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미래, 외로운 청춘

by 기욤하우어



태안화력발전소 앞,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는 차가운 바람만이 스쳐 지나고 있었다. 7년 전, 24살 청년 김용균 씨가 기계에 끼여 세상을 떠난 자리였다. 그의 죽음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다. 외주화 구조 속에서 젊은 목숨이 스러진 참극이었다.


“죽음의 외주화 끝장내자!” 사람들의 외침이 바람에 실려 공장을 흔들지만, 그 외침이 닿는 곳은 없다. 7년이 지난 지금도 현장은 여전히 위험하다. 하루 전에도 또 다른 노동자들이 사고로 부상을 입었다. 김용균 씨의 죽음은 묻는다. ‘왜 사회는 여전히 변하지 않는가?’ 우리의 안전은 말뿐인 구호에 묶여 있다.


그가 혼자 일하던 시간, 작은 손길과 웃음, 미래에 대한 기대까지 모두 기계 속에 갇혀 사라졌다. 가족의 눈물, 동료의 침묵, 기록으로 남겨진 숫자들만이 남았다. 올해만 산업재해로 사라진 노동자가 450명을 넘어섰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무너지고 있지만, 사회는 여전히 ‘대처’에 머물 뿐 ‘예방’에는 관심이 없다.


산업안전보건법중대재해처벌법이 만들어졌지만, 현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안전수칙은 구호일 뿐, 하청업체 노동자는 여전히 위험 속에 내몰린다. 2인 1조 근무 지침은 형식에 불과하다. 인력이 충분하지 않은 현실에서는 지침이 실효성을 잃는다. 법보다 우선하는 것은 사람의 생명이 아니라 이윤이다.


태안화력, 울산화력, 또 다른 현장. 이름 모를 청년들의 죽음이 반복된다. 안전을 요구하는 외침은 하루가 지나면 잦아들고, 뉴스에서 잠시 스쳐 지나간다. 그러나 이러한 희생은 사회를 움직이지 못한다. 인간보다 이윤을 우선시하는 구조가 여전히 지배한다.


김용균 씨를 기리는 7주기 추모제는 단순한 행사가 아니다. 그의 죽음을 통해 사회가 직면해야 할 책임을 상기시키는 자리다. 하지만 책임을 묻는 목소리는 법과 제도 사이에서 쉽게 묻혀 버린다. 젊은 목숨을 지키지 못한 사회는 또 다른 희생을 기다릴 뿐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은 기억하는 것이다. 그의 죽음을 잊지 않고, 외주화와 안전 무시를 비판하며, 책임을 묻는 것이다. 차가운 바람 속에서 피어난 작은 분노는, 언젠가 사회가 더 이상 청춘을 희생시키지 않도록 만드는 최소한의 빛이 될 것이다.



김용균 씨의 죽음은 슬프고 안타깝다. 그러나 그의 죽음을 기억하며 눈을 감지 않고 사회를 직시할 때, 우리는 비슷한 희생을 막을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그 기억과 관심이 모일 때, 안전한 일터와 책임 있는 사회를 향한 작은 변화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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