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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츄리샘 Dec 04. 2024

그거 다 광고야.

T의 언어 이해하기

신혼 초일입니다.

"여보, 어느 카페에서 봤는데 00이 진짜 좋데."

내심 그것이 사고 싶었던 저는 마음을 돌려서 표현했지요

정확한 마음의 표현하는 것이 힘든 저만의 방식이었습니다.

저는 2가지 정도의 반응을 기대했습니다.

"여보 그래? 오 그거 살까?"와

거절을 하더라도 "그렇구나 여보, 근데 요즘 광고도 많으니 잘 알아보아요."였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약간의 조소와 함께

"여보, 그걸 믿어? 그거 다 광고야." 하는데 제 마음은 팍 상해버렸습니다.

"와 여보 초치기 대왕이다. "하며 약간 삐친 공기를 내뿜자

남편은 웃으며 삐친 저를 풀어주긴 했지만

그때 저는 '아 결혼을 잘못했나?'하고 느낄 정도로 충격적이었습니다.



T인 남편의 언어는 F인 저에게 가끔 서운할 때가 있었습니다. 평소 자상하고 센스도 있는 남편이지만 공감을 바라고 한 말에 극 사실적인 해결방안을 제시할 때는 진짜 마음속의 주먹이 웁니다.

남편도 감정만을 강조하는 제가 힘들 때가 있었음을 고백한 보면 저만 소통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결혼 13년 차인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날부터 남편의 언어가 번역되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저희 친정아버지가 치매로 요양원에 들어가시게 되었는데 부모를 버린듯한 심한 자책감에 몸무림 치던 날들이었지요

아빠가 아프시니 친정의 경제적인 어려움도

K 장녀, 저에게는 가슴에 얹어놓은 커다란 돌 같았습니다.

어렵게 남편에게 " 여보 아빠 요양원 들어가시면서 비용도 많이 나오고

내가 매달 30만 원 정도 보내고 싶어.' 말을 꺼냈습니다.

요양원 들어가신다는 소식들을 때도 안타까워했지만 저의 마음을 위로하지 않아서 

조금 서운한 마음도 있었고 남편의 마음을 오해하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여보 50만 원씩 보내드려.

부모님께 드리는 돈은 아까워하지 마."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시절은 저도 휴직 중이라 남편의 월급만으로 살아야 하니 저희도 여유가 없었는데

남편의 말이 참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제 마음에는 남편의 말이 '여보 나도 아버님이 요양원에 들어가시게 된 게 너무 속상하다. 여보도 속상하지? 나도 걱정하고 있어. 최선을 다해서 부모님을 돌보자.'이렇게 번역이 되어 들렸습니다.


T인 남편을 말 그대로만 보면

냉정해 보이기도 하고 공감능력이 부족한 것 같기도 했는데 살아보니 T인 남편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T인 남편의 말이 F의 언어로 번역되어 들리니

그제야 닫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했던 말 떠올려보니 번역이 됩니다.

"여보, 여행 일정 짰어요. 참조해요."

하고 엑셀파일을 보내는 남편문자에
저는 '참조'라는 말이 거슬렸습니다.

'여기가 회사야? 무슨 참조래?' 하며 씩씩되었는데

그 말은 '가족을 위해 여행계획을 짜봤어요. 여보 일정 보고 미리 준비합시다. 나는 가족과 함께하는 여행이 중요해서 미리 준비해요.'라고 번역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신기한 일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된 걸까요?

아니면 부단히 이해해 보려고 노력해 온 시절들의 열매일까요?

아무래도 괜찮습니다.

번역해서 들으니 남편의 사랑이 보이고,

공감하려는 마음이 느껴지니

부부의 정이 더 깊어집니다.


그리고 갑자기 궁금해졌습니다

F의 말을 T로 번역한다면 어떻게 들릴지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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