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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어당 Feb 20. 2021

네팔 히말라야 ABC 여행기 #4

나흘째 고라파니-푼힐-탑플라-타다파니-츄일레

나흘째

고라파니-푼힐 일출-탑플라-타다파니-츄일레 거리 14.4km 9시간 8분 30,748걸음

푼힐 전망대 히말라야 일출


  새벽 4시 무렵 가이드의 노크로 하루가 시작된다. 푼힐까지 어둠 속에서 걸어야 한다. 어제저녁 미리 챙겨둔 헤드 랜턴을 꺼내고 털모자를 쓰고 얇은 패딩과 후디를 입었다. 5시가 되어갈 무렵 출발이다. 어제 듣기로 40분 정도면 오를 수 있다고 해서 가볍게 나선길이다. 많은 사람이 푼힐을 향해 작은 랜턴 빛을 길잡이 삼아 산길을 오른다.


오르는데 40분이라고 했는데 거의 1시간 가까이 지나도 푼힐이 아직이다. 중간에 입장료도 받는다. 이곳을 지나 바튼 숨을 몰아쉬며 흐르는 땀을 주체하지 못해 털모자를 벗고, 지퍼를 열고 걷는 속도를 조절하며 한참을 오르자. 사람들의 웅성임이 들리고 많은 사람들이 어둠 속에 서성거리는 모습이 보인다. 해발 3200m 푼힐이다.


  해가 뜨는 동편을 찾았지만, 발 디딜 틈 없는 만원이다. 전망 탑에 오르려니 여기 또한 사람이 가득하다. 안나푸르나가 잘 보이는 곳에 접이식 의자를 펴고 앉았다. 가져온 따뜻한 차를 마시며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다. 이내 동쪽이 붉어진다. 모두 한 곳을 바라보며 서서 웅성거린다. 갑자기 사위가 조용해진다.


  해가 뜬다. 어슴푸레한 어둠이 서서히 걷히며 먼 산언저리부터 붉은빛으로 윤곽을 드러낸다. 히말라야 흰 산봉우리들이 차츰 붉은색에서 금빛으로 물이 든다. 거대한 산군이 처음엔 붉은색으로 그 후 금색으로 시간이 지나 흰색으로 변한다.


이곳 푼힐 전망대는 히말라야 연봉 중 8000m 2개를 포함해 15개 봉우리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서쪽부터 구르자피크 7193m, 다울리기리5봉 7661m, 다울라기리4봉 7618m, 다울라기리3봉 7715m, 다울라기리2봉 7751m, 다울라기리 8171m, 툭체피크 6920m, 담푸스패스 5258m, 닐기리 7061m, 안나푸르나 8091m, 안나푸르나 남봉 7219m, 히운출리 6441m, 강가푸르나 7455m, 마차푸차레 6993m까지 히말라야 연봉들의 빼어난 자태를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일출을 보며 감탄하며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그렇게 한 시간쯤 보내고 내려오는 길이 상쾌하다.


  푼힐을 내려오며 상록수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히말라야를 사진으로 남긴다. 정말 이런 감동을 잘 표현해 사진으로 한 장 남기고 싶지만, 많은 부분이 아쉽다. 카메라에 조금 더 신경 써서 올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사진 찍기를 즐겨했지만 이렇게 장엄하게 빛나는 자연을 보지 못했다. 아쉬움에 여러 차례 멈춰 풍경을 담는다.


 짐을 싸던 중 생각난다. 어젯밤의 심장 소리가, 아침이 되니 아무렇지도 않아서 잊고 있었다. 하지만 손끝 발끝이 조금씩 저릿저릿하다. 이유 없이 타이레놀 한 알을 먹는다. 식당 창문으로 보이는 히말라야가 꼭 그림 같아서 식당 인테리어 일부처럼 느껴진다.


