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입천장이 다 까진 이야기

20220825

by 오강주

이를 구석구석 닦는데 윗어금니 뒤 잇몸이 까져있었다. 그날 뜨거운 것을 먹어서 그랬다. 아프긴 했지만 양치를 하는데 피가 나올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날 문득 혹시 나는 뜨거운 걸 잘 못 먹는 타입인가? 하고 생각하긴 했지만 한평생을 이렇게 살아온 터라 그냥 그러려니 했다. 어제는 동료분들이 그렇게 맛있다고 칭찬한 뚝배기 감자탕을 먹으러 갔다. 감자탕인데 국물이 맑지 않고 콩이 들어가 비지찌개처럼 걸쭉하더라. 뚝배기에 담겨 나와 김이 모락모락 났다. 한술 크게 뜨려던 숟가락질이 멈칫했다. 나 이거 먹으면 또 아프려나? 고민도 잠시, 개의치 않고 와구 와구 먹었다. 국물을 품은 깻잎이 무척이나 뜨거워서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역시나 어제도 내내 입 안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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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8년을 살았으면서 아직도 나에 대해 모르는 게 많다. 생각해 보니 나는 어렸을 때부터 불호의 표현이 강한 사람들을 어려워했다. 스킨십을 싫어한다고 친구의 손을 내치던 같은 반 친구나, 머릿결이 좋다고 말하는 친구의 말에 머리 만지지 말라고 하는 단호함이나, 점심을 먹자고 하는 말에 배가 아파서 가지 않겠다고 하는 차가움이 내심 별로라고 생각했다. 지금 돌이켜보니 그 친구들은 냉정한 게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자신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것뿐이었다. 어떤 것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였을 때 자신이 아프거나 불쾌해질 것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잘 숙지하고 있는 것… 내가 나로서 즐겁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상식이다. 내가 나를 위해 쓰는 <나 사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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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이 생각해 보니 요즈음은 나 요즘에 꽤 괜찮은 것 같은데? 라고 생각하는 횟수가 늘었다. 또 일주일 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죽고 싶어 하는 굴레에 갇힐지 모르지만. 헤헤. 그래도 10일에 한 번씩은 심하게 가슴의 통증을 동반한 우울감, 좌절감, 불안감은 없어졌다. 아 맞다, 나는 드디어 내가 우울증이 아니고 불안장애가 있는 것 같다는 추측(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에 다다랐다. 물론 독일에 있었을 땐 꽤나 우울했을 것이다. 어떻게 죽을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부엌에 있는 칼이 무서워서 부엌을 안 갔을 정도니.. 일기에 썼던 표현을 다시 한번 빌리자면 독일에게 미안할 정도로 몇몇 추억은 끔찍하리만큼 다시 상기하기가 싫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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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지간에! 내가 분석해 본 내 불안증세는 이렇다. 뭔가 심사가 뒤틀리는 일이 생기거나 걱정거리가 생기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홍수라도 난 것처럼 걱정거리가 계속 이어진다. 상상 속에서 그 끝은 파멸이다. 이런 불안한 마음은 경고도 없이 찾아와서 평소엔 낙천적인 나를 엄청나게 예민하고 우울하게 만든다. 가슴이 엄청 아프고 눈물이 날 정도로 불안하다. 뭐가 그렇게 불안하냐고 물으면 부끄러워서 말도 못 할 정도다. 나중에 다시 곱씹어보면 그 고민들은 말도 안 되는 망상일 뿐인데 그 당시에는 굉장히 그럴듯하게 들리고 정말 내가 죽지 않으면 해결이 안 될 것 같이 보인다. 배가 아프거나 어딘가가 아플 때도 불안증세가 찾아오는 것 같다.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의 기분을 해치는 것을 극도로 피하려 하고, 기분이 태도가 되는 사람들을 싫어하기 때문에 평소에 친절하고 웃긴 사람이 되려 노력하지만, 내가 아파서 불안해질 때는 그 누구와도 소통하는 것을 꺼려하고 표정도 안 좋아지니 결국 말짱 도루묵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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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물이 도움이 될까? 혹은 불안증세에 대해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고 정신 수련을 통한 도움을 얻을 수 있을까? 최근에는 일찍 출근한 날 가슴이 너무 불안하고 답답해서 - 심지어 그날은 그 어떤 걱정거리도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 회사에서 한숨을 토해내며 울었다. 다행히 아무도 없었기에 망정이지 나도 내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나에 대해 하나둘씩 알아가면서 아 나 또 이러네.라고 타박하며 나를 무시하는 게 언제까지 도움이 될진 모르겠다. 그래도 이렇게 다시 일기도 쓰고 내 마음을 회피하지 않으려 글을 쓰는 거 보니 정말 어느 정도 균형이 잡힌 것 같다. 최근에는 글을 아예 쓰지 않았거든.. 불안한 감정을 무시하려고 생각을 의식적으로 차단하는 연습을 했다.

