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부 문화
한국인이 인도에서 충격받는 것 가운데 하나가 가정부 문화다. 한국에서 사라진 지 70년이나 된 관습이 인도에서는 유지되고 있다. 특히 이해가 안 되는 것은, 부자들뿐 아니라 보통 사람들도 가정부를 고용한다는 점이다.
인도의 가정부 문화의 특징을 살펴보자. 첫째, 주인과 가정부는 계약 관계다. 그러므로 서로의 관계가 틀어지면 계약이 종료된다. 둘째, 출퇴근한다. 일부 최상류층의 경우 집 안에 숙박 시설이 있어서 가정부들이 함께 생활하지만, 보통은 그렇지 않다. 셋째, 직업 이상의 관계다. 정시 출근, 정시 퇴근이 아니라 주인의 상황에 맞춰서 일을 한다. 휴일에도 주인집에 집안 행사나 종교 행사가 있으면 와서 일을 해야 한다. 주인은 월급뿐 아니라 가정부 가정의 어려움을 돌보기도 한다.
전통적으로 인도에 자즈마니(jajmani) 관습이 있는데 현재의 가정부 문화도 그 영향을 받았다. 이것은 지주(자즈만)가 소작농, 목수, 청소부 등의 자띠(특정 카스트가 특정 직업에 종사하는 관습)에게서 노동력을 받는 대신 농작물로 그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다. 지금은 시골에서만 볼 수 있는 관습이다. 세습되는 반자급자족적 관습은 하층 계급을 착취하는 수단으로 악용되었다고 보지만 직업적 분업화와 전문화를 가져와 생산량 증가에 이바지했다고도 본다. 지주와 노동력 제공자의 관계는 영원한 것이 아니라 서로의 이익에 따라 변한다. 예를 들어, 소작농이 더 좋은 조건을 제안하는 다른 지주한테 가서 일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지주와 소작농 사이에는 긴장이 존재하며 현상을 유지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이 동원된다.
한국인은 인도의 가정부 문화에 대해 적응하는 데 상당히 애를 먹는다. 편리함을 위해 고용한 가정부 때문에 신경을 더 쓰는 상황에 직면한다. 한국에서 이런 문화를 접해보지 못한 것이라서 그렇다. 필자가 관찰한 그 어려움을 소개한다. 첫째, 가정부와의 관계에서 적절한 호칭을 선택하지 못한다. 피고용인에게 맞는 단어가 아니라 존칭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래서 피고용이 불편하게 느낀다. 예를 들어, 한 한국인 가정이 영어를 잘하는 젊은 인도 여자를 상주시켜 청소도 시키고 자녀들의 영어도 가르치게 했다. 그리고 호칭을 선생님(티쳐)라고 불렀다. 부적절한 용어다. 이 경우에는 그냥 그녀의 이름에 베헨(자매)를 붙이고 어법은 존칭어가 아니라 보통말이나 낮춤말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둘째, 업무 범위를 명확히 하지 못한다. 자녀 도우미(베이비시터)인지 자녀 과외 교사인지 요리사인지 청소부인지 구분하지 않고 한 사람에게 여러 가지 일을 시키는 일이 흔하다. 물론 고용하기 전에 업무 내용을 합의했으면 다행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도 문화에 적절한 것은 아니다. 인도 사회에서 청소부는 최하층이 하는 일이지만 교사는 교육받은 사람으로 인식되며 존경받는다. 보통 인도인은 한 가정부에게 여러 가지 업무를 맡기지 않고 여러 사람을 고용한다. 주위의 인도인 친구에게 파출부의 업무 범위, 존칭어, 호칭 등에 대해 조언을 구하기를 바란다. 셋째, 카스트 제도(피부색과 직업)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카스트 제도는 인도의 법에는 사라졌지만 사회적 관습으로는 뿌리 깊게 남아 있다. 가정부가 어떤 카스트 출신이냐에 따라 하는 일이 있고 절대 하지 않는 일이 있다. 예를 들어, 상위 네 계층(브라민,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은 화장실과 죽은 동물을 청소하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왜 화장실 청소를 안 하냐고 야단을 친다. 카스트 규례에 관한 책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가정부가 화장실을 청소하지 않으면 주인이 직접 해야 한다. 넷째, 돈 문제에 관해 혼란스러워한다. 인도인 가정부는 한국인 주인이 인도인 주인과는 다르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린다. 즉 힌디어 또는 지역어를 못하거나 어설프게 하고, 가정부에게 지나치게 너그러우며, 정이 많다는 점이다. 그래서 수시로 아파서 출근을 못 한다거나 형편이 어려워 자녀의 학교 수업료를 못 내고 있다거나 가족 구성원이 아픈데 병원비가 없다고 말한다. 처음에 한국인들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 가정부 없이 혼자 집안일을 하고 가정부의 형편을 불쌍히 여겨 월급 이외의 돈을 따로 주기도 한다. 문제는 일단 한번 주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나중에 사실을 알고 크게 야단을 치거나 해고한다. 많은 한국인이 가정부로 인해 스트레스를 심하게 겪으며 어쩔 줄을 몰라 한다.
필자가 속한 NGO에서도 가정부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 10여 명의 외국인들은 문화 문제와 가정부의 특이한 개인 성향에 직면할 때마다 해결책을 빨리 찾지 못했다. 필자가 신임 직원 교육 과정을 담당했을 때의 일이다. 한 요리사를 고용하려고 했는데 그가 시세보다 월급을 많이 요구했다. 일단 시세만큼만 주겠다고 고용했지만 그가 몇 주간 일하면서 계속 월급 문제를 언급했다. 못 들은 척 하는 것도 한두 번이었다.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하다가 인도 문화는 인도인에게서 배우라는 소속 NGO의 기본 방침 안내에 따라 다른 부서의 인도인 직원에게 물어봤다. 그가 평균 월급만 약속하고 지급할 때 200루피(3,000원) 정도 더 주면 될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그렇게 했더니 그 요리사가 월급에 대해 더 이상 불평하지 않았다. 가정부 문제도 인도인의 해결 방식을 알면 쉽게 처리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