어제 만난 미국인 가족사진 몇 장 찍어줬다. 식사를 마치고 롯지 여자주인과 기념사진을 찍는다. 이 여주인 아버지가 고라파니에서 처음으로 롯지를 열었다고 한다. 계단에 걸린 오래된 흑백사진들이 그때 사진들이라며 자랑을 한다. 여주인은 다음에 우리 가족 모두 함께 오란다.


정말 기회를 만들어 아내 향, 두 아이 린, 원과 함께 오고 싶다는 생각을 어젯밤에 했었다. 롯지를 나서는데 여사장이 자신의 반지를 보여주며 아내에게 하나 선물하면 좋아할 거라며 권한다. 얼마냐고 물었더니 요 아래 노점에서 500 루피면 충분하단다.


작별인사를 하고 내려오는데 조그만 공터에 반지와 장신구들을 펼쳐놓은 노점이 여럿 있다. 얼른 한 곳으로 가 반지 몇 개를 골라본다. 얼마냐고 물었더니 1000루피란다. 너무 비싸다는 표정을 지었더니 안 깎아 주려는 표정이다.


이내 가이드가 나서 슈퍼뷰 롯지 여주인이 500루피라고 했다고 말하자 이내 500루피란다. 여러 반지 중 푸른색이 예뻐 보이는 것을 고르고 돈을 꺼내 세는데 갑자기 600루피로 가격을 올린다. 나는 500루피를 건네고 웃으며 돌아선다.


좁고 구불구불한 학교 옆 작은 길을 따라 걸으니 회전문같이 생긴 철 구조물이 길을 막는다. 녹이 슬고 조금 위험해 보이는 구조물이다. 이곳을 지나자 조금씩 언덕이 가팔라진다. 밀림처럼 사철 푸른 울창한 나무 사이를 걸으며 쨍한 아침 공기를 느낀다.


  새벽 푼힐을 오르며 기운을 써서인지 힘이 든다. 좀 더 오르면 익숙히 지겠지만 지금은 힘이 든다. 숨이 차다. 더 오르니 많은 트래커들이 구릉 중간 돌로 만든 탑 같은 쉼터에서 쉬고 있다. 배낭을 벗고 물을 마시려 카메라를 내려놓고 쉬다 다시 언덕을 오른다.


한참을 올라 쉬던 곳을 내려다보니 또 다른 사람들이 쉬고 있다. 아차, 싶었다 저기다 카메라를 놓고 오다니 왕복 5~6분 거리인데도 도저히 내려갈 엄두가 안 나서 가이드에게 이야기했더니 내려가서 카메라를 찾아다 준다. 정말 고마운 일이다.      



등산옷차림 체온을 유지하자!  

  긴 여정의 트래킹을 하며 중요한 것이 체력의 안배인데 이는 기본적으로 옷 입기를 잘하면 좀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오늘 같은 초가을 날씨에 해발 3000m 산소가 부족한 곳에서 200m 높이를 이른 아침에 오르락내리락한다는 것은 체력적으로 힘든 시작이다. 새벽에 추워 두꺼운 차림으로 푼힐로 오르며 힘들었듯이 기온과 걷는 속도와 거리에 맞는 옷차림을 갖춰야 한다.


현지 날씨에 맞게 운행 중 벗고 입기를 반복해서 덥지 않고 춥지 않게 조절하면서 걸으면 좀 더 편안한 여행이 될 수 있다. 탑플라 언덕을 오르는 지금은 출발할 때 입었던 보온 재킷을 벗고 긴 팔 라운드 셔츠와 칠 부 반바지 차림이다. 날씨가 어찌나 화창하고 좋은지 11월 하순 네팔이 가을을 지나 겨울 초입인데도 여행하기 최적이다. 또 걷다가 쉴 때는 땀이 식기 전에 보온용 옷을 걸쳐 체온을 지키고 다시 걸을 때 벗어 체온을 발산하도록 주의하며 걷는다면 한결 쾌적한 트래킹이 될 수 있기에 모자와 옷차림에 주의를 기울인다.

