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이 가져온 결과
동기부여, 자기계발 책, 영상들을 보다보면 꼭 나오는 내용이 있다. 자신이 원하는 바가 있다면 아주 세세하게 상상하라는 것이다. A라는 회사에 취업을 하고 싶으면 입사시험, 면접 등을 보기 전에 그 회사에 입사해서 입구에서 들어가서 부서의 모습,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 생활 하는 것 등을 상상해보라는 것이다. 즉 자신이 주인공이 드라마를 하나 만들어서 아주 세세하게 생각하면서 그때의 기분까지도 생각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정말로 자신이 상상한 순간이 현실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꿈도 흑백 꿈만 꾸는 상상력이 빈곤한 나는 이렇게 세부적으로 상상하는 것이 꽤 어려웠다. 그래서 이번에는 머릿 속 상상이 어려우니 눈 앞에 보이게끔 노트에다가 못 그리는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정말 그림 못그린다. 사람 그리면 머리 동그랗게 나머지는 나뭇가지로 그리는 사람이다. 그림으로 안되면 글로 세부적으로 써보기로 한 것이다.
올해 여러 목표나 이벤트들이 있지만 상반기의 가장 큰 일은 내가 사는 거주지의 분양 추첨이 2월 예정이었다. 내 소유의 집이 아니라 내가 얹혀사는 부모님의 집이다. 공사기간이 길어지면서 입주날짜가 계속 미뤄지다가 드디어 조합원 동호수 추첨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평형은 정해져 있고, 한국부동산원에서 추첨을 통해서 자동 배정되는 것이라 타입도, 동호수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 그래도 한번 내가 원하는 곳에 당첨 될 수 있도록 세세하게 상상해보자 였다.
전체 단지 배치도를 다운 받아서 1차적으로 어떤 곳이 좋을지를 대략적으로 정해보았다. 내가 살던 곳이므로 배치도를 보면 대략 위치는 알 수 있었지만 동간 간격 등을 실제로 보아야 가늠이 될 것 같아서 아파트가 지어지는 현장으로 가보았다. 물론 내부로 들어갈 수는 없으나 내가 원하는 동은 바깥에서도 가늠이 되어서 최종 4개동 정도를 정했다.
직방의 3D단지 안내도를 키고 원하는 동을 하나씩 살펴 본뒤에 1개의 동을 선정했다.
그다음에는 호수인데, 같은 층 라인이라 하더라도 양쪽에 껴 있을 수도 있고, 가장자리에 있는 호수도 있고, 저층이나 중간이냐 고층을 선호하냐의 부분도 있다. 부모님은 햇볕이 많이 들어오는 곳이면 좋겠고 (지금 살고 있는 집이 해가 잘 안들어온다), 고층이 아니라 중간층이면 좋겠다였다. 그래서 사이에 낀 중간 호수를 정했다. 000동 000호 이런식으로 말이다. 그다음에는 해당 동호수의 타입 평면도를 구한 뒤에 그 평면도를 손으로 직접 그렸다. 평면도를 그린 뒤에 그 평면도를 계속 보면서 머릿속에 그렸다.
실제 현관에 들어가서 방, 거실, 주방 등으로 이동을 하면서 머릿속으로 시물레이션을 돌린 것이다. 그것이 어느 정도 그려지게 된 뒤에는 필요한 가구들을 배치했다. 현관에 들어가서는 중문이 있고, 각방 창문에 커튼이나 블라인드를 걸고, 거실 티비의 크기, 소파 등등을 나름 배치해보았다.
마침 아이패드에 프리폼이라는 어플이 생겨서 그 프리폼에 평면도를 올려 놓고 그 위치에 그림을 그려보았다. 필요한 가구는 브랜드도 찾아서 사진도 첨부하면서 마인드맵을 한 것이다. 이렇게 까지 그리고, 쳐다보고, 상상하는 등 12월 부터 추첨 당일까지 지속했다. 처음에는 그 공간을 그리는 것도 어려웠으나 역시 반복을 하니 실제 내가 집에 들어가서 돌아보는 느낌을 받았었다.
드디어 동호수 추첨날이 되었다. 2시 추첨, 4시 이후 확인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정신없이 일 하다가 시계를 보니 4시 10분쯤이어서, 청약홈에 들어갔다. 처음 해보는 것이라 좀 헤맸는데, 이름과 생년월일을 넣고 심호흡 후 엔터를 쳤다. 확인하는 순간 소리를 지를 뻔 했다. 내가 생각했던 동이 그대로 되었고, 호수 라인도 맞았다. 단 층만 고층이 되어서 아쉬웠지만 일조량은 중간층보다는 더 좋아서 나름 잘 배정받았다고 생각했다.
바로 부모님에게 카톡으로 동호수와 단지배치도를 보냈고, 퇴근 후 집에 돌아와서 엄마와 동호수 배정 받은 이야기를 나눴다. 엄마는 정확한 위치가 가늠이 잘 안되셔서 고층이 된 것이 살짝 불만이셨는데, 주변 친척 분들이 궁금증에 온 전화에서 모두들 ‘단지 한 가운데 동에 로얄층을 배정 받았네’라고 축하인사를 보냈다고 한다.
정말 상상했던 것 때문에 이뤄진 일 일수도 있고, 우연일 수도 있다.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 2023년 첫 이벤트가 잘 마무리가 되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