아 몰라! 아 나 또 이러네! 상관없어! 신경 안 쓸 거야!

라는 문장을 일부러 되뇌며 생각을 끊어냈다. 놀랍게도 우울한 생각의 빈도가 줄어들었다. 대신 기억력이 감퇴하고 중요한 회의를 할 때도 소 귀에 경 읽듯 내 머리에서 쏙 빠져나가더라. 위험하다 싶었다. 내가 나 자신을 믿지 못하게 되고 나 스스로를 한심하게 여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균형을 잡기 위해 애썼다. 그래도 다시 이렇게 뭐라도 적고 있지 않은가. 나 다운 것과 나를 잡아먹는 것 사이에서 길을 잘 찾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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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지극히 뻔한 표현들을 들을 때마다 이런 표현은 왜 존재하는 걸까? 싶었는데 그 지극히 뻔한 표현을 해내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란 걸 깨달았다. Innerpeace 같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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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첩을 들여다보는데 몇몇 얼굴을 보고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뜨거운 음식을 먹으면 잇몸이 쉽게 까지는 사람이라는 걸 깨닫는 데에 28년이 걸린 것처럼, 가끔 어떤 마음은 진심이고 서로가 서로를 진실되게 대했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 관계가 아무 이유 없이 자연스럽게 소원해질 수 있다는 것도 너무 늦게 깨달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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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은 나보고 그랬다. 내가 있으면 힘든 것도 다 안 힘들다고. 그러니 내가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 사람과는 지금 소식도 주고받지 않는다. 그 사람은 나한테 생일을 챙겨주고 우리 집에서 잠을 자고 밥을 몇 끼를 같이 먹었다. 근데 나는 지금 그 사람이 어디에서 뭘 하고 지내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된 데에는 그 어떤 이유도 없다. 그냥 자연스럽게 소원해지고 그 마음이 허물어졌다. 해변에서 만든 모래성은 파도가 잡아 삼키지만 우리의 마음은 그냥 자연스럽게 소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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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얼굴이 보고 싶다고 연락을 하고 만나서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쉽게 꺼낼 수 없는 이야기도 튀어나오게 만드는 관계가 있다. 같이 술도 마시게 되고 남에게는 선뜻하기 어려운 부탁도 흔쾌히 물어보고 들어줄 수 있는 사이가 있다. 그리고 그 마음들은 분명 내가 이렇게 하면 언젠간 돌려받겠지라는 계산에서 나온 게 아니고 그냥 그 마음이 튀어나왔다. 내가 생각하기 이전에 그 마음이 먼저 있었다. 그런 마음이 분명 서로에게 있었는데 아무런 이유도 없이 사이가 멀어지고 그 마음도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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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꺼내서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면 적어도 그 마음이 진짜로 있었던 건지에 대해선 의구심을 갖지 않을 텐데. 어떤 사람은 문자로 남게 되고, 어떤 물건으로 남게 되고, 그 사람과 함께 들었던 노래로 남게 되거나, 노을과 바람에 섞여 휘날려 간 것으로 회상하는 게 싫다. 적어도 마음을 꺼내서 볼 수 있으면 그걸 사진이라도 남길 수 있을 텐데. 의심이 들 때마다 사진을 꺼내서 보면 될 텐데. 지금은 그냥 어쩌면 나 혼자만 그랬던 건지, 상대방은 왜 그런 말을 했던 건지 궁금함만 남게 되니까 답답할 따름이다. 타인은 평생 타인으로 남을 수밖에 없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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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많은 길거리를 걷다 보면 몇백 개씩이나 되는 새롭고 낯선 얼굴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이런 이야기까진 안 하고 싶지만, 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곳에 가면 갑자기 인간 존재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된다. (특히 여행 중 야간버스를 타면 이런 생각이 심하게 든다..) 이렇게까지 사람이 많아도 괜찮은 걸까? 이렇게까지 사람이 번식욕구에 의해 데이트를 해도 될까? 이렇게까지 유행을 타는 옷을 입어도 되나? 이렇게까지 다채롭게 못생긴 사람들이 존재할 필요가 있는 걸까? 하다 보면 분명 여기에 있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하는 명분 하나 없이 죽게 될 거라는 사실에 슬퍼지는 거다. (당연히 이 끔찍한 식충이에 나를 포함한다) 이중엔 전기를 발명하는 사람도 없을 거고, 세계인을 하나로 이어 줄 수 있는 노래를 작곡할 사람도 없을 거고, 중력을 발견해 내는 사람도 없을 거고, 인류를 살릴 명약을 개발하는 사람도 없을 거다. 근데 왜 살아있는 걸까? 선택받은 몇몇의 뛰어남에 덕을 보려고? 인류라는 거대한 파도에 몸을 맡겨 은근슬쩍 탑승하려고? 어차피 지구는 곧 인류를 저버릴 텐데? 그것도 우리 때문에? 우리가 빨대를 써서??!! 우리가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비닐봉지를 개발했다가 그 비닐봉지가 썩지 않아서??!!??!!