타플라에서 본 히말라야 산군

        걷다 쉬기를 여러 번, 흰말 몇 마리가 풀을 뜯고 나무 한 그루 없이 붉은 흙으로 이루어진 긴 능선에 오르니 탑플라 전망대이다. 히말라야 연봉의 가운데쯤이다. 이곳에서 보는 히말라야 산군이 푼힐보다 훨씬 더 장관이다. 푼힐부터 저 멀리 마차푸차레까지 히말라야 산봉우리들의 기나긴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하얀 설산이 내 시야에 가득하고 그 위로는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이 펼쳐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장관이 나를 압도한다. 또 깊은 계곡 아래로는 푸르른 숲이 있어 정말 이채롭다. 그때의 감동이 글을 쓰는 지금도 느껴지는 듯하다.


얼마나 아름답고 고마운 풍경인 히말라야 앞 이곳에 내가 서 있다. 하늘 가까이 올라온 진정한 지구별 여행자가 된 듯하다. 세계의 지붕이란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 바로 앞에 선다는 것은 정말 상상으로도 꿈으로도 느껴지지 못할 가슴 벅참이 함께 한다.


  잠시 배낭을 내려놓고 간식으로 육포를 꺼낸다. 옆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데 가이드의 표정이 이상하다. 내게 소고기 육포냐고 묻는다. 그렇다 하니 자기들은 힌두교도라서 소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몇 사람의 손에서 들린 육포를 거두는데 어색해진다.


그중 두 사람은 육포를 먹고 있다. 다시 가이드를 쳐다보니 그들은 네팔 북부 사람들로 힌두교도가 아니라서 소고기를 먹는다며 웃는다. 네팔은 북쪽 히말라야와 남쪽 평원의 종교와 문화가 상당히 다른 것 같다. 대부분 인구가 힌두교를 믿지만, 불교도도 10%를 넘고 애니미즘 등 다양한 종교가 혼재되어 있다고 한다.


  능선을 한참을 걸어 간드룩에 도착하니 몇 개의 상점이 있다. 콜라를 한 병을 사서 일행과 나눠 마시고 기념품을 한참 구경하다가 덧양말이 맘에 들어 몇 켤레 사려고 들고 보니 기성품이다. 모양만 수공예품처럼 보이고 내부에 라벨이 있어 내려놨다. 네팔의 공산품들은 대부분 중국산이나 인도산이다.


간드룩을 빠져나올 때쯤 한 여자가 눈에 띈다. 키가 크고 서양인 얼굴을 한 젊은 여자였는데 옷차림과 행동은 꼭 네팔 사람처럼 한다. 네팔의 인종은 인도 계열 아리안족이 대표적이며 티베트계 등 다양한 소수민족이 함께 살아간다. 이곳은 다양한 체형과 얼굴의 사람들이 공존하는 곳이구나 생각하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간드룩부터는 내리막길이어서 큰 어려움은 없지만,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걸어야 한다. 계곡을 따라 걷는데 우기인 여름철에는 습기가 이 숲에 한가득 있을 것 같다. 11월 중순인 지금은 조금씩 말라가며 가을 단풍처럼 갈색으로 물들어간다.


벼랑엔 긴 갈색 이끼들을 바람에 날리는 걸 볼 수 있고 물이 흐르는 곳엔 푸른 이끼와 작은 꽃들이 피어 계절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계곡의 거의 끝에 다다르자 폭포처럼 한쪽 벼랑에서 물이 흐르고 정말 예쁜 작은 꽃들이 피어있어 쉬면서 사진을 몇 장 남긴다.     


 

느긋한 점심을 즐긴다.

  점심 즈음 도착한 반단티에는 3개의 롯지가 있다.

첫 번째 롯지에서 식사를 주문하고 등산화와 양말을 벗어 햇볕에 잠시라도 말려준다. 양말을 두 켤레 신었는데 안쪽 양말은 내부 양말로 여자 스타킹처럼 아주 얇아 마찰을 줄여 주고 땀을 잘 흡수하지만, 배출이 안 돼 자주 말려주면 좋다. 겉 양말은 울로 만들어져 무척 두꺼워 쿠션 역할과 땀을 흡수하여 배출한다.


