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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트루 Nov 03. 2021

영화 리뷰 - <샹치(2021)>

환타지로 넘어가며 시작되는... 안타까운 '환장파티'


序 - '동양인으로서의 의리!'는 지켰으나...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영화 <샹치>는 사실 딱히 기대하고 있던 영화는 아니었다. 마블의 전작인 <블랙 위도우>에 뒤통수를 거세게 얻어맞은 것도 있었고, 주인공도 포스터만 봐서는 딱히 히어로다운 '포스'가 느껴지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캐릭터 자체가 생소하다는 점에서부터 이전의 마블 영화들과는 달리 거리감이 느껴졌기 때문에(샹치는 마블의 이전 작품들에서 카메오로 등장하거나, 쿠키 영상에서조차 소개되었던 적이 없었던 캐릭터였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필자가 좋아하는 양조위 형님께서 나온다는 사실만은 반가웠으나, 마블이 그간 유명 배우들을 앞세워 자신들의 작품의 부족함을 가리려 했던 시도들을 수 차례 겪으며 단련된 필자의 입장에서는 그다지 큰 기대를 품는 일 없이, 다소 덤덤한 마음으로 영화관으로 갈 수 있었다. 그저 '마블의 첫 동양인 히어로에 대한 무의식적인 반가움'만이 필자를 영화관으로 이끈 유일한 원동력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후 영화 <샹치>의 농도 짙은 스포일러가 이어지니, 원하지 않는 분들께서는 영화를 보고 다시 와주셔도 괜찮습니다.





本 - 아쉽다! 첫 스타트를 더 멋지게 끊을 수 있었는데...


<샹치>는 생각보다 괜찮았던, 그리고 괜찮아질 수 있는 포인트들이 생각보다 많았던 영화였다. 허나 그런 부분들이 축소화되고, 연출적인 능력 부족 등으로 인해 영화가 산으로 가기 시작하면서부터 그 괜찮았던 포인트들이 전부 빛이 바랬을 뿐.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복선과도 같았던 극초반의 '싸늘함'


영화의 시작부터 주욱 훑어보자. 영화 시작부터 친히 마중을 나와주신 양조위 형님의 용안이 반가웠으나, 그가 탈로의 입구에서 (그의 아내가 될) 리와 만나서 마치 춤을 추듯 싸우다가 사랑에 빠지게 되는 장면은 정말 참을 수 없이 오글거리고, 앞날이 예상이 뻔히 되는, 매우 아쉬운 설정이었다. 


그리고 이때 깨달았어야 했다. 이때 느낀 싸늘함이, 이 영화의 전체적인 퀄리티가 어떨지에 대한 복선 그 자체였다는 사실을...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오! 90년 대 홍콩영화의 재림을 기대케 했던 초반부의 액션


'샹치가 알고 보니 힘을 숨기고 있던 주인공'이라는 스토리는 다소 뻔하고 심심하기는 했으나, 그가 초반부에 보여준 액션만큼은 예상외로 멋지고 퀄리티가 대단해 이 영화가 앞으로 꽤나 괜찮은 흐름을 보여줄지도 모르겠다는 기대감을 품게 했다(알고 보니 주인공 샹치 역의 시무 리우는 액션 감독이기도 한 무술인이었다). 하지만 이런 장면은 초반부에만 집중되어 있고 후반부에서는 거진 사라져 버렸는데, 이럴 거면 아예 1편은 도시를 배경으로 일어나는 일들과 맨몸 액션에 집중했더라면 <샹치>가 '90년대 홍콩영화의 재림'이라는 평가를 받는, 멋진 액션 영화가 될 수도 있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다.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생각보다 훨씬 괜찮은 캐릭터였던 '샹치'


또한 샹치 역의 시무 리우는 꽤나 건실한 호감형 청년 역할을 잘 소화하면서 단숨에 샹치를 호감형 캐릭터로 자리 잡게끔 만들었다. 앞서 이야기했듯 첫인상만 놓고 봐서는 그의 어떤 면이 히어로로서 적합할 지에 대한 의구심이 조금은 들었지만, 시무 리우 본인이 가진 긍정적이고 선한 성격을 샹치라는 캐릭터에 잘 투영해 그의 역할을 200% 수행해냈다고 봐도 될 것 같다. 아마도 이후 샹치의 후속작이 잘 되게 된다면 시무 리우의 지분 역시 굉장히 크리라.


깨알 재미를 갖춘 '소시민 히어로'의 등장이라는 점에서도 반갑다


마치 제2의 앤트맨, 제2의 스파이더맨이 등장한 느낌이랄까. 그의 소울 메이트인 케이티(아콰피나)와 함께 보여준 미국 소시민들의 일상적인 모습에서 우러나는 잔재미들은, 많은 관객들에게 편안함과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아주 좋은 요소가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특히 쿠키영상에서 터졌던 노래방 개그, 굉장히 즐거웠다.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하지만... 도저히 무시할 수 없었던 현실과 판타지의 크나 큰 괴리감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좋은 요소들에도 불구하고, 중후반부를 넘어서며 시작된 '현실에서 환타지로의 전환'은 이 영화를 말 그대로 수렁으로 빠뜨리고야 만다. 영화의 마지막 무대인 신비의 땅, '탈로'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이 영화의 플롯에는 갑자기 구멍이 송송 뚫리기 시작하고, 그 환타지를 시각적으로 구현해야 하는 CG 역시 너무나도 퀄리티가 낮아 이 영화의 격 자체가 순간 밑바닥까지 떨어졌기 때문이다.