이런 미친 생각을 하다 보면 내가 제정신에 내뱉는 말이 우리 아빠가 술을 먹고 하는 헛소리랑 진배없다는 걸 깨닫고 소스라치게 놀라며 고개를 도리질하게 된다. 으악! 내가 우리 아빠 같은 말을 하다니. 그것도 제정신에! 주로 출근길 퇴근길에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그리곤 다시 사람들을 쳐다본다.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여자, 아이와 아빠와 엄마, 커피를 팔고 있는 아르바이트생, 가게 옆 주차장에 앉아 강아지에게 선풍기를 양보한 아저씨, 킥보드를 함께 탄 커플, 한껏 유행하는 옷을 입고 웃고 떠드는 친구들.. 사랑하는 존재를 만들고 그것에 최선을 다하고, 자신을 책임지기 위해 벌어먹을 궁리를 하고, 시대의 흐름에 함께하는 것 모두가 대단한 일 투성이다. 다들 대단한 일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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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태어남을 당한 주제에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태어났기 때문에 가질 수밖에 없는 본능들과 싸우고 있다. 우리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대부분 대단하게 태어나지 않았다. 다들 나보다 먼저 조금씩 대단했던 사람들을 보고 그 뒤를 따라가고 있는 것뿐이고, 대단한 사람들 중 운 좋은 몇몇이 더 유명해질 뿐.. 게다가 유명한 것이 대단한 것의 척도는 아니다. 그냥, 이런 쓸모없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하는데. 과외 선생님은 나보고 생각을 너무 과하게 하지 말라고 하셨다. 회사 동료는 나보고 현 씨는 정말 뇌가 닳겠어~!라고 했는데 그 말이 맞다. 쓸데없는 생각만 하다가 뇌가 닳아 없어질 것 같다. 이 모든 뇌의 활동이 나를 혐오하지 않기 위해서 그럴듯하게 내뱉는 거짓말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정말 사람들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들 대단히 열심히 살고 있다. 다들 개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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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여유로운 평일을 보내니까 그간 했던 쓸모없는 생각들을 적어서 흘려보낼 수 있었다. 기분이 좋다. 나는 글 중에서 가벼운 아티클이나 시를 좋아한다. 가장 좋아하는 책은 시집인데, 가끔 사람들은 나한테 시집을 왜 읽느냐고 물어본다. 사실 나도 잘 모른다. 근데 시집을 읽는 건 결국 글을 쓰는 것과 비슷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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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잡생각이 정말 많은 편인데, 그 글들을 적지 않으면 계속 내 머릿속을 부유하다가 다시 그것에 대해 30분 동안 고민하게 되고, 다시 그 생각이 들 때까지 내 머릿속 어딘가를 떠다니게 냅둔다. 머리가 터져버리기 전에 그것들을 글로 적으면 마침내 이별할 수 있게 된다. 상세히 적어도 괜찮은 글들은 그냥 이렇게 쓴다. 부끄럽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런데 너무 부끄럽거나 나만 알았으면 싶은 기억이 있을 땐 구체적인 내용들은 최대한 가리거나 다른 뜬금없는 단어로 대체하거나 함축해서 쓴다. 그러면 나중에 봤을 때 나는 이해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기괴한 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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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렇게 쓴 글들이 시라는 건 아니지만, 나는 시인들도 자신들이 겪은 일들을 그렇게 정리하는 게 아닐까 추측해 본다. 그래서 나는 시집을 읽으면 물론 나야 전혀 알 수 없지만 그들이 겪은 일들을 지레 짐작해 보는 것이다. 아하, 연인과 헤어졌군. 아하, 본인의 학창 시절에 대해 쓴 것이군. 아하, 아버지와 사이가 안 좋나 본데. … 가끔은 어떤 이미지도 연상되진 않지만 그 자체가 절절하게 느껴지는 문장이 있다. 그럴 땐 소리 내어 곱씹어보기도 하고 필사도 해본다. 그렇게 기억된 문장들이 내 머릿속을 떠다니다가 나의 기억과 짝지어질 때가 있다. 타인이 쓴 문장이 내 안에서 다시 태어나는 거다. 영화와 현대미술도 좀 더 친절하고 대중적이냐 아니냐의 차이가 있지만 다 상통한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지간에, 아무렇게나 말할 수 있어서 행복한 목요일이다. 내일은 또 회사에 간다. 수많은 얼굴이 떠다니는 서울의 파도에 함께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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