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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잡문집

눈물의 2차전(번외편)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by 온리

운전자라면 누구나 주의를 한다. 나도 그랬다고 생각했다. 주차장 입구가 오른쪽이었고, 보행자는 왼편으로 비켜서 주었으며, 나는 주행방향이 오른쪽이니 그쪽을 더 신경 쓰면서 진입을 했다. 안전하게 주행 중이라고 생각했는데 사람을 쳤다고 하니 놀랐고, 쌍욕이 날아오니 또 놀랐다. (멈춘 사람도 다시 보자.)


보행자는 노숙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차림을 하고 있었다. 얼굴에는 이미 피딱지가 덕지덕지 붙어있었고, 눈동자가 자율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창문을 열자마자 운전자와 보행자의 의례 오가는 대화는 해보지도 못하고 눈물부터 쏟고 있으니, 지나가던 동네분들이 힐끔거리다가 한 마디씩 해주셨다.

"그냥 신고해요. 얘기하지 말고."

"신고부터 해요. 합의 같은 거 하지 마세요."

"놀랐나 보네. 울지 마요."


그리고 들려온 커다란 소리.

"아니 왜 차가 지나가는데 앞으로 가요? 사람이 놀래서 울잖아요. 왜 욕을 하고 큰소리로 그러세요?"

모자를 쓴 청년이 어디선가 나타나 나 대신 보행자와 대거리를 한다. 뿌엥.

"차 안에 가만히 계세요. 경찰 신고 하셨죠? 경찰 올 때까지 차 안에서 나오지 마세요."

정신없이 울기 바쁜 나를 대신해 하느님이 천사라도 보내주신 걸까. 대체 누구신데 저를 도와주시는 건지.


오른쪽 골목으로 꺾어 들어갈 때 골목 양쪽에 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그중 왼쪽 노란색 승합차량의 주인으로서 사고 당시 운전석에 앉아있었으며 운전석 앞 유리창 너머로 그분의 행동을 다 지켜보고 있었던 목격자였다.


"내가 다 봤어요. 팔로 치는 거. 내가 경찰 오면 증언해줄 테니까 차 안에 계세요."

연신 나를 다독이며 도와준다 하시니 너무너무 고맙고 마음의 위안이 되었다. 그러나 그분이 증언을 하려고 하자 경찰은 "누구세요? 제삼자는 아무 말씀 마세요."라고 하는 것 아닌가.


경찰은 사고가 접수되면 현장에 출동하여 사건 당사자와 어떻게 된 것인지 이야기를 나누고 자리를 떠난다고 한다. 누구누구의 잘잘못은 따지지 않는다고. 승합차 주인은 보험사 직원과 상세히 이야기를 나누고 블랙박스 제공 등 목격자로서 협조를 하겠다고 했다.


대흥제1공영주차장 근처에서 노란 승합차에 타고 계셨던 청년분 정말 고맙습니다. 거기에 사는 건지, 성심당에 빵 사러 간 가족을 기다리시느라 거기 계셨던 건지 모르겠지만 거기 계셔주시고 목격해 주시고 심지어 증언까지 해주신다고 하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멘털이 붕괴되어 울기만 하는 사람을 위로해 주고 다독여주고 다정하게 말씀해 주셔서 제가 큰 힘을 얻었습니다. 힘을 제대로 사용하실 줄 아는 당신은 이미 성공적인 삶을 살고 계실 테지만 앞으로 더욱 윤택한 삶이 되시라 저도 기도를 보탭니다. 성심당 빵이라도 드리며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었으나 그 장소에 다시 가기가 너무 무서웠던 저를 용서하세요.


사고일은 4월 20일.

5월 19일에 대전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사고 주변 영상 확보해서 확인했는데 보행자가 술 취해서 비틀대다가 고의적으로 팔을 뻗는 게 확인되었으니 보험 접수를 취소하라고. 운전 20년 경력에 대인사고는 처음이었는데 앞으로 더욱더 조심하면서 운전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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