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혼자서 여행을 떠나야 할 이유가 있다면
지난해 10월 30일부터 11월 6일까지, 8일간의 도쿄 여행기가 드디어 마무리됐다. 무려 3개월 만이다. 지루하게, 그리고 실없게 이어진 여행기를 끝까지 함께 해주신 독자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때로 눌러주신 좋아요까지 더해지며 쓰면서도 늘 큰 힘을 받았다. 정말이다(이 와중에 와이프는 마지막 글이 너무 오글거린다는 평가를 전했다).
궁금하진 않으시겠지만, 필자의 '철부지' 생활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여전히 일을 쉬고 있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요, 여행을 다녀와서도 여태껏 삶의 태도 자체는 크게 변하지는 않았다는 것이 두 번째 이유다. 사실 이번 여행을 통해 얻은 것들을 원동력 삼아 힘차게 도움닫기를 해야겠다는 기대를 품고 있었건만, 생각보다 오랜 기간을 쉬었기 때문인지, 원래 타고난 철부지라 그런지 다시 일어나기가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필자는 지난 9월, 2년 반 가량의 짧은 기자 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기에 시작했지만 취미가 일이 되면서 찾아오는 압박감과 스트레스가 매일을 좀먹었고, 이를 감내하고 끝까지 간다 한들 결국 내가 원하는 삶이 펼쳐질 거란 기대가 전혀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럴 자신도 없었고.
이렇듯 나 자신의 한계, 그리고 구조적인 한계가 이미 저 멀리서 거대한 벽처럼 자리 잡은 것에 눈에 보이는 상황. 떠나야 한다는 신호였다.
그래서 사실 이번 여행이 일종의 '시작'이 되었으면 하는 터무니없는 기대도 했다. 이직이 아닌, 기자라는 타이틀을 아예 떼버리기로 마음먹은 만큼 어딘가에 새 둥지를 틀 수 있는 원동력이 솟구쳤으면 하는 바람에서.
하지만 여행을 많이 다녀보신 분들이라면 알 것이다. 여행지에서 느낀 모든 생각과 영감을 삶에 적용하며 살 순 없다는 걸. 제아무리 많이 보고 느꼈다 한들, 이를 삶의 언어로 치환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노력과 수고가 많이, 그것도 아주 많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그래서 우리는 여행길에서 어쩌다 한 번 찾아오는 몇몇 강렬한 순간을 제외한 대부분에 '추억'이라는 딱지를 붙여 서랍 깊숙한 곳에 집어넣길 선택하곤 하지 않던가. 그게 편하니까. 고작 놀러 다녀온 것에 의미부여를 해가며 스스로를 피곤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으니까. 부끄럽지만 필자 역시 이런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어느 정도는 그렇게 적당히, 흘러가는 대로 근 3개월여를 보내지 않았나 싶다.
그래도 그간 뒤엉켜오기만 했던 삶의 실타래가 좀 더 수월하게 풀리기 시작했다는 점은 큰 소득이라 생각한다. 애초에 일을 그만둔 것이 그 시작이기는 했다만, 혼자서 여행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간만에 뒤를 돌아볼 여지를 갖는 것은 물론, 저 멀리 두고 왔던 것들을 주워올 여유 따윈 없었을 것이다. 정말 애써 찾아 나서지 않았다면 할 수 없었을 종류의 경험이었다. 마치 오래전 잃어버린 퍼즐 조각들을 찾아 끼운 것만 같은 기분이랄까.
그래서 아직 결과물이 나오진 않았지만, 이번 여행 덕분에 지금 당장은 앞만 보고 나아갈 환경 정도는 마련됐다고 말할 순 있을 것 같다. 적어도 돌아봐야 할 이유보다는 전진해야 할 이유가 훨씬 많아졌으니.
이런 걸 보면, '혼자 떠나는 여행'은 인생이라는 이름의 열차를 잠시 멈춰준다는 데에 의의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때로 고속으로 달리는 열차 안에서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뒤늦게 깨닫는 경우가 많은데, 멈추지 않고서는 내려서 다른 열차를 탈지의 여부는 물론, 하다못해 잠시 쉬어가야겠다는 결정조차 할 수 없지 않던가.
때문에 삶이 계속 꼬여감을 느끼지만 이를 풀어낼 엄두가 나지 않을 때, 바로 그때가 여행을 떠나야 할 순간이 아닐까 싶다. 여행을 시작하는 이유는 제각각일지언정, 결국 그 목적은 잠시 시계를 멈추고, 현실과 동떨어진 곳에서 스스로를 재정비하고 다시금 도약하는 데에 있을 테니까.
누가 알겠나? 그 과정 속에서 사실 우리가 타고 있던 기차가 많고 많은 기차들 중 한 대에 불과하며, 이 넓은 정거장 어딘가에 우리를 승객이 아닌 기관사로 받아줄 기차가 있음을 깨닫게 될지.
'당분간 여행 안 가도 되겠다'라고 생각했건만, 필자는 벌써 다음 여행을 꿈꾸기 시작했다. 물론 일을 구하는 것이 우선이겠지만, 혼자서 여행을 떠날 기회가 또 온다면 보다 여유롭게 일정을 짜서 스스로와 대화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갖고 싶다는, 그럴 수 있는 여행지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결국 우리네 삶은 다시 꼬일 것이고, 멈춰서 뒤를 돌아보고 나 자신을 재정비해야 할 시간 역시 다시금, 그리고 반드시 찾아올 테니.
다시 한번 독자분들께, 그리고 철없는 남편의 터무니없는 계획을 이해하고 지지해 준 와이프에게 감사를 보내며 이번 여행기를 마무리짓겠다. 홀로 여행을 떠나는 모든 분들이 오롯이 스스로와 마주하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되길, 그리고 그 여행을 웃는 얼굴로 마무리할 수 있게 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