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질문이 멈춘 자리
도그마, 질문이 멈춘 자리
1. 나의 첫 도그마
고등학생이던 시절, 교회에서 목사님 사모님과 나눈 대화가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소한 질문이었지만, 그때의 나는 꽤 진지했다.
“외계인은 진짜 존재할까요?”
사모님은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성경에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거야. 거짓이지.”
그 말은 단호했고, 성실했다.
질문을 회피하지 않았고, 본인이 믿는 세계관 안에서 최선을 다한 대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었다.
외계인의 존재 여부보다 더 납득되지 않았던 건,
‘성경에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 논리 자체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가 내가 처음으로 도그마를 체감한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2. 도그마의 뜻과 유래
‘도그마(dogma)’는 고대 그리스어 'δόγμα(dogma)'에서 왔다.
원래 뜻은 ‘의견’, ‘판단’, ‘결정’에 가까웠다. 플라톤이나 스토아 철학자들에게 도그마는 논쟁과 사유의 결과로 형성된 하나의 입장이었다. 이 시기의 도그마에는 질문이 남아 있었고, 반박의 여지도 열려 있었다.
하지만 이 단어는 기독교 신학의 영역으로 들어오면서 중요한 전환점을 맞는다.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다양한 해석과 분열 가능성 속에서 신앙의 통일성을 유지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교회는 “논의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는 진리”, 다시 말해 의심해서는 안 되는 핵심 신앙 내용을 정리하게 된다. 이것이 교리, 즉 도그마(dogma)였다.
이때부터 도그마의 성격은 달라진다.도그마는 더 이상 질문을 통해 다듬어지는 생각이 아니라, 질문을 멈추게 하는 기준이 된다.
논의의 출발점이 아니라 종착점이 되었고, 사유의 대상이 아니라 수용의 대상이 되었다.
도그마는 공동체를 지키는 장치였지만, 동시에 생각의 경계를 설정하는 울타리이기도 했다.
이러한 도그마적 사고는 계몽주의 시대에 이르러 강한 비판을 받는다.
특히 [순수이성비판]에서 칸트는 도그마를 ‘이성이 자기 자신의 한계를 성찰하지 않은 채, 진리를 단정하는 태도’로 규정한다. 그에게 도그마란, 경험의 조건과 인식의 가능성을 묻지 않은 채 “그렇다”고 말해버리는 사고 방식이었다.
이 지점부터 도그마는 부정적인 의미를 띠기 시작한다.
검증되지 않은 확신, 맥락을 잃은 절대화, 그리고 무엇보다 질문을 차단하는 사고.
도그마는 더 이상 공동체를 지탱하는 신념이 아니라, 사유를 멈추게 만드는 이름이 된다.
요약하자면,
도그마는 ‘한때는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필요했으나, 더 이상 질문되지 않게 된 믿음’이다.
3. 중세 수도원의 필사 오류 일화
중세 유럽의 한 수도원에는 수백 년 동안 그대로 보존된 성서 사본이 있었다.
필사 과정에서 분명한 오탈자가 발견되었지만, 수도사들은 그 글자를 고치지 않았다.
“우리보다 앞선 신앙인들이 옮겨 적은 글인데, 감히 우리가 손을 대도 되는가”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 결과 잘못된 단어는 여러 세기를 건너 그대로 전승되었다. 훗날 문헌비평학이 발전하고 나서야, 해당 오류는 원문 대조를 통해 수정되었다.
문제는 지식의 부족이 아니었다. 이미 오류를 ‘알고 있었음에도’, 그것을 질문하고 고치는 행위 자체가 금기로 여겨졌다는 점이다.
이 일화는 도그마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의미와 맥락을 따지기보다, 전통 그 자체가 판단의 기준이 되는 순간, 사고는 멈추고 형식만 남는다.
4. 학교에서 마주하는 도그마
학교에서의 도그마는 대체로 선의에서 출발한다.
문제는 그것이 시간이 흐르며 맥락을 잃은 채 고정될 때 생긴다.
학교에서 자주 마주치는 도그마는 이런 모습이다.
“이건 우리 학교의 철학이야.”
“우리는 원래 이렇게 해왔어.”
“그건 혁신학교랑 안 맞아.”
