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묘하고 쌉싸름한 간극
친정에 머물게 된 한두 달의 시간조차 나의 영어에 대한 열정을 잠재울 수는 없었다. 당시 종로 거리는 발길 닿는 곳마다 어학원 건물이 즐비했다. 고즈넉한 서귀포와는 공기부터 달랐다. 미리 예약을 하고 긴장감 속에 레벨 테스트를 치러야 했고, 강의실은 활기 넘치는 젊은 학생들로 가득 차 있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배정받은 반에서 만난 선생님은 30대 후반의 유대계 미국인, 아이작(Isac)이었다. 흔히 '외국인' 하면 떠오르는 큰 키와 건장한 체격과는 거리가 먼, 작고 아담한 체구의 남자였다.
어느 날 수업 도중, 그는 갑자기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겠다고 했다. 그러더니 우리에게 뜻밖의 부탁을 하는 것이 아닌가. 지금 자신이 있는 한국이 얼마나 안전한 곳인지 어머니께 직접 '증언'해달라는 것이었다. 당시 외부 세계의 시선에서 한국은 언제든 교전이 일어날 수 있는 위험한 분쟁 국가였던 모양이다. 역지사지로 우리가 튀르키예 여행 중 시리아 국경 근처에 간다고 했을 때 느낄 두려움을 생각하니, 멀리 타국에 아들을 보낸 아이작 어머니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갔다.
우리는 어머니를 안심시키기 위해 너도나도 수화기 너머로 밝은 목소리를 보탰다. 한국은 아주 평화롭고 안전하다고, 걱정 마시라고. 우리의 밝은 기운이 전달되었는지 아이작의 어머니는 한결 홀가분해진 목소리로 작별 인사를 건넸다.
수업이 끝나고 밥을 먹으러 갈 때면 아이작도 종종 우리와 함께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식당에 앉아야 할 때면, 아이작은 늘 정중하게 무릎을 꿇고 앉았다. 우리가 다리가 저리지 않겠냐며 편하게 앉으라고 권할 때마다 그는 특유의 유쾌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I’ve been training in Japan for a long time,
so kneeling isn’t difficult for me.
And this makes me look bigger, too.
(일본에서 오랫동안 훈련을 해서 무릎 꿇는 게 전혀 어렵지 않아요. 게다가 이렇게 앉으면 키가 더 커 보이기도 하거든요.)
서양인에게 고역인 양반다리 대신 선택한 그만의 대안이었겠지만, 한편으론 자신의 작은 키를 보완하려는 위트 있는 책략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당당한 목소리와는 별개로, 그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마음은 늘 조금씩 불편했다. 한국인에게 '무릎을 꿇는다'는 행위는 잘못을 빌거나 벌을 받을 때 취하는 자세였기에, 그 문화적 간극에서 오는 미묘한 미안함은 오롯이 우리의 몫이었다.
그의 당당함과 우리의 미안함 사이. 그 묘한 간극은 문화라는 것이 얼마나 상대적인지를 보여주는 유쾌하고도 쌉싸름한 풍경이었다. 종로의 그 치열했던 여름, 아이작은 우리에게 영어보다 더 깊은 '다름'의 가치를 가르쳐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