또 환타지로 전환하면서 기존의 좋은 점들은 모두 다 내팽개쳤다는 점 역시 굉장히 나쁜 선택. 잘하는 것 대신에 뭔가 있어 보이는 것을 꾀한 느낌인데, 특히 이 영화는 후자의 퀄리티가 전자에 비해 압도적으로 낮은 편에 속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전반부의 장점을 조금이라도 후반부까지 끌어가는 것이 이 영화의 퀄리티를 높이는 데에는 적합한 방법이었다 생각한다. CG로 범벅된 용을 타고 날아다니는 샹치보다는 지하철에서 맨몸액션을 주고받는 샹치의 모습이 훨씬 멋졌고, 텐 링즈의 후계자로서 잔뜩 무게를 잡는 샹치보다는 순수한 동네 청년으로서의 샹치가 훨씬 더 나았던 만큼, 이를 샹치 개인이 스타일만이 아닌, 영화 <샹치>의 전체적인 스타일로서 가져가는 것이 더 나은 결과물을 가져다줄 수 있는 선택이 아니었을까.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미래가 뻔히 예측되는 수준 낮은 스토리 또한 이 영화의 큰 단점


꼬리에 꼬리를 물고 클리셰들이 연달아 이어지는 것은 물론, 그 행위들이 불러올 결과 또한 너무나 클리셰스럽기에 앞이 너무나도 뻔히 보이고, 관객들의 김을 새게 만든다는 점 역시 이 영화의 가장 큰 단점 중 하나. 


그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아무것도 모르는 케이티(아콰피나)에게 활을 알려준다고 따라오라고 할 때부터


'아, 얘 나중에 화살 한 발 쏴서 뭔가 큰 역할을 해주겠구나...'



하는 것이 너무나 뻔하게 예상되는 점 등인데, 이는 아마도 영화의 타겟층 설정이 실패한 것이 주요 원인이 아닐까 싶다. 사실상 메인 고객이나 다름없는 2~30대가 아닌, 보다 '아동영화'적 성격에 가까운 작품으로 무게를 두고 기획을 시작했기에 성인 관객들에게는 다소 개연성이나 스토리 면에서 아쉬운 작품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지(이 리뷰를 쓰는 지금도 '아... 내가 마블 영화를 보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이 먹었나...?' 싶다). 


그리고 이런 경향이 영화의 결말로 갈수록 심해진다는 점에서 더더욱 문제가 커지는데, 영화의 결말에 다다를수록 높은 집중도를 유지해야 하는 관객들이 오히려 가면 갈수록 집중도를 잃게 되면서 결말이 주는 무게감이 덩달아 떨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아쉽다! 한 스푼만 덜 넣었으면 좋았을 페미니즘


역시나. 마블은 이번 작품에서도 '부자연스러운 페미니즘' 씬을 첨가해놓았다. 아쉬운 것은 초반 흐름은 자연스럽게 가져가 놓고 후반부에 가서 무리를 했다는 점.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아버지에게 무술을 지도받았던 샹치와는 달리 샹치의 동생인 쑤 샤링(장멍얼)이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무술을 배우지 못했고, 숨어서 혼자 무술을 단련해 성인이 되어 고수가 되어 샹치와 만나는 스토리는 꽤 자연스럽고 납득이 갈만한 흐름이었다. 오로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무술을 단련받을 기회를 놓쳤지만, 그에 굴복하지 않고 어깨너머로 혼자 단련해 오빠 못지않은 고수가 되는 설정은 (이전의 마블 영화들 답지 않게) 굉장히 담백하게 잘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 작품에서는 남성 혐오나 비하가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 역시 매우 긍정적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탈로에 들어가서 그들의 이모인 난(양자경)과 만나면서부터 시작된다. 그녀는 쑤 샤링에게 탈로의 특제 무기를 주면서 "넌 너무 오래 억압받았어"라고 하며 마치 그녀가 과거에 받았던 억압과 서러움을 모두 알고 있다는 식으로 말하며 그녀가 이제야 빛을 볼 때가 왔다고 '굳이' 이야기한다. 참 아쉽다. 그렇게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아무렇지 않게 무기를 건네주면서 함께 싸우자 이야기했으면 충분했을 것을... 이런 식의 '부자연스러움'은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뿐이다. 그게 페미니즘이 아닌 다른 것이라도 말이다.


