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브리스

— 성공의 경험이 오만으로 바뀌는 순간

by onlys
휴브리스, '성공'의 경험이 가져오는 '실패'


1. 나의 '휴브리스'


onlys7279_A_symbolic_illustration_of_school_culture_contrast._1e85eb58-7416-431e-b273-22cf9b727fbe_2.png 같은 제도와 같은 의도라도, 맥락이 다른 공간에 옮겨질 때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낸다. 그 차이를 보지 못할 때, 우리는 쉽게 휴브리스에 빠진다.

초등학교의 ‘교무실’은 중등학교의 그것과 성격이 다르다.
중등에서 교무실은 여러 교사가 하루의 대부분을 함께 보내는 공동의 공간이다. 수업이 없는 시간, 쉬는 시간, 방과 후까지 교사들은 교무실에 모여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고, 그 안에서 정보와 감정이 오간다.

반면 초등학교에서 교무실은 이름만 같을 뿐, 실제로는 다른 공간이다. 교무실에 상주하는 이는 주로 교감이나 실무사이고, 담임교사들은 대부분 하루 종일 교실에 머문다. 그 결과 초등 교사들이 자연스럽게 모여 오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은 많지 않다. 그래서였다.

“자주 만나야 한다.”
“얼굴을 보고 이야기해야 한다.”
“관계가 있어야 교육도 있다.”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한 학교에서 교무실 만들기가 시작되었다.
학교장의 제안이 있었고, 적극적으로 공감하는 교사들이 생겼다.
학교에 남는 컴퓨터를 들이고, 공동의 프린터를 마련하고 함께 모여 차라도 나눌 수 있는 작은 탁자와 공간도 마련했다. 전폭적인 투자가 이루어졌고, 반응은 좋았다.

실제로 변화가 있었다.
교사들이 자주 마주쳤고, 잡담이 늘었고, 아이들 이야기가 오갔다. 관계의 밀도가 올라갔다.
그 경험은 나의 입장에서는 분명 ‘성공’이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이 경험을 다른 학교, 그것도 신설학교이자 혁신학교에 적용했을 때였다.

관리자는 적극적이었지만, 교사들의 반응은 미묘했다. 회의가 늘어날수록 교무실은 불편한 공간이 되었고, 교과서와 지도서를 들고 이동하는 일은 번거로웠다.
회의는 교무실보다 교실이 더 적합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한 가지 규칙을 만들었다.
“4시에는 교무실에 모이자.”

“퇴근 하기 전에는 들렀다가 가자.”


그 규칙이, 오히려 발목을 잡았다.
교무실은 ‘자유로운 만남의 공간’에서 ‘지켜야 할 제도’로 바뀌었고,
뜨거운 논쟁의 중심이 되었다.
결국 학급 수가 늘어나며, 그 제도는 가장 먼저 사라졌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의미있는 일들이 일어났고 여기에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교사들도 있었다.

그때의 나는 꽤 자신 있었다.
“이건 이미 성공한 모델이야.”
“의미가 검증됐어.”

그러면서 권하고 그 의미를 강조했다.

돌이켜보면, 그 태도 자체가 바로 휴브리스였다.


2. 휴브리스의 뜻과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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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브리스(hubris, ὕβρις)’는 고대 그리스어로, 본래 ‘분수에 넘는 행위’, ‘자기 한계를 망각한 오만’ 을 뜻한다.

중요한 점은, 휴브리스가 단순한 자만이나 거만함이 아니라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휴브리스는 질서의 문제였다.
인간이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고, 신의 영역까지 넘보는 태도였다.그래서 휴브리스는 언제나 네메시스를 불러왔다.

네메시스는 복수의 여신이 아니라, 균형을 회복하는 힘이다.
휴브리스 → 네메시스 → 몰락이라는 구조는 그리스 비극의 기본 서사다.


3. 오이디푸스 이야기 — 이성의 휴브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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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브리스'로 검색을 해보면 오이디푸스 이야기가 나온다. 그 일부를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오이디푸스는 총명한 왕이었다.
수수께끼를 풀어 도시를 구했고, 자신의 이성과 판단을 누구보다 신뢰했다.

