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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그림 Sep 06. 2018

#9. 아이를 위한다는 내 기준의 명목으로

느리지만 한발자국씩 앞으로, 그림이맘 이야기





그날 밤그림이에게 미안한 마음에 오늘 하루를 되새겨본다.

부글 부글 끓는 내 마음때문에 차마 들여다보지 못했던 아이의 눈으로 치료시간을 들여다 보았다.     



그러니 그때서야 볼 수 있었다     



어른인 나라도 답답할 것 같은 새하얀 벽에 한 평 남짓한 공간     



내가 아이였더라도 소리를 지르며 당장에 거기서 뛰쳐나왔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며 그때서야 아이를 이해 할 수 있었다.     



조금 더 밝고 따뜻한 공간이었더라면 아이도 쉽게 적응할 수 있을텐데...’     



그 후에도 그림이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그림이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림이가 환경에 굉장히 민감한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때부터 난 아이가 머물게 될 공간을 한 번 더 살피며 공간과 장소에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는 첫 치료센터 등록을 시작으로 

오전에는 그림이가 일반 유치원을 들어가기 전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조기교실을 다녔고

오후에는 언어치료작업치료음악치료 등..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는 여러 치료실을 돌아 다녔다

또 치료마다 유명하다는 곳을 찾아다니느라 저녁이 다 되어서야 모든 일정을 마치고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그렇게 집에 돌아올 때면 나는 물에 젖은 스펀지가 되어있었고힘이 넘쳐 이곳저곳 오르내리고 돌아다녀 따라다니기 힘들었던 그림이마저도 내 손을 잡고 가만히 집에 돌아왔다.     




그래도아이와 나의 시간표는 멈추지 않는다

저녁식사를 하고 나면 어김없이 우리의 저녁 스케줄을 시작한다.

나의 스케줄 용어로는 목욕시간이고 그림이의 시간명칭은 물놀이 시간일 것이다.     




이 시간도 조금이라도 아이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쉐이빙크림 놀이로 오감발달놀이를 하기도 하고

아이의 손기능을 조금 더 좋게 해주기 위해 손으로 조절하는 물놀이 장난감들을 잔뜩 사서 놀기도 하고물풍선 놀이를 하기도 했다.

 



그러면 그림이는 내 마음에 응답해주는 듯

너무 좋아서 얼굴에 함박웃음을 달고 

목청껏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온 몸에 크림을 묻히고 바닥에 누워 뒹굴거리기도 하고,

욕조에서 물을 밖으로 뿌리며 마음껏 물장구를 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옆엔 아이의 물장구를 맞으며 환하게 웃는 내가 있다.     



아이와 나,

우리 둘에게 그 시간은 유일하게 어느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고 아이의 소리와 행동에 함께 반응하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이렇게 바쁘게 하루일주일한달.. 3개월, 6개월을 보냈다

열심히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아이는 내가 생각했던 만큼의 큰 변화가 없었다.

시간과 노력에 배신을 당했다는 생각이 내 머리에 곤두박질쳤다.     



만삭이 된 지금까지 이렇게 열심히 오전오후로 치료실을 돌았고

저녁시간 하나도 허투루 쓴 적이 없는데... 

아이에게 변화가 없었다..

곧 둘째도 나오는데...     




그렇게 초조하게 생각을 이어나가고 있을 때,

어렸을 적 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엄마는 남들보다 일찍 나에게 피아노를 배우게 했고 

그것을 시작으로 웅변학원무용학원영어학원.. 그 당시 있었던 학원을 모조리 다니게 했다

그것을 감당하기 힘들었던 그 시절의 나는 다짐했다

내가 커서 아이를 낳으면 내 아이에게는 이렇게 하지 말아야지.. 

행복하게 해줘야지     




그런데 내가 환경과 공간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그림이에게 시간을 줄 틈조차 없이 학원 돌려막기와 다름없는 교육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남편이 가져오는 월급보다 더 많은 돈을 치료비로 쓰고 있었다.     





아이를 위한다는 내 기준의 명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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