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없이 단단하게 나를 감싸 안아,
충전이 잔뜩 된 에어팟, 미국에서 야구경기 보다가 사온 모자, 뿔테 안경 하나. 호피무늬. 무겁지도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은 적당히 포근하지만 살아있는 티셔츠. 부드러운 후드집업, 핏이 마음에 드는 후드티. 골반에 살짝 걸쳐지는 이염과 워싱이 잔뜩 들어간 넉넉하고 밝은 색 자라 청바지. 산타마리아노벨라 프리지아 향수, 폴로, 비비드한 귀여운 양말. 그리고 두 개의 다른 패턴의 신발끈으로 꾸꾸한 산타할아버지를 떠올리게 만드는 빨간색 아디다스 운동화. 초코무스가 생각나는 운동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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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것들에 둘러싸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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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가 정말 자주 하는 말이다. 좋아하는 것들에 둘러싸이면 내가 어떤 상황이든, 그것들이 말없이 단단하게 나를 감싸 안아 준다. 좋아하는 노래는 내 머릿속 복잡한 생각에 리듬감을 주고, 좋아하는 향은 지금 이 순간을 현실로 붙잡아준다. 옷의 촉감이나 신발 끈의 색 같은 것도 그렇다. 나의 시선이 반영된, 내가 좋아하는 것들.
그걸로 충분하다. 하루를 지내다 보면 부족한 게 너무 많고, 해야 할 일은 계속 늘어난다. 그런데 ‘충분하다’고 말하는 순간에는 뭔가를 더 채우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지금 가진 것들로도 오늘 하루는 괜찮을 수 있다는 느낌. 그래서 이 말이 주는 든든함이 좋다. 좋아하는 것들로 둘러싸이는 것은 그걸 가능하게 해 준다. 나를 바꾸려 하지도 않고, 나를 몰아붙이지도 않는다. 그냥 있는 그대로 감싸준다. 내 편이라고 말해주는 것처럼. 조용하지만, 확실하게.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한다. 이게 단순히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나를 대하는 방식이라는 생각. 일이 밀리고 생각이 많아지고, 하루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거나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틀어지면 그냥 대충 보이는 옷을 입고, 아무 노래나 틀고, 아무 향도 없이 밖으로 나간다. 그런데 그런 날은 이상하게 더 불안하다. 하루가 계속 흐트러지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그럴수록 좋아하는 것들을 챙긴다. 어떤 날은 이걸 다 챙기면서도 스스로 좀 웃기다고 느낀다. 그냥 하루 나가는데 뭘 이렇게까지 하나 싶어서. 근데 막상 아무것도 안 챙기고 나가면 하루가 더 쉽게 흐트러진다. 그래서 결국 다시 돌아온다.
그냥 나를 좋아하는 것들로 둘러싸면, 내 하루가 조금 더 내 것 같아진다. 내가 좋아하는 걸 고르고, 그걸 내 몸에 얹고, 그걸 내 주변에 두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조금 정리된다. 그걸로 정말 충분한 날이 있다. 누군가의 대단한 위로보다, 큰 목표나 성취보다, 그런 감각들이 더 필요한 날이 있다. 요즘은 특히 그렇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충전이 잔뜩 된 에어팟을 챙기고, 좋아하는 향을 뿌리고, 좋아하는 옷을 입는다. 나를 더 단단히 감싸 안아주기 위해서, 확실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