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시간

#1 그녀와 그녀의 이야기

by 온정선

1년에 한두 번쯤은 고등학교 동창생 같은 모습을 하고 내 앞에 나타나는 사람들이 있다.


대부분의 직장인들과 마찬가지로 선배와 나는 금요일 오후를 즐겁게 보내기로 했다. 그리하여 도착한 곳은 삼성동 O호텔 지하 bar. 생각만큼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장식이 있는 커다란 기둥 옆 테이블 앉아 칵테일 두 잔을 주문했고 기분 좋게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나른하고도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직장 동료 언니인 K와 최근에 있었던 현장 소장님과의 일을 얘기하고 있었는데, 맞은편 테이블에 혼자 앉아 있는 여자와 우연히 눈이 마주쳤다.


마른 체격, 짧은 머리가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여자. 아주 오래전 우리나라 대학가요제에서 우승하고 인기를 휩쓸었던 가수가 떠올랐다. 나이는 서른 살 정도. 눈은 웃고 있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외로워 보이는. 나도 살짝 웃어주었다. 그건 정확하지 않지만 아마 그랬던 것 같다.


그 때문이었을까? 주문한 칵테일을 마시고 있는데 건너편 그녀가 어느새 내 옆자리에 다가와 앉으며 “지금 마시고 있는 거 궁금하네요. 나도 마셔보고 싶어”라며 바로 내 볼에 손등을 가져다대고는 부.드.럽.네.요. 라고 말을 하는 것이었다.


적대감이 들지는 않았지만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동료 K의 표정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일그러져있었다.


다행이었던 것은 직원 2명이 곧장 우리에게 다가와 자리를 옮겨주겠다고 권하였다는 것이다. 나는 어색하게 일어나 K와 함께 자리를 이동했다.


당황하고 정신없는 사이, 그녀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고등학교 동창생 같이 친숙한 얼굴을 하고 찾아와 말을 걸곤 어느새 사라져버린 그녀. 지금은 또 어느 다른 곳에서 누군가의 볼을 만지고는 있지는 않을까. 가끔씩 그런 엉뚱한 생각이 떠오르곤 했다.


K선배 이력서는 지원자 리스트를 내가 확인하고 사장님 책상위에 올려놓았다. 단정하고 깔끔한 단발머리를 한 같은 대학교 졸업생으로 1년 선배였던 K의 입사지원서 사진을 보며 같이 일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선배가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기대했던 것처럼 일도 깔끔하고 디테일하게 진행하는 K는 직장 동료이자 대학 선배 그리고 어느새 친한 친구가 되어있었다.


그렇게 2년을 함께한 K는 한 달 후면 한국을 떠나 미국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한다.

어쩌면 별거 아닐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K는 정말이지 할 말이 많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애정 어린 눈빛도 함께. 미도리 샤워 한 잔을 더 주문하자 선배는 기다렸다는 듯 곧바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 낯선 사람이 옆에 온 것은 다 진형씨 잘못이야. 가끔씩 타인과 경계를 한 순간에 없애버리고 누군지도 모르는 낯선 사람들에게 다가오라고 손짓이라도 하는 사람 같아. 외로운 영혼들을 왜 자꾸만 옆으로 부르는 건데? 난 가끔 당신이 걱정돼."


선배 K의 진지한 표정. 그리고 진심이 담긴 얘기를 듣고 있노라니 밤 깊은 섬에 홀로 서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 선배. 사람은 누구나 외롭잖아요?”


“ 그래. 사람은 누구나 외롭지. 나는 지금 그런 말을 하자는 게 아니야.

이 세상엔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 정말 많아. 그렇게 무슨 말을 해도 다 이해해줄 수 있을 것 같은 눈빛으로 낯선 사람들을 바라보지 마.


때론 만나지 않는 편이 훨씬 나은 사람들도 세상에 존재한다는 걸 꼭 기억해두고 있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오늘은 우리 집에 가자. 내가 머리 염색해줄게.”


“ 왜요. 갑자기?”


“ 초록색으로 염색하고 싶다했잖아. 미국가기 전에 내가 뭔가 해주고 싶어.”


“알겠어요. 근데 가끔은 이런 비슷한 일은 있었고. 그다지 거부감은 없었어. 나에게 큰 피해를 준건 아니잖아요..” 뭔가 얘기를 하고 싶었지만, 이제 그만 다른 이야기로 바꾸는 것이 좋을 거란 생각도 동시에 하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