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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어당 Feb 27. 2021

네팔 히말라야 ABC 여행기 #11

십일 일째 포카라

십일 일째

포카라


내 시간을 따라 걷는다. 

  포카라에 또 아침이 왔다. 여유롭게 아침을 먹고 옥상 벤치에 누워 마차푸차레를 바라본다. 역시 멋진 산이다. 오길 잘했다. 꼭 한번 와보고 싶었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어 못 왔던 이곳을 막연하게 가자는 결정 내리고 무작정 온 것이 참 잘한 것 같다. 책을 몇 장 뒤적거려보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저 포카라의 여유를 한껏 즐기고 싶다.


  참 시간이란 미묘하다. 같지만 다르다. 특히 이곳의 시간은 다르다. 여행하면서 본 많은 것들이 시각적으로도 달랐지만 다가오는 의미에서 너무 낯설었다. 익숙한 것의 낯설게 하는 효과로 인해 더욱 각인된다. 누군가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곳에서 다시 생각해보니 아닌 것 같다. 나에 대한 확신도 이제 의심의 한 대상이 된다. 낯선 길에서 익숙함을 느끼듯… 역설이다.


내게 주어진 오늘 무엇을 할지 내 선택이긴 하지만 불확실함에 의해 결정되는 게 더 많아 낯설다. 호텔을 나와 포카라 시내를 오늘도 걷는다. 많은 여행객이 보이고 이들에게서 나와 같은 낯선 익숙함이 느껴진다.


  어제 오후 센터포인트 아담호텔 앞에 서 있는데 한국인 부녀가 나에게 길을 물었다. 칠십쯤 되어 보이는 노인과 40대로 보이는 딸이었다. 늙은 아버지가 딸에게 말을 한다. “이 사람 한국말 잘하게 생겼는데 물어봐?” 어제 자른 머리 모양 때문인가? 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40대쯤 되는 딸이 다가와서 “여기 맛있는 식당이 어디에요?” 물었다. 난 이 상황을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하는데 가이드가 대답한다.


길 건넛집이 맛있다고 그러자 딸이 너무 서양식이라며 싫다고 한다. 내가 산촌다람쥐가 한식이 맛있다니 말하니 꼭 네팔 현지식을 먹겠다고 한다. 돌아다니다 본 몇 군데 현지인들이 많이 있는 곳을 알려줬다. 한참 후 호텔로 돌아가는데 아까 그 부녀가 산촌다람쥐에서 뚝배기에 담긴 무언가를 맛있게 먹고 있어 웃고 말았다. 그렇다 그 부녀의 모습이 내가 자주 하는 내식대로다. 낯선 거리에서 익숙한 나를 본다. 모든 것을 자기가 결정했지만 그리되지 않는 그것은 그저 흐르는 시간이다.


  조금 걷자 이 층 커피숍에 산촌다람쥐의 소주 친구 재홍형과 영철이가 보인다. 차를 한잔하며 이야기하고 함께 산책한다. 레이크사이드를 넓게 돈다. 한참을 걷는데 호수 위에 작은 섬이 있고 그 위에 신전이 있다. 건너가니 쉴 말한 곳이다.


 물 위에 떠 있는 색색의 보트 사진 몇 컷 찍고 돌아오는 길에 어제 티셔츠가게가 보여 혹시 완성되었냐고 하니 조금 기다리란다. 사장이 오토바이를 타고 공장에서 다녀온다. 옷이 만족스럽다. 그사이 난 모자를 하나 샀다. 같이 간 재홍형과 영철이 잘 어울린다며 부추긴다.


어제 이발한 것이 어색하기도 해서 100루피 깎아 400루피에 샀다. 내가 봐도 썩 잘 어울린다. 이 모자는 네팔 전통모자로 검은색에 까실하고 빳빳한 천으로 만들어졌다. 써보니 마치 요리사의 낮은 모자처럼 생겼지만, 꼭대기가 오른쪽이 더 높이 솟았다. 그 사선이 히말라야를 상징한다고 한다. 요즘은 잘 쓰지 않지만, 노인이나 고지식한 사람들이 자주 쓴다고 가이드가 나중에 말해주어 알았다. 하지만 내게 썩 잘 어울린다.

