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와 자기애의 상실의 결과물
추구미
추구하는 미적 가치
외모를 넘어, 가치관과 분위기, 생활 습관, 심지어 과거까지 닮고 싶은 모든 요소들이 집합된 이상적인 모습
“내 추구미는 - 00 이야.”
보통 이 말 뒤에는 연예인이 따라온다.
가장 ‘보여지는’ 존재이니까. 우리가 아는 건 예쁘고 멋진 외모뿐이지만, 그는 어쩌면 내가 상상하는 성격과 환경까지 갖춘 사람일 거야. 아니, 그래주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난 그런 그를 사랑해!
그가 될 수는 없겠지만, 너로 정했어 내 추구미 !.
추구미라는 단어가 생길 만큼, 왜 우리는 연예인을 사랑하게 되었을까?
1. 연예인들의 개인 유튜브
예전엔 신비롭기만 했던 연예인이, 이제는 나처럼 밥 먹고 친구 만나고 침대에 누워 폰도 만진다. 너무 친근하잖아? 우리랑 별반 다르지 않은 일상. ’혹시 나도… 가능할지도?’라는 생각이 든다.
2. 인플루언서 등장
연예인은 아니지만 팔로워 수는 웬만한 셀럽 못지않다.모델 활동도 하고, 관리를 받고, 수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다. 연예인이 아니어도 될 수 있는 시대. 그러니 나와 star 사이의 거리는 더 가까워져만가 -
이 둘에서 나타난 공통된 취약점은 뭘까?
”비교“
휴식하는 퇴근 후, 출근길, 밥 먹을 때도 우리는 유튜브를 본다. 원래부터 유익한 정보를 공유하는 목적의 플랫폼이었기에 어느새 남의 삶을 예고도 없이 엿보게 되었고, 우리의 시청은 집중을 낳았고, 집중은 생각을 만들었으며, 생각은 판단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비교를 시작했다.
나와 그들의 삶을.
1분도 안 되는 릴스와 숏츠 속 세상.
우린 단 몇 분 만에 수십 명의 반짝이는 순간들을 쉴 새 없이 보게 된다. 그러다 보면, 작은 화면 속 인생이 점점 더 부러워진다. 침대에 누워 남의 인생을 보고 있는 내가 점점 초라해지는 기분.
내 삶이 뭔가 잘못되어 가는 건 아닐까, 초라함과 아쉬움이 밀려온다.
연예인을 추구미로 삼는 건, 오히려 건강하다.
그들은 ‘추구미’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이다.
하루 9시간 아니 인생 전체를 그 분야에 쏟아붓고 훈련받는 전문가들. 우린 다른 분야에 9시간 이상을 쓴다.
그런 그들과 같아질 수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우리를 편하게 만든다.
그들의 정상을 바라보며 달리는 건, 때로는 긍정적인 동기부여가 되니까.
문제는 가까운 사람을 추구미로 삼을 때 생긴다.
놀랍게도, 가장 멀리 있는 존재는 연예인이 아니라 ‘가까운 사람’일 수 있다. 부모님, 연인, 친구 그들의 머릿속과 마음속을 우리는 온전히 알 수 없다. 같이 보내는 시간이 많기에 더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더 많이 오해한다. 모두의 ‘현재’는 각자의 인생에서 처음 겪는 날들이기에, 매일같이 새로운 상황에서 새로운 비교가 생겨난다.
그렇게, 끊임없이 추구해야 할 대상이 가까이 있을 때,
우린 진짜로 쉬지 못하게 된다. 그건 해롭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자꾸 추구미를 정할까?
생각해보자. 만약 내가 추구미와 똑같아진다면, 뭐가 제일 장점이 될지.
그건 바로 ‘사랑받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나를 따뜻한 말로 칭찬해주고, 좋아해주고, 나의 모든 것을 의미 있게 바라봐준다.
“사랑”해준다.
사랑을 받는 건 행복이다.
웃음이 많아지고, 웃으면 삶이 자연스럽게 밝아진다.
그 긍정의 기운이 나를 더 강하게 만들고, 삶에 용기를 준다.
그러니 우리는 사랑받고 싶어서 추구미를 찾아 헤맨다.
치열한 경쟁과 고단한 일상 속, 그 사랑의 힘이 그리운 우리들.
Personality - 개성이 중요한 시대.
하지만 남의 개성을 따라가면, 그건 진짜 내 개성일까?
꼭 그렇진 않다.
다수가 추구하면 유행이 되고, 유행은 특별함을 빼앗는다. 하지만 같은 책을 읽어도 각자의 감상이 다르듯, 같은 스타일을 따라가도 그걸 소화하는 방식은 다르다.
그렇게, 따라가던 길 끝에서 내가 만들어낸 제3의 추구미가 탄생할 수도 있다.
그럼 나는 자연스러운 나로 사랑받고 싶은 걸까?
아니면 꾸며진 나로 인정받고 싶은 걸까?
아마도 우리의 진짜 바람은 이렇지 않을까.
“태초의 자연스러운 나를 추구미로 삼아, 자연스럽게 변화된 ‘나’를 보여주고, 그 모습으로 사랑받고 싶어요“(어렵다;)
어쨌든 결국은 이거야.
우린 그냥 ‘나’로서 사랑받고 싶다는 거.
처방전 : 일단 전자기기를 닫고 편의점에 방문할 때, 마을버스 기사님께 인사해 보기. 어쩌면 나 남들보다 따뜻하고도 좋은 사람일지도 몰라 :)
자연스럽게 다음 글은 추구미에 빠질 수 없는 “느좋” 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