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집어당 Mar 02. 2021

네팔 히말라야 ABC 여행기 #12

십이 일째 포카라-카트만두-타멜-한국

십이 일째

포카라-카트만두-타멜-한국 16,241걸음    


시간이 다했으니 돌아가야 할 길

  6시 일어나 샤워를 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는다.

오늘은 포카라의 마지막 날이다.

히말라야 자바 커피숍으로 향한다.


이 커피숍은 깨끗하다. 네팔산 질 좋은 커피를 파는 곳이어서 외국인들에게 인기가 많은 것 같다. 약속이 7시여서 천천히 걸으며 아침 풍경을 구경한다. 자바커피에 앉으면 페와 호수가 보인다. 영철과 이야기를 끝내고 호텔로 돌아와 짐을 꾸린다. 배낭에 차곡차곡 히말라야 향이 밴 옷들을 싸고 가이드가 준비해준 종이상자에 기념품과 선물 등을 담는다.


해외를 다니며 난 자주 종이상자를 이용한다. 출발할 땐 현지에 가서 소비되는 것들이나 선물 등을 박스에 담아 와서 짐을 줄이고 돌아갈 땐 현지에서 산 물건들을 상자에 담아 돌아온다. 요즘 박스는 튼튼해서 웬만한 하드 캐리어 못지않아 안심이고 크기도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어 좋다. 이제 모든 물건이 정리됐고 내 마음을 준비할 시간이다.


  로비로 내려가 모든 경비를 계산하고 호텔 짚을 이용 해서 포카라 공항으로 가기로 한다. 11시 비행기니 10시쯤 출발하기로 약속하고 나와서 주변을 둘러본다. 이제는 포카라도 히말라야도 안녕이다. 이내 시간이 되어 출발한다. 차를 타고 산촌다람쥐 앞을 지나는데 재홍이 형과 영철 그리고 사장 부부가 있어 창을 열어 인사하고 손을 흔든다. 만남은 이별이 전제되는 것이지만 많이 아쉽다. 3일을 편히 보내며 조금은 익숙해진 포카라 미들패스를 지나 센터포인트 KFC 등을 거쳐 페와 호숫가를 따라 차는 달린다.


저만치 공항이 보이자 실감이 난다. 이제는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짐을 내리고 돌아선 곳엔 처음 올 때처럼 마차푸차레가 우뚝 서 있다. 푸른 하늘 아래 흰 구름과 함께… 어찌 이 이별을 표현해야 하는지 가늠이 안 서고 가슴을 한구석엔 히말라야가 자리 잡았다.


이번 여행 내내 날씨가 좋아서 즐거웠지만, 오늘은 아니다. 차라리 저 히말라야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았으면 싶다. 너를 두고 떠나는 난 너를 보고 있어도 가슴이 시린다. 비행기는 무심히 이륙하여 저 멀리 그리움을 두고 날아간다. 오며 질렀던 환호성과 미소가 이 길에선 탄식과 아쉬움으로 바꿨다.


  비행기는 금세 카트만두 트리부반 국내선 공항에 도착하고 짐을 기다리는 데 정말 오래 걸린다. 공항을 나오니 역시 카트만두다운 번잡함이다. 첫날 두 번 다시 안 간다고 다짐했던 타멜로 향한다. 택시를 타 바로 마스크를 꺼낸다. 첫날 경험했던 그 먼지가 다시 나를 반긴다. 데우랄리에서 마호가 준 마스크다.

네팔 모자에 마스크를 쓴 모습이 조금 우습지만 이건 네팔 카트만두에 최적화된 내 모습이다. 축제 식당에 들러 점심으로 신라면을 먹고 짐을 맡기고 타멜 구경에 나선다. 네팔 특산품이라는 캐시미어 제품을 사고 싶었지만, 품질이 조악하다.


