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히어로들에게 인사를 건네야 할 때.
(스포주의)
모름지기 집안을 휘어잡는 가장 강력한 파워는 ‘장녀’로부터 나온다. 그것은 K-장녀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랬구나… 나타샤 로마노프, 당신도 장녀였군요… 이번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가족’을 정의하는 시대의 흐름이 눈에 띄게 변했다는 점이다. 단지 블랙위도우 뿐만 아니라 최근에 나오는 영화들 대부분 혈육으로 결정됐던 가족만을 원가족으로 보지 않고, 자신의 삶에 영향을 끼친 다양한 인물과의 관계를 통해 스스로 ‘가족’을 결정하고 지킨다는 점이다. 가족 내 구성원이 다양하게 세분화되고 있는 지금의 시대상이 담겨있다. 더 이상 가족은 ‘핏줄’로 결정되지 않는다. 같은 핏줄이어도 가족이 아닐 수 있고, 피가 섞이지 않아도 얼마든지 가족이 될 수 있다.
특히 동양의 경우 나를 지켜줄 ‘보호자’의 대상이 확대되는 반면 서양의 경우는 스스로 존재하는 나와 너의 개념으로 가족을 만들어간다. 가족이라 내가 너를 지키는 것이지, 네가 약하기에 너를 지키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나를 돌보고 키워줄 ‘보호자’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그런 보호자가 있어야지만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서로의 멘탈을 지켜주는 이들이 실질적인 ‘보호자가’ 된다. 상당히 진취적인 사고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어쩌면 이 메시지가 이 시대를 위로하는 키워드가 될지도 모른단 생각이 든다. 새롭게 정의되어야 할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에게 용기를 심어주기 때문이다.
또 하나 재밌던 점은, 사랑받던 캐릭터를 떠나보내고 새로운 캐릭터를 초대하는 마블의 연결 고리를 보는 일이었다. 아이언 맨이 죽었다. 블랙 위도우도 죽었다. 그러나 마블은 영원하다. 더 이상 지나간 과거의 영광만을 붙잡을 수 없기에 인기 캐릭터의 ‘멘탈’을 이어받는 새로운 캐릭터를 붙여 나간다. 이 밸런스를 잘 잡는 것이 관건이다. 블랙 위도우를 그리워할 아름답고 멋진 신화가 그려지되 블랙위도우가 자연스레 잊힐 강력하고 매력적인 인물이 새롭게 떠올라야 한다. 그 역할을 ‘플로렌스 퓨’가 해냈다. 이 배우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역할에 잘 맞아떨어졌다. 그리고 그녀가 가진 특유의 ‘울음이 터지기 직전’ 모든 감정이 얽히고설킨 표정이 마지막 장면에 나와서 만족스러웠다. 언젠가 그녀가 ‘엄마’의 역할을 하게 될 때, 연기의 최정상을 찍을 것 같다.
물론 기존의 마블식 유머가 없다는 점이나, 다른 마블의 영화들과 다르게 다른 캐릭터의 깜짝 등장도 없다는 점이(쿠키 1초?) 아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아름답게 만든 영화다. 마블 영화의 모든 히어로는 악당 혹은 빌런과 싸우지만, 그녀는 소중한 존재들을 지키기 위해서 싸운다. 그녀는 적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옳다고 여기는 정의를 지키기 위해 부조리와 싸운다. 그래서 블랙 위도우는 어벤저스로서 살았던 것이고, 죽을 수 있던 것이다. 진짜 섹시한 것은 그녀의 바디가 아니라는 것을 모두에게 증명하는 영화. 블랙 위도우, 고생했어요.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