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우린 모두 섬이다
오랜 친구에게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선배에게 하고 싶었지만, 선배의 단호함과 담백함은 나를 침묵하게 만들었다.
“ 나 많이 걱정돼요?”
“ 응. 그리고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어. 진형 씨가 진정으로 원하는 사람. 자기감정을 그냥 흘려버리지 마”
“ 알겠어요. 노력해볼게. ”
그런데 나는 대체 뭘 노력한다는 대답했던 것일까? 나를 규정짓는 상대방의 마음도,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을.
철학, 심리학 서적이라도 읽어봐야 하는 건가? 건너편에 있었던 그녀는 어디로 갔을까? 그런데 그녀가 맞을까? 혹은 그였을지도 모른다.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을 그녀로 규정지었던 것은 아닐까?
문득 그 사람은 남자도 여자도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神은 남자, 여자 그리고 남자도 여자도 아닌 제3의 성을 만들었을지 모른다. 그들도 처음에는 자신이 남성 혹은 여성으로 알고 지내다가 성인이 되었을 무렵 자신의 성이 제3의 성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고 혼자 감당하기엔 힘든 혼돈의 시기를 지낸 후에 결국은 그들을 자기 마음대로 규정짓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내보이지 않고 살아가다 조용히 생을 마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꾸만 생각나는 그 여자의 눈빛과 표정. 일 년에 한두 번쯤은 고등학교 동창생 같은 얼굴을 하고 내 앞에 나타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세계에는 나의 의지와 상관없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술을 마시기 위해 온 호텔 바에서 처음 본 타인에게 다가와 갑작스럽게 볼을 만지며 말을 거는 사람의 정신상태란 도대체 어떤 성질의 것일까? 사실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어딘지 모르게 나와 닮은 모습을 하고 다가온 그 사람에게 관심이 생긴 것은 아니다. 그저 나에게 무슨 얘기가 하고 싶었던 건지 궁금했을 뿐이다.
그것보다는 선배가 진짜 걱정하는 것은 무엇인 건지.
나를 자신조차 지키지 못할 정도로 나약하고 어른스럽지 못한 사람이라 생각하는 것일까. 물론 나 자신을 어른이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지만.
자신의 감정이나 타인에 대해 성급하게 정의를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혐오감 비슷한 감정을 느낀 적이 종종 있다. 그런 사람들은 판단을 유보하는 나에게
“ 넌 참 나와 달라.”라고 말하며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비난하듯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전달한다.
나는 섬이다.
사람은 모두 섬이다.
원할 때엔 서로에게 긴 다리를 놓고 연결되어 있어도
이내 그 연결다리를 걷어버린 채
한없이 바다 위에 홀로 부유하는 섬
외롭지 않은 순간에도
우린 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