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 너무도 두려운 세상 앞에서
인간의 성격은 생애 주기별 과업을 어떻게 완수하느냐에 따라 형성된다는 에릭슨(Erikson)의 이론에 비추어 볼 때, 나의 첫 단추는 어긋나 있었다. 생후 1년, 삶의 첫 과업인 ‘기본적 신뢰(Basic Trust)’의 결핍이다.
이 시기에 신뢰를 쌓지 못한 이에게 세상은 불안하고 믿을 수 없는 곳이 된다. 그 불확실한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는 끊임없이 숨어서 관찰하고, 세상을 해석하려고 노력했다. 그것은 근원적인 결핍이 만들어낸 무의식적인 생존 전략이었다.
이 결핍의 조각은 세상을 바라보는 나만의 ‘렌즈’가 되었다. 각자의 렌즈는 색과 굴절률이 다르기에, 우리는 같은 사건 앞에서도 서로 다른 진실에 도달하곤 한다.
나의 세상은 믿을 만한 곳이 아니었기에, 나는 역설적으로 ‘솔직함’에 집착했다. 모호한 침묵보다는 뼈아픈 사실이 더 안전하다고 믿었고, 그것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하고 정직한 방식이라 여겼다.
젊은 날의 솔직함은 종종 타인을 겨누는 날카로운 칼날이 되었다. 거침없이 내뱉은 말들은 의도와 달리 누군가에게 상처를 남겼다. 중년의 문턱에 들어서자, 그 솔직함은 방향을 틀어 나에게로 되돌아왔다. 솔직한 고백은 치명적인 약점이 되거나, 감당해야 할 무거운 책임의 굴레가 되어 나를 짓눌렀다.
‘솔직함’이라는 이름으로 타인을 베기도 하고, 그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며 이제는 깨닫게 되었다. 그것이 반드시 진실도, 정의도 아니며, 언제나 타인에게 도움이 되거나 나를 지켜주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하지만 이제 나는 그 특성을 삶을 성찰하는 하나의 도구로 다듬어 보려 한다. 더 이상 타인을 상처 입히기 위함도, 나의 상처를 전시하기 위함도 아니다.
그저 삶의 모퉁이마다 결핍을 껴안고 버텨온 한 사람이 바라본 세상을, ‘솔직함’이라는 나의 도구로 조심스럽게 들여다보며 함께 생각해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