북경이나 상해의 기념품 시장에서도 살 수 있는 것들로 가득하고 좋은 품질이라고 내놓는 것도 믿을 수 없어 몇 군데를 돌아다니다 다울라기리라는 상점에 가니 질이 좋고 디자인이 세련된 제품들이 많다. 머플러를 둘러보니 어울린다. 비니도 있고 담요도 있다.


네팔에서 디자인하고 만든 제품이라며 정찰제다. 구입을 원하면 현금 10% 카드 7% 할인이 가능하단다. 네팔의 물가에 견주면 많이 비싼 편에 든다. 타멜을 구경하며 큰 슈퍼에 들려 아이들에게 줄 이국의 과자와 선물용 히말라야 화장품과 아내에게 줄 인도산 생약 치약 등을 샀다.


오후 5시쯤이 되니 공항으로 가기로 하고 축제에 가서 짐을 찾아 택시를 타고 다시 그 복잡한 카트만두 시내를 달린다. 역시 마스크는 유용하다. 절차를 밟고 짐을 부치고 대합실에서 3시간 가까이 기다린다. 비행기를 타기 전 트랩 앞에서 마지막 셀카를 찍으며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단지 12일 보낸 이곳이 이리 가슴이 아리고 머릿속을 지배할지 몰랐다. 왜 나는 히말라야를 다녀가는가? 왜? 떠나기도 전에 그리움이 가득할까? 비행 내내 깊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새벽 인천에 도착하니 춥다. 집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 앉으니 그대로 쓰러져 잠이 들었다. 세상 무거운 것이 나를 짓누르듯…




에필로그

  12박 13일의 히말라야 여행을 마치고 히말라야의 기억을 꼭 기록하고 싶어서 쓰기 시작한 것이 생각보다 많은 양이 되었다. 처음 계획을 잡을 때 목표와 방법을 정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실행하며 준비물들을 하나하나 챙겼다. 그리고 그 멋진 계획에 따라 트래킹을 진행 나갔지만, 미처 준비하지 못한 게 있었다.


  그것은 바로 히밀라야의 감동을 담아낼 마음을 비우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천천히 걸으며 하나하나 비우고 채우고 비우고 채우기를 반복하며 걸어 그 길을 완주했다. 대부분 사람은 목표를 설정하고 철저히 준비하지만, 계획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이번 여행도 원래는 오스트레일리안 캠프까지 가는 것이었지만 중도에 컨디션의 난조와 마음의 동요로 포카라에 내려와 쉬면서 인생의 중요한 11일을 보내고 또 새로운 인연들을 만났다. 이번 여행이 나에게 준 의미가 여러 가지 있겠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실망할 필요도 없고 계획에 없던 일이더라도 피하지 말란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매우 예민한 성격으로 외부의 충격에 민감했고 많은 공상을 하며 자랐다. 그래서인지 책을 무척 좋아했다. 모르는 이야기들이 가득한 책들은 많은 여유와 상상력을 주었고 특히 사춘기 삶에 대한 관심이 생길 무렵에는 소중한 친구였다. 스물이 넘어 책을 읽고 여행을 하고 산행을 즐기며 평범해 지려 노력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꿈을 꾸었다. 그것은 내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 남들에게 들려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주변의 선후배와 친구들에게  느낌을 전하고 싶어서이기도 하다. 술자리를 빌어 여러 차례 트래킹 이야기했지만 무언가 설명이 부족했다.   글을 읽은 사람들이  한번은 히말라야에 오르며 자신을 만나는 기회를 가질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를 향해 걸으며 본 대자연과 내 느낌을 충실하게 쓰고 싶었지만 그리 잘 표현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 여행기는 아내 향과 두 아들 린과 원에게 보내는 작은 선물이기도 하다. 여행 내내 함께하지 못해 아쉬웠던 내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행복했던 추억과 히말라야의 아름답고 눈부신 풍광을 기억의 창고에서 꺼내 전해주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네팔 히말라야 ABC 여행기 #1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