“다 해보니까 결국 이 방식이더라.”
이 말들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이 말 뒤에 설명과 대화가 더 이상 붙지 않을 때다.
예를 들어보자.
한때 교사들을 자주 만나게 하고, 얼굴을 자주 볼 수 있도록 만드는
‘만남을 유도하는 장치’들이 있었다.
회식이 그랬고, 아늑한 연구실이 그랬으며, 연구실에 놓인 프린터와 인쇄기도 그중 하나였다.
교사들에게는 약간의 불편함이 따르기도 했지만, 그 바탕에 담긴 철학을 신뢰했기에
대부분은 그 정도의 불편을 기꺼이 감내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그 철학은 점점 말해지지 않게 되었고, 의미는 사라진 채 형식만 남았다.
빠지면 어색하고, 빠지면 안 될 것 같은 회식 자리,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괜히 눈치가 보이는 연구실,불편한 공동 프린터 같은 예가 그러하다.
교사 간 협업을 장려하기 위해 만든 회의 문화가 있다.
초창기에는 서로 배우고 흔들리는 자리였다.
그러나 지금은 “빠지면 안 되는 회의”, “정해진 결론을 확인하는 자리”가 되었다.
특정 수업 방식이 학교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한때는 시대를 앞서갔던 방법이었지만,
지금은 다른 시도를 “학교 정체성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차단하는 기준이 된다.
이 지점에서 도그마는 이렇게 변한다.
‘가치를 담은 시스템’에서 ‘시스템 그 자체가 가치인 상태’로.
4. 도그마가 갖는 위험과 딜레마
도그마의 가장 큰 위험은 사람을 침묵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특히 새로 온 사람에게.
전입 교사가 “왜 이렇게 하나요?”라고 묻는 순간, 그 질문은 종종 ‘문제 제기’가 아니라 ‘적응 실패’로 해석된다.
질문은 곧 불만이 되고, 불만은 곧 “이 학교랑 안 맞는 사람”이라는 낙인이 된다.
여기서 학교는 딜레마에 빠진다.
한쪽에는 공동체를 유지해야 한다는 책임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변화하는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는 과제가 있다.
도그마는 이 딜레마를 아주 손쉽게 해결해준다.
“일단 따르게 한다.”
설명보다 실행을, 이해보다 동의를 요구한다.
“하다 보면 알게 된다”는 말이 이때 등장한다.
하지만 이 방식은 대가를 치른다.
소속감은 생길 수 있으나, 주체성은 약해지고
시스템은 유지되지만, 의미는 공유되지 않는다.
결국 학교는 잘 굴러가는 것 같지만 왜 굴러가는지는 아무도 설명하지 못하는 조직이 된다.
5. 도그마 스틱
나는 도그마를 하나의 점이 아니라 스펙트럼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어떤 제도나 관행은 공동체를 지키려는 선한 의지에서 출발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질문이 사라지고, 이유를 묻는 순간 불편해지는 지점이 생긴다.
그 경계는 생각보다 분명하지 않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도그마 스틱’이라고 불러본다.
한쪽 끝에는 누구도 질문할 수 없는 절대적 도그마가 있고,
다른 한쪽 끝에는 의미와 목적이 살아 있는 공동체의 규범이 있다.
문제는 그 가운데 어딘가에 있다.
‘공동체를 위해서’라는 말이
언제부터 ‘왜?’라는 질문을 막는 언어가 되었는지,
우리는 종종 그 지점을 인식하지 못한 채 지나간다.
학교에서 마주하는 많은 제도와 관행은 처음부터 도그마였던 적이 거의 없다.
그것들은 대부분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고민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 스틱이 어느 순간 왼쪽으로 기울 때,
질문은 무례가 되고, 다른 의견은 ‘공동체를 흔드는 말’이 된다.
그때부터 도그마는 제도가 아니라 태도가 된다.
6. 질문을 남기며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우리는 언제부터 철학을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을까?
시스템을 지키는 것이, 사람의 질문을 견디지 않아도 된다는 면허가 되었을까?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질문.
도그마를 지키는 우리는, 과연 학교를 지키고 있는 걸까?
아니면 학교라는 이름의 과거를 지키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