듣는 말이다.
비슷한 말을 들을 때마다 속으로 항상 생각한다.
"모두가 알고 있겠구나"
회사에 비밀은 없다. 이건 정말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느슨하고 긴밀한 관계들이 주렁주렁 얽히고설킨 곳이 회사이다. 매출 규모에 따라 임직원 수는 각기 다르겠지만, 적으면 적은 대로 많으면 많은 대로 '비밀'이라는 것이 '회사'라는 공간 안에서 지켜지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거 00님한테만 특별히 이야기하는 건데," - 특별한 '다수'의 관계들
이런 식의 말은, 화자에게 특별한 사람이 N명이라면 N명 모두에게 똑같이 나갈 확률이 높다. A에게만 특별히 이야기하는 건데, B에게만 특별히 말해주는데,... 하는 식으로 말이다. 실제로 독점적 정보이며, 특별한 관계이기에 일러주는 것도 사실일 수 있지만, 그게 나만 아는 유일한 정보는 아닐 가능성이 크다. 누군가 나에게 저 말을 하며 비밀을 얘기해 줬다면, 특별한 사람이 나 혼자는 아닐 거라고 생각해봄직 하다. 이런 건 특히 상사가 부하직원에게 하는 경우도 많이 본다. 특별 대우의 느낌으로!
"이거 아무도 모르는 건데," - 정보의 '권력'화
소수만 알 가능성이 높은 고급 정보는 회사에서 마치 권력처럼 여겨지기 쉽다. 발이 넓을수록, 회사 안팎으로 돌아가는 사정을 잘 알 수록 고급 정보를 얻을 확률은 높아지기 때문에, 그런 정보를 갖고 있는 사람의 어깨는 의기양양하게 치솟는다. 정보를 습득하고 있다는 사실로써 높아진 권위는 남에게 본인이 그 정보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면서 내세워진다. 그 사람 주변으로 자연스레 사람들이 몰려든다ㅡ권력처럼 여겨지는 정보를 하나라도 더 공유받기 위해서. 그 과정에서 소문은 절로 퍼지게 된다.
"엄청난 소식을 들었어" - 따분한 회사 속 '도파민'
9 to 6, 특별할 것 없는 루틴을 기반으로 돌아가는 회사는 기본적으로 지루한 곳이다. 같은 일의 반복인 일상에서 누군가 들고 오는 핫한 정보는 단조로운 삶의 단비 같은 존재가 된다. 매일 같은 사람과 마주 보며 밥 먹고 회의하는 와중에 '신선한 뉴스'를 공유하며 흥미를 느끼고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그렇게, 출처를 모르는 소문들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둥둥 떠가며 마치 가십처럼 퍼지게 된다.
"너 그거 알아?" - 동질감과 '유대감' 맺기
때때로 소문은 회사 안 사람들이 사회적 상호작용을 맺기 위한 매개체로 쓰인다. 공통된 정보를 공유하면서, 화자와 청자는 깊은 유대감을 형성하며 이는 소속감으로 이어진다. 은밀하고 독점적인 정보일수록, 그것을 나누는 사람들의 심리적 거리감은 일상적인 정보를 공유할 때보다 훨씬 더 가까워진다. 만약 친해지고 싶은 대상이 있다면, 그와 친밀해지기 위한 수단으로써 내가 아는 정보를 사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정보가 권력으로, 무료한 일상의 활력소로, 누군가와 친해지기 위한 장치로 쓰이게 되는 회사에서 소문은 날개를 달고 퍼져나간다. 당신이 알고 있는 어떤 비밀을 당신에게 최고로 특별한 누군가에게만 살짝 귀띔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 누군가는 마찬가지로 본인이 특별하다고 여기는 관계에게 그 비밀을 일러줄 지 모른다. "너한테만 말하는 거야,"가 마치 돌림노래처럼 연속해서 일어나는 것이다.
특히 인원이 많은 회사에서는 정보의 비대칭성이 만연하므로 자주 익명성이 보장된다. 회사에서 소문을 말하면서, 그 시작이 어디인지 내가 그 정보를 어디서 들었는지까지 말하는 경우는 드물다. 저연차 때는 거기에 집착할 수도 있지만 (이거 누구한테 들은 거야?), 연차가 쌓이면 그런 것은 무의미해진다. 시작이 어디인지 보다는, 그게 결국 나에게까지 흘러 들어왔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아무튼 간에 하려던 말은 회사에 비밀은 없다는 거다.
당신이 간직하고 싶은 어떤 비밀을, 당신 외 누군가에게 오픈하는 순간ㅡ 명심하라. 그것은 모두에게 알려질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회사라는 공간의 특수성에 비추어볼 때, (한 공간 안에서 다수의 사람들이 같은 일을 반복하며 살아가는 특이한 형태) 그 가능성은 꽤 높다.
그러니 어떤 말을 밖으로 내뱉고 싶다면, 그 말이 당신 입에서 나오는 순간 주인을 잃은 새처럼 여기저기 날아다닐 수 있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하자. 그래도 관계가 없는 것들만 당신 입 밖으로 꺼내어주자. 때때로 익명성 보장이 안돼 출처가 당신이라는 것까지 같이 퍼져 나갈 수도 있다. 그것까지도 감안하고 괜찮을 때만 내보내자.
절대로 퍼지면 안 되는 비밀이라면? 당신 마음속에 묻어두자. 회사엔 비밀 같은 건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