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타인을 이해하는 기준
그러고 보니 전에도 이런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것도 같다. 비슷한 상황들의 연속.
그 사람은 정말 나에게 무슨 얘기가 하고 싶었던 것일까? 결론 나지 않는 생각이 끝을 맺지 못하고 맴돌고 있다.
“ 음...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그만 집에 가자.”
가깝게 지냈던 선배였지만, 내 기준으로는 이렇게 부유한 환경인지는 몰랐었다. 나는 그때 이모가 소유한 주택 중 빈집이 있어 집값에 비하면 거의 공짜나 다름없는 전세로 신세를 지고 있었다. 서울 강남 한복판 아파트에서 혼자 사는 2년 차 직장인. 부모님이 도와주셨을 테지만 어쨌든, 그때 우리의 월급은 뻔했으며, 모은 돈이 있어도 서울 집값은 그때나 지금이나 만만히 않은 큰 금액이었다.
선배의 집은 왠지 모르게 선배의 성격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한 장식이나 그림 하나 걸려있지 않은 화이트 톤의 심플하고 군더더기 없는 공간, 불필요한 물건들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갑자기 내 집안 풍경이 떠올라 부끄러웠다.
초대하지 않는 낯선 사람으로 인해 술자리에서 금방 일어나게 되었지만, 왠지 모르게 기분 좋은 밤. 그렇지만 한 달 뒤에는 볼 수 없는 사이가 되어버린다. 조금은 아쉽다는 기분이 들었다. 더 많은 생각을 하고 싶었지만 한 주간 피로가 쌓인 금요일 밤이었기에 쏟아지는 잠을 이길 수는 없었다.
아침 일찍부터 선배는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다음 달이면 미국으로 떠나는 언니의 집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초대된 것이다. 담백한 미역국과 싱거운 야채 요리를 먹으며 문득 지금까지 이 사람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던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8시간 이상, 2년 가까운 시간을 같은 공간에서 일로서 함께했지만, 어쨌든 각자의 프로젝트를 담당했기에 서로를 알만한 시간이 충분하지는 않았으리라. 그러나 더 많은 시간을 함께했다고 해서 더 잘 알았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는 내가 했다. 그 사이 선배는 어제 오는 길에 마트에서 사 온 애쉬 그레이 염색약 설명서를 보고 있었다.
“집에서 염색하는 것은 처음이야. 더군다나 다른 사람의 머리카락을..”
“ 그런데 왜 염색을 해주고 싶어 졌어요?
“응. 전에 이 컬러로 염색하고 싶다고 했었잖아? 떠나기 전에 뭔가 해주고 싶었어.”
선배는 무척이나 섬세하고 꼼꼼하게 염색약을 발라주었다. 내가 내 머리를 해도 이렇게까지는 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욕실에서 머리를 감고 나왔는데 선배가 드라이를 준비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무슨 의식이라도 치르듯 정성스러운 선배를 보고 있노라니 어쩐지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어쨌거나, 머리색은 햇빛이 비칠 때마다 잔잔하게 보이는 정도로 자연스럽게 들여졌고, 한동안 사람들에게 예쁘다는 소리를 들어야 했던 것도 기분 좋은 추억이 되었다.
잠깐의 느린 산책 후 여유를 느끼며 테라스가 있는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했어도 좋았을 토요일 오후. 집으로 돌아가도 딱히 할 일은 없었으나 매일같이 먹이를 달라고 집으로 찾아오는 길고양이 세 마리가 떠올랐다. 가야 할 핑계거리를 찾아낸 것인지 모르겠다.
“주말엔 뭐 할 거예요? 난 집에 일도 있고 가봐야 할 것 같아”
“응. 역까지 데려다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