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일째 포카라
십 일째
포카라 19,634걸음
느긋한 포카라의 하루 흐르는 시간에 나를 맡긴다.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등산화를 들고 나선다.
히말라야를 편하게 걷게 해준 등산화를 닦기 위해서다. 어제 보아두었던 센터포인트로 가는데 여러 사람이 부른다. 파출소 앞의 몇 사람이 모여 있다. 앞을 보니 구두를 닦은 곳이다.
원래 가려고 했던 곳이 있어 지나치려니 자꾸 말을 건다. 자기들이 보장한다는 표정이다. 이들은 택시운전사들로 여기에서 영업하는 것 같다. 그래서 얼마냐고 물었더니 300루피란다. 비싸다고 200루피로 깎고 등산화를 맡기고 돌아온다.
나중에 들으니 적정가격은 100루피 한참 아래였지만 웃으며 넘겼다. 약간의 돈보다 귀중한 포카라에 여유로운 시간을 즐겨야 하므로…
돌아오는 길 산촌 다람쥐 앞을 지나는데 어제 본 이발사가 또 호객한다. 돌연 이발하고 싶다. 얼마냐고 물으니 320루피의 가격표를 보여줘 의자에 앉자 머리를 맡겼다. 정말 오래돼 보이는 골동품 가위를 꺼내고 커다란 빗을 찾는다.
서로 말이 안 통하니 어떤 스타일로 잘라달라거나 어찌 자르겠다는 말이 없이 그저 둘은 눈만 껌뻑이며 이발을 시작한다. 점점 짧아지니 머리를 보며 그저 웃음이 나왔다. 한국 같으면 이리저리해달라며 요구가 많았을 텐데 그저 이발사 실력과 마음에 맡기니 꼭 인생 같다.
살고 싶은 삶과 주어진 삶이 다른 것처럼. 한참을 지나 완성된 내 머리가 꼭 첫 이발 배운 이등병 동기가 잘라 논 것 같다. 그저 웃었다. 머리카락은 다시 자란다. 무엇이 문제이랴! 돈을 계산하고 웃으며 돌아선다.
오늘은 그저 포카라를 거닐며 하루를 보낼 것이다. 오후에는 가이드와 시장엘 가기로 했다. 어느 여행지를 가던 그곳 시장에 가면 마냥 좋다. 사람이 좋다. 그리고 이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면 더욱 행복하다. 살아 있는 느낌이다. 한참을 걸어 다니니 한국어 간판이 드문드문 보인다. 모두 음식점이다, 큰길가로 나와서 페와호수 쪽으로 걷다 보니 출출하다.
이른 점심을 먹기 위해 어제 알아둔 아오조라를 찾았다. 돈가스 덮밥을 주문하고 주방을 보니 전부 네팔 사람들이다. 작은 식당인 줄 알았는데 직원이 꽤 많다. 안으로 들어가니 다른 공간도 있다. 돈부리가 나왔는데 그릇이 깊고 크다. 양이 많아 보인다. 맛은 그저 평범하다. 밥양과 돈가스 비율을 맞추지 못해 밥을 남겼다. 그리고 다시 페와호수로 걸어간다.
과일가게 앞을 지나는데 인도인 부부가 석류 주스를 마시고 있다. 페와호수 안 섬에 유명한 힌두사원이 있어 인도인들이 기도차 순례를 많이 온다고 한다. 과일가게 아주머니가 내게 흥정을 한다. 나도 석류 주스를 시켰다. 200루피면 좀 비싼 듯한 생각이 들지만 큰 석류 2개를 간다. 양도 많고, 마셔보니 달콤하고 향이 부드럽다. 다시 길거리를 걷는다. 기념품을 파는 가게와 호텔 식당들이 즐비하다.
호텔로 돌아와 로비에 앉아 편안하게 쉰다. 이 호텔은 로비가 마음에 든다. 편안한 의자와 건물과 건물 사이에 정원이 있어 햇볕이 잘 들어오고 하늘이 보인다. 번잡하지 않고 조용해 앉아 시간을 보내기 좋다. 오후가 되자 가이드가 와서 둘이 시장 구경을 나선다.
네팔 사람들의 삶의 현장 시장엘 가다.
포카라에서 제일 큰 시장엘 간다. 조그만 버스를 탔다. 25인승보다는 작고 15인승보단 큰 버스다. 차장이 문에 매달려 목적지를 크게 외친다. 버스를 타고 창밖을 보니 2~3층 높이 건물들로 버스는 번화가로 향한다. 여기도 카트만두처럼 신호등도 차선도 없지만 모두 잘 달린다. 뽀얀 먼지가 일지만, 창문을 열고들 잘 달린다.
큰 사거리가 나오면 약간의 정체이다. 경찰들이 수신호로 네 방향을 정리하는데 차가 많아서 소통이 느려져서다. 버스는 좌회전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장 앞에 내린다. 많은 사람과 건물들이 즐비하다. 이 시장은 포카라 인근 히말라야 지역의 대부분 사람이 이용하는 큰 시장이란다.