장시간 걷다 보면 땀이 양말과 등산화를 적신다. 이를 오래 두면 축축해진 양말과 발이 마찰을 일으켜 물집이 생길 수 있고 특히 쾌적하지 않아서 걷는 데 불편을 초래한다. 오래된 습관이지만 쉴 때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잠시라도 등산화와 양말을 벗어 발에 땀을 닦고 말려준다. 그 후 다시 신으면 새 양말처럼 뽀송뽀송한 느낌에 상쾌한 기분으로 걸을 수 있어 좋다.


  마당의 햇볕이 따가워 식당으로 들어가 창문 한쪽에 자리를 잡고 여유롭게 앉아 잠깐의 깊은 휴식을 취한다. 유리창 너머 계곡에 흐르는 물을 보며 상념에 젖어 오전을 여정을 되돌아본다. 한 번도 걸어본 적 없는 정말 멋진 길이었다. 점심을 천천히 먹다 보니 먼저 먹은 사람들은 떠나고 새로운 사람이 들어와 하나둘 자리를 잡는다.


식당 실내에는 태국에서 온 연인과 우리뿐이다. 볕이 좋아 마당으로 나가 잠시 앉았다. 저편에 방금 도착한 노란 반바지를 입고 챙이 넓은 모자를 쓴 여자가 눈에 띈다. 오전에 지나치며 본 트래커다. 사진을 열심히 찍으며 천천히 걷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배낭을 지고 다시 걷는다. 앞으로 두 시간 정도면 타다파니일 것이다. 다시 계곡을 내려가 언덕을 한참을 오르니 타다파니 도착했다. 광장처럼 넓은 마당을 가진 롯지를 중심으로 숙소와 상점들이 모여 있다. 대부분의 트래커들은 이곳 타다파니에서 오늘 일정을 마무리하고 쉬어 간단다. 하지만 난 츄일레에서 머물기로 해 조금 쉬고 수도에서 시원한 물을 채워 출발한다. 약간의 오르막 내리막을 걷다 보니 저 산 아래가 보인다. 이제부터 내리막이다.


츄일레

  츄일레에 도착해 목적한 디스커버리 롯지에 갔더니 한국 단체여행객이 많아서 방이 없단다. 20여 명 정도의 사람들이 한국의 메이저 여행사를 통해 트래킹을 하는데 나와 같은 일정이라서 앞서건 뒤서거니 하며 안나푸르나까지 함께 한다. 이 트래커들은 전속 요리사까지 있어 매끼를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 같았고 김치 등 한식도 즐겨 먹는 것 같다. 이 롯지를 미리 예약한 사람들은 들어가고 나는 다시 길을 나선다.


다른 롯지에도 방이 없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한 마음으로 촘롱 쪽으로 조금 내려가자 저 멀리 왼쪽에 롯지가 하나 보인다. 가이드가 잠깐 기다리라며 논둑을 따라 길도 없는 그곳으로 향한다. 롯지는 1층으로 기다랗고 파란 지붕에 마당이 넓어 좋아 보인다. 저곳에 빈방이 있어야 할 텐데 생각한다.


한참 후 가이드가 손을 흔든다. 오라는 신호이다. 논둑을 따라 한참을 걸어 도착한 롯지 이름은 레인보우이다. 아담한 크기의 식당과 기다란 회랑을 가진 롯지로 파란색 지붕이 잘 어울린다. 방을 정하고 먼저 핫 샤워를 물어보니 가능하단다. 어제 고라파니에서는 술 마시며 히말라야를 감상하느라 시간이 늦어 미지근한 물로 어렵게 샤워를 해 츄일레 도착하면 바로 샤워를 하고 싶었다.


