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 것의 총합

by 온교

도서관에 책 반납을 하러 갔다가 문득 이제껏 내가 읽은 책이 몇 권이나 되는지 궁금해졌다. 2018년 1월부터 11월까지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65권이었다. 시간이 없는 경우가 아니고서야 대출 기간 내에 끝을 보지 못할 어려운 책들은 없었으므로 시간 부자 백수인 나는 모든 책을 거의 완독했다. 65권 중 5권을 읽지 않았다 해도 60권. 한 달에 한 번씩 밥을 포기하고 사들인 13권. 현재 읽고 있는 책과 12월에 읽을 책까지, 어림짐작으로 총 82권. 반올림하여 한 달에 7권이란 결론이 나왔다(재독은 포함하지 않음). 사흘에 한 권 꼴이다. 도서관 책상에 앉아 조그맣게 계산을 해보던 나는 흠칫 놀랐다. 초등학교 고학년 이후로 이렇게 많은 책을 읽었던 때가 있었나? 중고등학교 땐 문제집 푸느라 바빴고 대학생이 되고선 술 마시고 노느라 책에 소홀했다. 서울은 밋밋한 흰 종이보다 화려하고 반짝이는 것들이 사방에 널린 도시였다.


활자 읽는 속도가 매우 느린 내가 한 달에 7권을 읽었다는 건 단순히 시간 널널한 구직자라서가 아니었다. 와이파이와 충전기, 스마트폰만 있으면 하루종일 심심하지 않게 놀 수 있는 게 요즘세상인데. 다시 도서관 홈페이지에 들어가 대출현황을 쭉 살펴봤다. 스토리는커녕 제목과 작가 이름도 정확히 기억 못하는 책들도 있었다. (독서 노트를 꾸준히 쓰지 않은 자의 최후랄까) 허허 참. 실소가 났다. 작가 이름 하나도 똑바로 기억 못할 거면서 뭘 이렇게 꾸역꾸역 열심히 읽었을까. 120페이지 얇은 책 한 권부터, 합쳐서 2000페이지에 다다르는 세 권짜리 책까지. 삽화도 없는 이 빽빽한 활자들을.


독서를 쉬어본 적 없지만 올해는 유독 수두룩하게 읽었다. 작년, 재작년과 비교하면 2배 가까이 차이난다. 고백하자면 신간을 서점 책장 옆에 서서 읽고 온 적도 있다(이건 합산에서 뺐다). 매일매일 힘겹게 한 글자씩 지우고 써나갔을 작가를 생각하면 모든 걸 털어 사고 싶었지만 슬프게도 내 주머니에서는 아무리 탈탈 털어도 돈 될 만한 것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라도 읽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도대체 왜.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밤을 견뎌내는 걸, 누군가와 함께 따뜻한 침대에 누워 있는 걸 말하는 거예요. 나란히 누워 밤을 보내는 걸요. 밤이 가장 힘들잖아요. ─ 켄트 하루프, 밤에 우리 영혼은


밤을 견디는 것. 나란히 누워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가장 힘든 밤을 보내는 것. 무엇보다 스스로도 이해가지 않는 내 자신 말고, 옆에 누워 이야기할 다른 대상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 같았으면 절대 선택하지 않을 선택지를 고른 안나 카레니나, 무시보다 관심을 받기 위해 도로로 뛰어드는 모모, 어머니와 친구의 죽음을 지나온 공상수, 함께 말을 나눌 사람 없는 나날을 ‘이름 없는 나날’이라고 부르는 허수경 시인 등을 책 속에서 찾아다녔다. 내가 원할 때 펼치면 몇 번이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들을 헤아리고, 고된 날을 견뎌온 흔적을 하나둘 훑어가며 나는 나를 온전히(그리고 여전히) 이해하진 못해도 닦달하는 일 만큼은 멈추게 되었다.


그러니 읽었다는 표현보다 붙잡았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이거라도 붙들지 않으면 도무지 어디에 의지해야할지 나는 몰랐다.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은 기대어도 될 만큼 믿음직스러우며 언제나 보고 싶었지만 그들이 ‘자기 앞의 생’을 살아가게 두었다. 그건 내가 그들을 사랑하는 방식이었고,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내 앞에 놓인 생을 살아내는데 집중해야 했다.


나의 기억은 한탸만큼이나 활자로 구성되어 있다. 책을 읽어 삼키지 않고서는 삶을 이어나가기 어려웠고, 삶을 글로 토해내지 않고서는 납득하기 어려웠다. 나는 내가 읽은 것과 쓴 것의 총합이다. 그 양도 질도 변변찮지만 그렇게밖에는 나를 정의내릴 방법이 없다. ─ 김겨울, 독서의 기쁨


앞으로 계속 어쩌면 더더욱 읽고 쓰는데 매달릴지 모르겠다. 나를 곡해 없이 정의내리게 될 때까지. 써 재끼는 글은 별 볼일 없겠지만, 달리 그것밖에는.








Photo by Florencia Viadan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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