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뤄왔던 돈 이야기
은퇴 후의 2,30년을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싶은가.
새로운 것을 배우고 도전하는 자세를 잃지 않는, 반짝이는 눈을 유지하는 사람이고 싶다.
한강 다리를 가로지르며 달리는, 지구 어디에서든 짬을 내어 달릴 수 있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
하고싶은 걸 다 하려면 건강해야 하니, 평생 유지할 수 있는 건강한 습관을 지금부터 기르고 싶다.
그런 생각들을 담아 글을 적어냈다.
그리고 이제 미뤄두었던 가장 중요한 생각을 적어내며 이야기를 마무리하려 한다.
10여년 전 신림동의 투룸 빌라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했다.
출근길에는 골목마다 내놓은 쓰레기를 마주하고, 퇴근길에는 테트리스 하듯 차를 주차해야 하는 좁은 도로를 마주했다.
아래, 위, 옆집의 텔레비전 소리, 고함 소리, 강아지 짖는 소리가 엉겨 들어왔다.
결혼 전 딱히 쾌적한 곳에서 살았던 것도 아니라서 인지, 그닥 불만족스럽지도 않은 환경이었다.
돈 생각을 가장 크게 하며 살았고, 큰 불행은 맞닥뜨리지 않은 덕에,
이제는 아파트만 주루룩 들어선 동네에서 거실 창 가득 햇살이 들어오는 집에 산다.
엘리베이터에서는 마주치는 주민들마다 인사를 나누고,
커뮤니티센터에서 운동을 하고,
쓰레기 봉지나 분리배출품들은 흐트러짐 없이 정리되어 있는 단지를 산책한다.
그러고 나니 이제는 '어떻게 늙고 싶은지', '은퇴 후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할지' 따위를 인생의 중요한 문제로 여기고 있다.
편하게 말하자면, 살만 해지니 그런 생각이 든다.
지금 가진 것을 잃지 않고, 적어도 지금과 같은 것을 누리고, 지금보다는 치열하지 않게 살고 싶다.
그러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지금까지 적어왔던 마인드셋, 배움, 취미 같은 것들을 다 합쳐 50 이라 치면,
나머지 50은 경제적 능력 아닐까.
어쩌면 50도 조금 가식적인 숫자 같다. 경제적 능력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함을 인정해야 할 수도.
지금 나는 이 고민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
당장 은퇴하기에는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으니 자산을 더 불려야 한다.
퇴직 후에 원리금 상환이 부담되니 주택담보대출액을 미리 조정해야 한다.
부동산이나 주식에서 불어나고 있는 ‘자산’ 뿐 아니라 생활비로 쓸 수 있는 ‘현금’이 필요하다.
자산과 현금 흐름을 균형 있게 ‘동시에’ 늘리는 것은 쉽지 않다.
게다가 퇴직 후에는 공제되던 금액이 고정비 지출로 변신한다.
퇴사로 직장건강보험이 만료되면 자산과 소득에 따라 부과되는 지역건강보험에 가입된다.
자산에 따라 지역건강보험료가 엄청난 부담이 될 수 있다.
자산을 정리하여 지역건강보험료를 조정하고, 정리한 돈을 현금흐름을 만들기 위한 임대업, 배당주 투자 등에 투입한다면 여기에서 창출되는 수입도 어쨌든 세금 부과 대상이 된다.
게다가 수입이 어느 선을 넘으면 공적 연금 수령액이 감액된다.
결론적으로, 적당히 큰 자산의 크기를 유지하되 충분한 현금 흐름을 만들면서, 배보다 배꼽이 커지지 않도록 세금과 건강보험료료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는 금액까지만 내 손에 넣어야 한다.
선배 은퇴자들은 이 복잡한 과제들을 모두 해결한 것일까? 나는 아직 정확한 균형점을 찾지는 못했다.
하지만 분명히 피하고 싶은 은퇴의 모습은 있다.
현금 흐름을 만들기 위해 또다시 출퇴근에 묶이는 삶, 그리고 자유를 얻는 대가로 예상치 못한 보험료와 세금에 휘둘리는 삶이다.
그래서 나는 일단 이런 생각을 해봤다. 자유를 조금 덜 누리더라도 보험과 연금의 구조 안에 오래 머무르는 게 이득 아닐까?
직장건강보험 가입자격을 유지할 수 있으며 급여가 작은 회사 속해 있으면 공적 연금을 모두 수령하며 월급을 합하여 여유있는 현금 흐름을 만들 수 있다.
이 때, 미리 투자해둔 배당주 등에서 배당금을 수령하여 현금 흐름에 합하면 좋은데 이것도 과하지 않게 설계해야 한다.
하지만 수십년 직장 생활 후에 기껏 퇴직자가 되었는데, 최적의 현금 흐름을 위해 다시 출퇴근을 시작하는 것이 옳은가?라는 의문이 생겼다.
출퇴근 없는 자유를 누리되 지역건강보험 부담액이 과하지 않도록 자산액을 미리 조정해 둔다면 어떨까?
이 때도 자산을 적당히 팔아서 그 돈을 어디에 투입해야 하며, 세금이 부담되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현금 흐름을 만들어야 하는 숙제가 남는다.
개인사업자로 등록하여 수입을 만들면 이 수입 또한 지역건강보험료에 산정된다. 게다가 개인사업자로 일한다는 것도 결국은 제2의 취업 아닌가?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약간 기운이 빠졌다.
결국 ‘일’에서 온전히 자유로워지는 것은 은퇴의 환상일 뿐인걸까?
그럼에도 많은 선배 은퇴자들은 여유로운 삶을 살아간다.
일찍 은퇴 준비를 마치고 파이어족으로 사는 젊은 은퇴자들도 많다.
세금과 보험료의 부담을 이겨낼 방도를 다들 찾아낸 것이리라.
모두에게 통하는 정답은 없을테니, 나도 나만의 답을 찾아가는 수밖에 없다.
일단 은퇴를 현실화 하기 전까지는 해오던 대로 아끼고 불리며 자산을 늘려야 한다.
그리고 세금과 보험료가 늘어나도 충분히 감당할만한 훌륭한 투자를 미리미리 해두어야 한다.
직장 퇴직 전에 제2의 직업을 찾아 출퇴근에 발목 잡히지 않고 생활비와 자아 실현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는 것도 환상적인 방안이다.
당분간은 본업에 충실해야겠다는, 어쩌면 뻔한 결론에 도달했다.
다행히 남편과 나는 젊어서 하는 고생을 억울해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같은 돈을 가진다고 가정하면, 소박하게 삶을 꾸리는 파이어족보다는 벌 수 있을 때 바짝 당겨 벌어놓자는 쪽에 가깝다.
그 와중에 본업에서 잠깐씩 고개를 들어 ‘최상의 은퇴 시나리오’를 상상하고 계산하는 내 습관은 어쩌면 우리 가족에게 작은 비빌 언덕이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의 결론은 이것이다.
현재에 충실하되, 억지로 일하지는 말자.
그만두고 싶을 때 언제든 박차고 나올 수 있도록 나는 계속 모으고, 계속 불릴 것이다.
은퇴를 위해서가 아니다.
언제든 떠날 자유를 갖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