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의 글쓰기
한 남자가 40층 건물에서 뛰어내렸다.
자살하는 사람이 많은 요즘이다. 너무 많은 사람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해서 이젠 누군가의 자살 소식이 뉴스에도 크게 보도되지 않는다. 죽어야만 했던 사람, 그들의 가족, 그리고 죽음 이후를 해결해야 하는 사람들. 슬프게도 대부분은 그 사람들에 대해 관심이 없다. 누군가의 내일이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아쉬움이 남는 인생 속에서 누군가에게 죽음은 일상이고, 누군가는 일상이 죽음이다. 무뎌지지 않는 상처로 죽음이 가장 나은 선택지인 사람도 있었다.
여기 이 남자도 그렇다. 이제 남은 선택지는 스스로 삶을 끝내는 것밖에 없는 인생을 사는 사람이었다. 손엔 아무것도 없고, 주위엔 아무도 없고, 미래를 떠올릴 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사람. 죽어야만 누군가의 눈에 보이는 그런 사람이다. 이런 고독한 삶이 나이 지긋한 노인에게만 해당되는 내용이라고 생각한다면 틀렸다. 그 남자는 20대 청년이었다. 어느 날 한 순간 잘못 디딘 발걸음으로, 그 남자의 인생은 나락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정신은 멀쩡하고, 육체도 멀쩡한데, 마음이 멀쩡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느 순간 고장나버린 마음 때문에 남자는 구렁텅이 속으로 깊게 빨려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나의 사건이라 불리는 일은 원인을 찾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 사실 그곳은 낭떠러지가 아니라 계단 같은 삶이었다고 생각한다. 한 순간에 나락으로 빠진 것이 아니라, 천천히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빚이 쌓여 있었고, 사랑하는 사람 모두가 떠났고, 일을 짤렸고, 어쩌면 몸도 아팠을 수 있다. 지하 밑으로 꺼져버린 몸뚱이와 정신 때문에 이젠 마음도 갱생의 의지가 없었던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인생이었다고 생각하며 높은 곳으로 천천히 기어 올라갔다. 한 층, 한 층 올라갈 때마다 1년을 되짚었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를 고민하지만, 쉽지 않았다. 대강 생각나는 일들을 정리하니 최악의 인생이었다. 죽을 것처럼 쪽팔렸던 감정, 미치도록 무서운 경험, 이까지 덜덜 떨리던 공포, 눈물이 줄줄 흐르던 슬픔, 살갗이 찢어지도록 아팠던 고통까지 최악의 순간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모든 삶을 다 되짚었을 땐 딱 40층이었다. 40살이 되면 그럴듯한 인생을 살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럴 수 없어서 일찍 마무리하는 삶이라고 생각하니 괜히 슬퍼졌고, 허겁지겁 40층 난간으로 몸을 던진다.
이십 몇 년. 얼마 안되는 시간이라지만 왜 그렇게, 고단했는지 추락하는 와중에도 원인을 찾다가 그냥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기로 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좋아하는 영화를 봤고, 맛있는 음식을 먹었고, 멀리 여행을 갔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러자 가족과 애인, 친구, 팔촌에 이웃 그리고 같은 반이었던 동창들, 매일 가던 편의점에서 라면 바코드를 찍어주던 알바 얼굴부터 나의 죽음을 수습하는 사람들의 모습까지 떠올랐다. 죽고 싶지 않은 마음인걸까. 하지만 이미 몸뚱이는 공중을 날고 있어서 밀려드는 생각 스스로 정리하려고 했다. 정의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있던 차에 전화가 울린다. 손을 들어 발신자를 보니, 어느 날엔가 정신이 돌아왔던 순간에 예약했던 상담센터다. 그 땐 마지막으로 살아보자는 생각이 들어서 신청했던 허름한 동네 구멍가게 같은 상담센터 프로그램에 지원했던 것이다. 남자는 후회했다. 마지막 버스를 놓쳤다고 생각해서 울었다. 그 버스에는 남자가 떠올렸던 가족과 애인, 친구, 팔촌에 이웃, 동창과 알바 그리고 죽음을 정리하고 있는 사람이 모두 타고 있었다. 같이 그 버스를 탈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에 깊은 후회를 했다. 그 때가 28층 언저리였다고 한다.
[2021-08-05 목요일의 글쓰기] 한 남자가 40층 건물에서 뛰어내렸다. 그런데 28층을 지날 무렵 핸드폰 벨소리를 듣고 뛰어내린 것을 후회한다. 어떻게 된일일까? – 글쓰기 좋은 질문 642 중 32번 째 주제
+ 오늘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듣자마자 바로 최근에 봤던 영상 하나가 떠올랐다. 그 영상 속 사람들과 댓글의 이야기를 듣고 이번주 목요일의 글쓰기를 작성했다. 영상을 첨부하여 글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