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학교'와 '우리 학교' 사이...
‘이 학교’는 언제 ‘우리 학교’가 되는가?
혁신학교 초기, 내가 혁신부장을 맡고 있던 시절의 일이다.
한 동학년 선생님과 꽤 날이 선 언쟁을 벌였다. 학년이 거의 끝나 갈 무렵까지도 그 선생님의 말끝에는 늘 같은 표현이 붙어 있었다.
“이 학교는 정말…”
“이 학교는 왜 이렇게 하는 거죠?”
어느 날은 결국 그 말을 그냥 넘기지 못했다.
“언제까지 ‘이 학교’라고 하실 건가요?”
지금 돌이켜보면 다소 공격적인 질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혁신학교를 ‘만들어가던’ 시기였다. 기존 학교에서는 해보지 않았던 시도들이 많았고, 다른 학교에서 전입 온 그 선생님에게는 모든 것이 낯설고, 불편하고, 때로는 비효율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이 학교’라는 말 속에는 그 낯섦과 피로, 거리감, 그리고 작은 저항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말은 그 선생님만의 말이 아니었다. 나 역시 써본 말이었고, 그 이후로도 여러 혁신학교에서, 또 혁신학교가 아닌 곳에서도 비슷한 말을 수없이 들었다.
“이 학교는 원래 그래요.”
“이 학교는 왜 꼭 이렇게 해야 하죠?”
혁신학교 세 곳에서 근무하며 확실히 느낀 점이 있다. 학교의 성격이나 제도와 상관없이, 어느 학교에서든 ‘이 학교’라는 말은 반복해서 등장한다는 것이다.
최근에도 나는 '이 학교'라고 이야기하는 동학년 선생님과 이러한 맥락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은 언제쯤 이 학교가 ‘우리 학교’가 될 것 같으세요?”
나도 궁금하다고 덧붙였다.
나는 이 문제를 스스로 인식하고 있기에, 학교를 옮길 때마다 의식적으로 ‘우리 학교’라는 표현을 쓰려고 애써왔다. 그런데 막상 돌아보면, 그 말이 언제 자연스럽게 ‘우리’가 되었는지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이 학교’라고 말하다가, 끝내 ‘우리 학교’가 되지 못한 채 떠나기도 한다. 그런 경우도 실제로 보아왔다. 반면, 앞서 언쟁을 벌였던 그 선생님은 부장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 학교’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이런 생각도 들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걸까.
아니면, 책임과 권한이 생겨야만 비로소 소속감이 만들어지는 걸까.
‘이 학교’와 ‘우리 학교’는 단순한 말의 차이가 아니다. 그 말 속에는 거리와 소속, 책임과 주체성의 문제가 함께 들어 있다.
‘이 학교’는 관찰자의 언어이고, ‘우리 학교’는 참여자의 언어다.
‘이 학교’는 평가의 자리에서 나오고, ‘우리 학교’는 선택과 감당의 자리에서 나온다.
그렇다면 질문은 여기로 이어진다.
우리는 왜 ‘이 학교’에 머무르게 되는가?
무엇이 ‘우리 학교’로의 전환을 가로막는가?
어떤 학교는 사람을 품고, 어떤 학교는 사람을 밀어내는가?
이 질문 앞에서 나는 학교 문화 속에 굳게 자리 잡은 두 개의 힘을 떠올리게 되었다. 하나는 도그마, 다른 하나는 휴브리스다. 어쩌면 ‘이 학교’가 ‘우리 학교’가 되지 못하는 이유는, 사람의 태도 이전에 조직이 품고 있는 보이지 않는 신념과 오만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제부터 나는, 학교를 떠나게 만들기도 하고, 혹은 머물게 하기도 하는 이 두 개의 힘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