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을 소망하며 달려왔건만, 막상 그 영토에 입성하고 보니 마주한 것은 안식이 아니라 지독한 '정적'이다. 경적을 울리며 치고 나가는 옆 차를 보며 분노 대신 "사건이 발생했군"이라며 무심히 관찰하는 나를 발견할 때, 나는 내가 성자가 된 것인지 아니면 영혼이 노화된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인생의 단서 몇 개쯤 쥐고 있을 줄 알았던 마흔이 코앞인데, 내가 쥔 것은 단서가 아니라 '단서가 없는 상태'를 신사적으로 견디는 뻔뻔함뿐이다. 예전에는 상처가 문장을 밀어 올렸고 결핍이 밤새 글을 쓰게 했다. 하지만 평안이 찾아오자 문장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가출해 버렸다. 결핍이 사라진 자리에 무기력이 들어앉은 꼴을 보니, 행복이란 역시 문학적으로는 참으로 무미건조한 상태가 아닐 수 없다.
불꽃이 사라진 자리에서 아직도 뜨거운 척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 이제는 다 타고 남은 재의 온도를 기록해야 할 시간이다. 대단한 진실을 설파하기보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이 '사회적 죽음'에 가까운 평온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 그것이 지금 내가 써야 할 '재의 문장'이다.
비트겐슈타인을 읽으며 깨닫는다. 말할 수 없는 것 앞에서는 침묵해야 하듯, 뜨겁지 않은 삶 앞에서는 억지로 비명을 지를 필요가 없다. 식어가는 온도를 배우는 이 계절, 나는 낮은 온도로 계속되는 이 부조리한 평안을 정직하게 써 내려가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