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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경주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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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화원 Nov 10. 2021

채소 할머니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에세이 01 - 경주 황성동


채소가 먹고 싶었다. 그런데 동네 마트 진열장에서 시린 형광등 불빛을 받으며 랩과 스티로폼에 모셔진 채소는 어쩐지 식물인간 같아서 물끄러미 보다가 지나쳐 버렸다. 매달 2, 7일에 열리는 집 근처 경주 중앙시장 장날에는 신선한 해산물과 과일은 많았지만 어째 채소가 보이질 않는다. 며칠째 '경주에서는 어디서 채소를 사는 걸까? 채소는 어딨는 거야' 찾고 있었다.


이른 오후, 빵을 사러 가는 길이었다. 네이버 지도를 따라 골목길에 들어서자 영국제과 대각선 방향 아파트 단지 모퉁이에서 할머님들이 소쿠리에 담은 채소를 팔고 계신다.


황성동 영국제과 골목


할머니는 알배추 1개에 2천원, 2개에 3천원이라고 하신다. 알배추 2개를 사고 나니 옆에 상추 바구니가 눈에 들어온다.


"와, 상추도 맛있겠다. 먹고 싶은데 혼자라서요."


아쉽게 상추를 바라보며 배추를 가지고 간 장바구니에 담고 일어서는데 할머니께서 바구니에 담긴 상추를 한 움큼 꺼내 덤으로 얹어주신다.


배추도, 무도 가지런하게


그리고 사진을 찍고 싶다고 하니 '아이구 그럼 채워야겠네' 하시면서 비어버린 소쿠리에 알배추도 다시 담고 마늘도 채우고 무 바구니도 가지런히 예쁘게 놓으신다.


그래서 사진을 많이 찍었다.



집에 와서 자려고 누웠는데 할머니 생각이 난다.

왜 눈물이 날까.

할머니에게 받은 사랑을 못돌려드리고 왔다.

할머니에게 이렇게 사랑받을 수 있어서 난 언제나 할머니가 그리운가 보다.


할머니도 세월이 가면서 가슴속에 사랑이 차곡차곡 쌓여서 지금의 할머니가 됐을 거라고 생각해본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도 그런 할머니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작은 희망이 생긴다.




P.S

글을 쓰다 보니 붕어빵 할머니 생각도 난다. 경주 농협은행 동천지점 앞에서 붕어빵 3개를 샀는데,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여쭈니 사진 잘 찍으라고 작은 손전등을 꺼내 환하게 비추어 주신다. 길을 걸으면서 따끈하고 바삭한 붕어빵을 베어 물었다. 할머니는 단팥 2개에 슈크림 1개를 넣어주셨다. 슈크림 맛도 보라고 하나 챙겨주신 할머니를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찡하다.


행복은 붕어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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