네팔산 티셔츠 4벌 구입

  호텔로 돌아와 차량 이용을 부탁한다. 오후 5시 50분 출발하여 6시경 호텔로 돌아올 거라 하니 가능하단다. 택시를 이용해도 되지만 네팔어를 못하니 설명도 복잡하고 거기다 길조차 잘 모르니 호텔 차량을 이용하는 것이 안전하고 편하다.


오늘은 데우랄리에서 같은 방에서 함께 잔 4명이 모여 뒤풀이를 하기로 한 날이다. 포카라 지리를 서로 모르니 많이 들어본 놀이터에서 27일 오후 6시 모이자고 약속했다. 데우랄리에서 마호에게 그저 놀이터를 영문발음 그대로 NORITE라고 알려줬을 뿐이었다. 포카라 도착하고 보니 스펠링이 달랐다.


그리고 우리가 있는 센터포인트 에서 상당히 멀어 픽업가기 위해 호텔 차량을 빌린 것이다. 어둑해질 무렵 차를 타고 레이크사이드를 달린다. 호텔직원 중 콧수염을 기르고 50대쯤 되어 보이는 친절한 남자가 있는데 이 사람이 운전하며 놀이터를 잘 안다며 걱정하지 말란다.


  출발한 지 10분쯤 후 도착한다. 들어서니 손님이 아무도 없다. 주인에게 물으니 일본사람은 오늘 아무도 안 왔단다. 그래서 걱정하며 뒤돌아서려는데 뒤에서 누가 한국어로 오빠! 하며 부른다. 돌아보니 마호다! 서로 반가워 크게 웃는다.

 

다음에 온다고 인사하고 놀이터를 나와 차를 타고 산촌다람쥐로 가며 설명한다. 너에게 스펠링을 잘못 알려줘 미안하고 우리가 머무는 곳과 너무 멀어서 가까운 식당으로 간다고 이야기하니 마호도 어제 포카라 도착해서 놀이터를 찾으니 없어 고민했단다.


그러다 앱을 통해 놀이터 위치를 찾았고 30분 걸어서 놀이터에 오며 우리 일행이 없으면 어쩌나 걱정을 많이 했단다. 그런데 놀이터 문 앞에 서니 특이한 오빠의 녹색 패딩이 보여 안심했다며 웃는다.


산촌다람쥐에 도착해 우리 둘뿐이라서 카톡으로 연락하니 한 명은 몸이 아프고 한 명은 답이 없다. 오늘도 재홍형 영철과 함께 삼겹살을 시켜 소주를 마신다. 네팔에서 소주는 한병에 1200루피로 고급술이다. 하지만 한잔 두잔 마시다 보면 한국에서처럼 마시게 된다.


학생시절 이야기하다 부루라이또 요코하마란 오래된 일본 노래로 일본어 회화 시험 본 이야기를 한다. 재홍이 형은 일본영화 러브레터, 걸어도 걸어도 등을 이야기하고 영철이는 부인이 일본인이라며 일상적이고 시시콜콜한 이야기하며 웃는다. 네팔에서 일본어라니 말은 배우고 볼일이다. 한참을 즐겁게 뒤풀이하고 마호를 일본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 바래다주고 포카라의 밤길을 걸었다.


돌아오는 길에 골목길을 잘못 들어 상당히 당황했다. 갑자기 가로등 하나도 없는 어두운 길을 걸으니 두려움이 앞선다. 가까운 거리였지만 밤에 보니 확연히 풍경이 다르다. 역시 타국의 마지막 밤은 어둡다. 내일 떠나야 해 마음도 아쉬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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