문제는 그 확신이었다.
그는 예언을 피할 수 있다고 믿었고,
진실을 끝까지 밝혀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 모든 선택은 예언을 향해 나아가는 길이었고,
진실을 알게 된 순간, 그는 스스로 눈을 찔러 장님이 된다.

오이디푸스의 비극은 무지가 아니라 과신에서 비롯된다.
“나는 알고 있다.”
“나는 통제할 수 있다.”
이 믿음이 그의 휴브리스였다.


4. 토인비의 휴브리스 — 성공을 과신한 창조적 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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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는 문명의 흥망을 설명하며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을 제시했다.문명이 성장하던 시기에는 소수의 집단이 기존에 없던 해법과 상상력으로 공동체를 이끌어 나가지만, 문제는 성공 이후에 발생한다. 한때 창조적이었던 소수는 자신들의 과거 해법이 언제나 옳을 것이라 믿기 시작하고, 더 이상 변화하는 현실의 도전에 응답하지 못한다. 토인비는 이 순간을 ‘창조적 소수의 타락’이라 불렀다. 그들은 더 이상 설득과 모범으로 공동체를 이끄는 집단이 아니라, 과거의 성공을 근거로 복종을 요구하는 ‘지배적 소수’로 변한다.토인비에게서 휴브리스란 바로 이 지점이다. 한때의 성공 경험이 성찰을 멈추게 하고, 새로운 맥락과 타인의 목소리를 밀어내는 오만. 문명은 이 오만 앞에서 균열을 시작한다.


5. 학교 문화 속의 휴브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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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의 휴브리스는 대개 이렇게 말한다.

“그거 우리가 다 해봤지.”
“결국 돌아보면, 우리가 해온 방식이 제일 효과적이야.”

“이게 최선이야. 다른 대안들은 이미 경험적으로 다 정리된 거야.”

이 말들에는 자신감이 있다.
그리고 종종, 실제로 성공의 기억도 담겨 있다.
문제는 그 자신감이 상황의 변화보다 경험을 우선시할 때 시작된다.


휴브리스는 노골적으로 상대를 억누르지 않는다.
대신 상대의 말을 한 단계 아래로 내려놓는다.
“아직 잘 몰라서 그래.”
“그건 현장을 겪어보면 달라져.”
“우리는 그 시도 때문에 꽤 고생했어.”

이 말들은 질문을 금지하지 않는다.
회의도 열고, 발언 기회도 준다.
하지만 질문은 늘 ‘보충 설명’으로만 소비되고,
다른 의견은 ‘이미 검토된 과거’ 속으로 밀려난다.


그 결과, 새로운 교사는 말은 하지만 설득되지 않고,
기존 교사는 듣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움직이지 않는다.
참여는 허용되지만, 결정에는 반영되지 않는다.

도그마가 사고를 닫는다면,
휴브리스는 관계를 닫는다.

도그마 앞에서는 “왜?”라는 질문이 사라지고,

휴브리스 앞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대화가 사라진다.

이미 성공한 경험이 모든 질문을 대신해 버리기 때문이다.


특히 이 현상은 과거에 ‘잘해왔던’ 학교일수록, ‘성과를 만들었던’ 사람일수록 더 쉽게 나타난다.

성공의 기억은 자신감을 낳지만, 그 자신감이 타인의 맥락을 지우기 시작할 때 그것은 더 이상 전문성이 아니라 오만에 가까워진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위기 앞에서 가장 먼저 버려지는 것은
그토록 자신했던 그 제도와 방식들이다. 이것은 나의 경험 - 초등교무실의 사례-에서도 나타나 현상이다.


6. 질문으로 남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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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때 뒤늦게 깨달았다.
“이 제도가 옳은가?”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있었다는 것을.

“지금 이 사람들에게도 옳은가?”
“이 학교의 맥락에서는 어떤가?”

휴브리스는 악의가 아니라, 선의가 굳어버린 상태다.
그리고 학교는, 그런 선의를 가장 빠르게 절대화하는 공간일지도 모른다.

이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야 한다.


도그마와 휴브리스는 어떻게 다르고 같은 건 무얼까?
또, 함께 작동할 때, 학교는 어떤 공동체가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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