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피함이 불러온 투지
스스로를 바이킹의 혈통이라고 소개하던 미국인, Chris. 그는 내가 영어라는 세계를 탐험하며 가장 오랫동안 인연을 맺었던 선생님이다. 뿌리에 대한 확신과 자부심이 넘치던 이 청년은 외모부터 강렬했다. 은빛에 가까운 백금발이 눈썹과 속눈썹에까지 눈가루처럼 내려앉아 있었고, 그리 미남은 아니었지만 눈빛만큼은 늘 영리하게 번뜩였다.
새벽반의 문을 열고 들어오던 첫날, 짤막한 자기소개를 마친 뒤 이어진 수업 방식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그는 미리 출력해 온 「The Seattle Times」 기사를 우리 앞에 툭 내려놓더니, 시계 방향으로 돌아가며 한 문단씩 읽으라고 했다.
강의실에 들어서기 전까지 머릿속엔 나름의 '예상 질문'이 완벽하게 들어차 있었다.
“What did you do yesterday?”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전날의 일과를 영어 시제에 맞춰 몇 번이고 되뇌었건만, 바이킹의 후예는 다정한 안부 대신 준비되지 않은 날 선 신문기사 속으로 우리를 곧장 밀어 넣었다.
모르는 단어는 끝이 없었고, 문장은 유난히 길게만 느껴졌다. 내 차례가 다가올수록 가슴은 두근거렸고 등줄기는 따끔거렸다. 어떤 이는 거침없이 읽어나갔고, 어떤 이는 나와 비슷했으며, 또 누군가는 나보다 더 느릿하게 단어를 더듬거렸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리 기사를 읽고 준비할 수만 있다면, 적어도 이렇게 꼴사납게 버벅거리지는 않을 것 같았다. 수업이 끝나자 마자 나는 크리스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Could I get the article one day in advance?”
(기사를 하루만 먼저 받을 수 있을까요?)
크리스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만 기다리라더니, 다음 날 수업에 사용할 기사를 미리 챙겨 주었다.
그날부터 진짜 영어 공부가 시작됐다. 하루에 기사 한 편, 텅 빈 방 안에서 혼자 발음을 굴리며 큰 소리로 읽었다. 처음에는 뜻을 몰라도 문맥을 짐작하며 소리 내는 데 집중했고, 두 번째 읽을 때는 모르는 단어를 찾아가며 내용을 곱씹었다.
단어장을 따로 만들지는 않았다. 대신 몇 번을 읽어도 낯선 단어 위에만 형광펜을 칠했다. 상황과 문맥을 머릿속에 그리며 읽고, 또 읽었다. 그렇게 수차례 낭독을 반복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다음 날 강의실에서 내 차례가 왔을 때.
바이킹의 후예 앞에서 더 이상 버벅거리지 않고,
단군의 후예답게 조금 더 당당해지고 싶다는,
그 간절한 마음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