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독점자

목성이라 불리는 남자

by 버티기





영하의 기온을 뚫고 새벽을 가르며 학원으로 향했다.


골목은 늘 주차 전쟁이었고, 그날도 빈자리는 보이지 않았다. 비탈진 길에 간신히 차를 세우려는 순간, 타이어는 얼어붙은 지면 위에서 마찰력을 잃었다. 사이드브레이크를 당겨도 소용없었다. ‘스르륵’ 미끄러졌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앞차를 들이받은 뒤에야 멈춰 섰다.


그날은 내가 처음으로 ‘Free Talking’ 반에 들어간 날이었다.


사고의 여파로 심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강의실 문을 열자 공기는 이전 반과 확연히 달랐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영어를 ‘마구’ 잘할 것처럼 보였다.


자기소개 시간이 시작됐다. 대부분은 이름과 직업을 말하며 짧게 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한 남자는 달랐다. 자신을 ‘목성(Jupiter)’이라 소개한 젊고 신비로운 남자.


그의 영어는 연음이 흘러넘쳤고, 속도는 따라가기 버거웠다. 그는 거의 네 사람 몫의 시간을 혼자 사용했다. 그날 한 시간은 ‘목성’의 독무대를 감상하다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다음 날도 비슷했다.

누군가 입을 열면, 그의 중력이 대화를 다시 끌어당겼다.


프리토킹은 자유롭게 말하는 수업이었지만, 그 자유는 바통을 공정하게 나누는 배려 위에서만 빛나는 법이었다.


“I’m curious to know what others think about this.”

그런 질문으로 타인에게 기회를 넘기는 것이 나의 상식이었다. 그러나 거대한 중력을 지닌 목성 앞에서는 통하지 않는 논리였다.


아이들 학원비도 많이 나가는데, 나 자신을 위한 투자다 생각하며 매달 수강료를 결제했다. 그 달엔 사고 수습비까지 더해지자, 나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침묵을 사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돌아오는 날이 이어질수록 고민은 깊어졌다.


그만둘까.


하지만 결국 버텨보기로 했다.


새벽 공기를 가르며 오던 사람들의 열정은 뜨거웠다. 그러나 그 뜨거움이 꾸준함으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았다. 달이 바뀌고 계절이 변하면,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떠나갔다.


나는 기다리기로 했다.

거대한 목성이 지평선 너머로 사라질 때를.


그리고 그 자리에, 나의 나지막한 목소리를 올려놓을 준비를 했었다. 언젠가 그에게, 혹은 나 자신에게 건넬 이 한마디를 품은 채.


“I believe the true value of conversation lies not in speaking fast, but in listening and sharing the space together.”

(대화의 진정한 가치는 빨리 말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경청하고 그 공간을 함께 나누는 데 있다고 믿습니다.)


차가운 새벽 공기를 가르며 학원으로 향하던 날들이 이어졌다.

목성이 지고, 나의 태양이 떠오를 날을 기다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