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 10년도 전, 나는 종종 써왔던 글들을 책을 좋아했던 한 친구에게 보여주었다.
"네 글에서 배수아와 하루키가 느껴져"
"아. 정말?"
그 후에 다시 한번 친구는 "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읽어봤어? 박민규 작가의.."
" 아니. 왜?"
"그의 글 같기도 해. "
" 아... 그래? "
사실 즐거운 대화였다. 나의 부족한 글을 읽으며, 작가들을 떠올렸다는 것 자체가.
배수아와 하루키는 좋아하는 작가였지만, 박민규 작가의 글은 읽어보지 않았으므로 읽어야겠다고 생각만 하고, 10년 넘게 아직까지도 읽지는 못했다.
내 글에서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을 떠올렸다면, 나도 모르는 사이 따라 쓴 문장들이 있었던 것일까? 무의식적으로?
하지만 기억력이 극도로 저질인 내가 누군가의 글을 닮았다는 말은 기분좋은면서도 의아했다. 의도하지 않았으므로
그때 처음으로 누군가의 글을 무의식적으로 따라 쓸 수도 있을까?라는 생각을 조금쯤은 하게 된 것 같다.
한동안 그들의 글을 읽지 못했던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또한 그 친구와도 언제부터인지 점점 멀어지게 되었고, 그 사이 참 오랜 시간이 흘렀다.
가끔 궁금하다. 비슷해서 좋아한 걸까. 좋아해서 닮아간 걸까.
내가 좋아하는 다른 국내 작가들은 종종 책 속에서 하루키를 언급하고 좋아한다는 표현들을 한다.
이 세상엔 하루키를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지 않는 사람으로 나뉘고, 나는 그를 좋아하는 부류에 속한다고 생각하곤 한다.
그러다 최근에 아주 아팠던 어느 날, 침대에 누운 채로 친구에게 하루키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조금만 읽어달라고 부탁했던 날이 있었다.
친구는 느슨한 목소리로 하루키의 문장을 읽기 시작했고, 도저히 읽지 못하겠다는 말투로
“이거,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어. 그리고 마치 네 글 같아.”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글이 친구 본인 스타일이 아니라는 뜻 )
나는 웃음이 빵 터져버렸고, 너무 웃다가 눈물까지 나왔다.
비슷해서 좋아진 걸까.
좋아해서 비슷해진 걸까.
가끔 정말 궁금하다.
나의 무의식이 그의 글을 조금이라도 따라 쓴 것일까?
아직도 잘 모르겠다. 마침내에도 결국에도 알 수 없을 거라 생각한다.
가끔은 아주 오래된 나의 글을 꺼내본다.
내 글이 맞지만 그때 그 글을 썼던 나는 이제 어디에도 없고, 지금의 나는 또 다른 자아인가 싶은 낯선 글들
기록이 없었다면, 내 글인지 모를 그런.
하지만 내 글이 맞으므로 그 글들을 꺼내어 다시 복제하고, 수정하고 끊임없이 변주한다.
나는 나의 글을 따라 쓰는 것이다.
내 글을 내가 다시 따라 쓰고 수정하는 것은 허용이 가능한 것이겠지?
어디까지가 나의 문장이라 말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