방에 딸린 화장실 겸 샤워실엔 창문에 유리조차 없고 샤워기의 물은 차갑다. 옷을 다시 입고 식당에 가 NO 따또파니라고 하니 물을 틀어놓고 기다리란다. 다시 돌아와 물을 틀고 한참을 기다리니 점점 따뜻해지더니 무척 뜨겁다. 이렇게 뜨거운 물을 네팔 도착해서 처음이다.


카트만두의 비싼 호텔도 이렇게 뜨겁지 않았는데 행복한 기분으로 샤워를 마치고 빨래한 양말과 수건을 챙겨 들고 식당 난로 가에 널고 자리를 잡는다. 고양이 한 마리가 난롯가 긴 의자에 누워 정말 편안하게 자고 있다. 이곳은 그나마 나무 사정이 좋은가보다 장작이 크고 두껍다.


 따뜻한 난롯가에 앉아 졸음을 참고 있자니 한 명 두 명 트래커들이 방을 찾아 들어온다. 위쪽 큰 롯지가 만실이니 이쪽도 분비나 보다.



  나보다 먼저와 있던 한국 여자와 인사 나누고 졸린 눈을 비비며 멍하니 저녁 식사가 나오길 기다린다. 한참 후 키가 큰 노인이 들어온다. 군살이 없는 좋은 체격이다. 그도 한 손에 빨래를 들고 있다. 난롯가에 한자리를 차지하고 앉는다.


그리고 이내 인사를 건넨다. 영어다. 갑자기 낯설어진다. 인사를 나누니 그 사람은 이탈리아인이고 ABC를 가며 여행 전에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500Km도 걸었단다. 잠깐 말해준 연륜이 대단하다. 난 어렵게 말한다. 듣는 것은 어찌 되지만 말하는 건 어렵다고 말하고 난 조용히 들었다.


몇 가지 질문이 따라왔다. 어느 나라 사람이냐? 몇 살이냐? 직업이 뭐냐? 등등 아 이 사람 영어 하는 한국 사람인가란 의문이 든다. 질문들에 짧게 대답하다 보니 저녁 식사가 나왔다. 이제 제법 식당 안이 북적거린다. 트래커들이 자리를 잡고 저녁을 먹는다.


주문은 각자의 가이드나 포터에게 하고 음식도 가져다준다. 어제는 어색했는데 오늘 생각하니 여기에 맞는 시스템인 것 같다. 이곳 식당 주인은 트래커가 많아 누가 누구인지 알 수 없고 서빙을 하자면 일이 많아지니 가이드나 포터를 통하면 쉽게 해결된다. 대부분의 롯지가 같은 시간에 주문하고 식사를 하니 동시에 서비스하기 편리하고 그 덕에 가이드나 포터에게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할 수 있는 것 같다.


  저녁에도 식욕이 없다. 점심도 간단히 해결했는데 체력적으로 힘들지 않지만, 식욕이 없어 삶은 달걀 두 개와 토스트 두 쪽으로 저녁을 대신한다. 식사 후 방으로 가면 할 일이 없기에 식당에 그냥 앉아있다. 몇 새로운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일본인 여자 트래커와 이야기를 나눈다.


이탈리아 노인과 각기 다른 언어를 구사하는 세 사람이 일본어, 영어, 한국어를 섞어서 가며 다국적 대화 중이다. 이탈리아 노인의 질문 공세에 답하느라 잠시 분주했다. 이야기 나누다 보니 이 일본인도 39일 동안 890km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단다.


두 사람은 산티아고 이야기로 한참의 시간을 보내고 다시 나에게 여러 가지를 묻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8시쯤 되었다. 모두 잠을 자러 가는 분위기여서 방에 돌아왔지만, 쉽사리 잠들지 못했다.


트래킹 와서 밤에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기에 책도 두 권 가져왔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고 잠도 오지 않아 그저 멍하니 누워있다가 어둠에 익숙해지려 뒤척이다 잠들다 깨기를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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