우리 남대문처럼 포카라 물류의 중심인 것이다. 한참을 이리저리 구경하다. 가이드 캠씨의 부인이 운영하는 옷가게를 잠시 들린다. 부인은 키가 크고 날씬한 전형적인 아리안족 미인이다. 의류상점만 모인 건물 0층에 3평 정도 매장을 운영하는데 꼭 우리 재래시장 같다.
가이드가 배가 고프다고 볶음국수를 먹자고 해서 그에 단골 식당으로 간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 좁은 틈에 지붕은 얻은 식당은 매우 어둡고 불결해 보인다. 볶음국수 하나를 시켰는데 50루피란다. 그런데 두 접시가 나와서 물었더니 볶음국수 하나를 시키고 두 접시에 담아 달라고 하면 양을 넉넉히 해줘 싸게 먹을 수 있다며 웃는다. 인심이 좋은 식당이다.
먹어보니 참 맛있다. 가이드가 돈을 낸다는 것을 말려 돈을 내고 다시 시장 구경을 한다. 한쪽은 옷, 한 곳은 과일, 저곳은 고기, 이곳은 생선 등을 판다. 바다가 없는 네팔에서 생선이 많아 물어보니 민물고기란다. 요즘은 양식도 하고 중국에서도 들어오고 해서 차츰 공급이 늘고 있다고 설명해준다.
그리 구경하고 돌아오는 길에 포카라에서 가장 큰 쇼핑몰에 들렸다. 4층 규모로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입구 에스컬레이터에 아이들이 분주히 오르락내리락한다. 이유를 들어보니 처음 본 움직이는 계단이 신기해서 여러 번 타는 거란다.
경비원이 나서서 제지해 보지만 소용이 없다. 웃고 떠들며 즐기는 아이들을 신기함과 즐거움을 어찌 말리랴! 나도 어렸을 때 저랬을 거란 생각에 처음 에스컬레이터를 탄 저 아이들처럼 즐거워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넓은 거리에 나서자 엘지전자 삼성전자 기아차 대리점 등이 있다. 가이드 말로 한국산들은 매우 비싸단다. 생필품과 가전제품 대부분 인도산이나 중국산이다. 네팔의 소득수준이 매우 낮은 것 같다. 히말라야에서 들은 말로는 보통 4인 가족이 사는 집 월세가 5,000루피 우리 돈 50,000원 정도이고 한 달 동안 달밧 먹는 돈이 2,000루피라 한다.
정확한 정보인지 모르지만 여행하며 느낀 것이 비슷하다. 시누와 고갯길 오두막에서 본 아이들이 문득 떠오른다.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모두 불행한 것은 아니다. 네팔 사람들 표정은 언제나 자존감이 가득하다.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걷는 이들의 모습은 영혼에 신의 은총이 가득한 것 같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탄 버스는 정말 작았다. 운전석에 등을 대고 기다란 쪽의자 같은 곳에 앉았는데 마주 보며 앉은 아가씨 무릎 사이에 다리를 놓을 수밖에 없어 민망했다. 천정이 낮아 고개를 구부정하니 있으니 버스가 흔들리면 거의 얼굴이 맞닿을 정도이다.
그리 한참을 달려 레이크사이드에 내려 네팔 기념품을 사기 위해 상점들을 들여다본다. 한참을 보다가 마호가 입고 있던 안나푸르나 티셔츠가 떠올라 찾아보니 품질이 너무 조악하다. 몇 가게를 지나 괜찮은 곳을 찾았다. 그런데 원하는 품질의 티셔츠에는 안나푸르나 커다란 동그라미가 안 보인다.
이야기하니 내일 오후까지 만들어 준단다. 티셔츠 색상을 고르고 인쇄될 문양을 골랐다. 한 개에 900루피란다. 계산하고 호텔로 돌아오니 세탁물이 나왔다. 양말 한 짝이 없다고 해서 괜찮다며 웃었다. 빨래에서는 꽃향기 같기도 하고 향신료 같기도 한 네팔의 향기 짙게 묻어난다.
가이드도 돌아가야 해서 팁으로 60불을 준다. 실은 어제부터 고민이 많았다. 트래킹이 끝나면 팁을 준다는데 얼마가 적정한 금액을 몰라서였다. 팁이란 게 주는 입장과 받는 처지가 다르고 기준이 없으니 혼란스럽다. 그래서 나로서 조금 넉넉히 준다고 주었는데 가이드 관점에서 괜찮았는지 모르겠다. 웃으며 돌아서는 가이드가는 포카라를 떠나는 28일 아침에 오겠다며 돌아간다.
그리고 난 다시 산촌다람쥐에 오랜 단골처럼 자연스레 들렸다. 어제 처음 만난 이들과 오늘도 익숙하게 소주를 한잔하는데 이발한 내 모습을 약간 놀린다. 하지만 이것도 지나면 좋은 추억이 될 것이기에 크게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