또한 쑤 샤링이 아버지 쑤 웬우의 뒤를 이어 텐 링즈 조직의 수장이 되고, 여성 단원들을 훈련시키기 시작하는 장면은 분명히 귀한 쿠키 하나를 쓰면서까지 보여줄 만큼 중요한 장면은 아니었다 생각한다. 그간 여성으로서 부당하게 받았던 차별을 이겨내고 '여성들을 차별하지 않는 새로운 여성 지도자'가 된 쑤 샤링을 높이려는 장면이었음은 이해한다만, 후속작에서 쑤 샤링이 다시 등장하는 장면에서 나왔더라면 훨씬 무게감도 살고 담백하게 그려졌을 것 같다는 것이다. 아쉽다 <샹치>! 정말 여러 모로!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서브 캐릭터들의 매력은 또다시 플롯에 묻히고...


이전 <블랙 위도우> 리뷰에서 필자가 "마블은 유명 배우들을 기용해서 그들 영화의 얼굴마담으로 사용하고 그대로 내버린다"는 식의 표현을 한 적이 있는데, 이 영화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할리우드 영화에서 꽤 자주 볼 수 있는) 양자경 누님의 경우 후반부에만 등장하며 거의 존재감이 없을 수밖에 없는 캐릭터였는데, 샹치와 액션 한 합을 주고받으며 그에게 가르침을 주는 씬이나, '억지 페미니즘' 플롯을 욱여넣는 장면 외에는 <블랙 위도우>의 멜리나(레이첼 와이즈)만큼이나,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그녀 이상으로 존재감이 없었던 캐릭터였다.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그리고 이 영화에서 가장 아쉬운 캐릭터인 쑤 웬우. 


악역이라기엔 너무 마음이 약한 데다가 야심도 없고(거의 천 년 이상을 살았으면서 중국을 제외하고 세계에 미친 영향력이 거의 제로에 가깝다는 설정은 사실 납득하기 어렵다), 선역이라기에는 또 말이 안 되는 애매모호한 위치가 캐릭터를 선명하지 못하게 만들어버려서 존재감을 약하게 만들어버린 느낌이다. 양조위 형님이 분전했다고는 하나, 그 혼자서 메꾸기에는 플롯의 구멍이 너무나도 거대했다. 이 캐릭터가 가진 능력을 생각해보았을 때 훨씬 더 많은 것을 이룰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아내만을 바라보는 애처가 캐릭터라는 설정에 그 외의 모든 것이 묻혀버린, 참으로 애매하고 애매했던 악역.





結 - 21년, 또 망해버린 마블의 두 번째 농사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또다시 실패로 끝난 마블의 '복권 긁기' 식 감독 기용 전략


<샹치>를 통해 마블의 '신인감독 기용 전략'의 또 다른 수혜자가 된 데스틴 다니엘 크레톤 감독은 애석하지만 또 하나의 실패 선례로 남고야 말았다. '초반부의 액션, 후반부 환타지의 원활한 조화와 결합'은 분명 어떤 감독에게도 쉽지만은 않은 과제이긴 했지만, 이를 잘했다 평가받기에는 분명히 그 둘은 너무나도 이질적인 데다가 후반부 여러 부분에서 분명히 연출 능력 부족으로 인한 급격한 퀄리티 저하가 발생했던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신인이 이 정도면 잘했지!"라고? 마블이라는 이름값을 생각했을 때, 이런 건 너무나 무책임한 평가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여기서 관객들이 반드시 생각해야 할 것이 하나 더 있다. 데스틴 다니엘 크레톤 감독을 기용한 것은 바로 마블 수뇌부이며, 그들의 '복권 긁기' 식 감독 기용 전략은 분명히 개별 작품들의 퀄리티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 물론 당장의 흥행 성적만 놓고 봤을 때는 나쁘지 않았기에 아마도 당분간 마블은 이를 고수할 것 같지만, 이러한 '가성비 전략'이 장기적으로 그들에게는 독이 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그들의 전략을 다시금 되돌아보고, 수정을 해야 할 시점이 바로 지금은 아닐는지.



과연, 마블은 다시 반등할 기회를 잡을 수 있을는지...?


마블은 웬 일로 <이터널스>에서는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하며 유명 감독 반열에 오르기 시작한 클로이 자오 감독을 기용하며 야심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게 옳은 선택으로 작용할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노 매드 랜드>, <로데오 카우보이> 등 잔잔하고 편안한 로드무비 형식의 독립 영화에서 강점을 보인 클로이 자오 감독이, 대중성을 그 무엇보다 우선해야 하는 액션 블록버스터 장르에 적합한 감독인지, 그리고 그녀 개인의 스타일이 존재하는 만큼 마블과의 시너지가 얼마나 좋을지는 아직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누가 감독을 맡더라도 흥행할 것이 분명한 마블의 (그리고 소니의) 대표 캐릭터인 스파이더맨을 제외한다면 결국 마블의 이번 년도의 흥행 성적은 <이터널스>에 많은 무게가 걸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 마블이 과연 <이터널스>를 시작으로 반등에 성공해 따뜻한 겨울을 보내게 될지 조금, 아주 조금은 궁금해지기는 한다. 만약 이마저도 실패할 경우, 아마 이번 년도를 끝으로 마블 영화는 쇠퇴기로 접어들 것이 매우 분명해 보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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