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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렁크 하나

by 이재이



독감에 걸렸던 가족은 기침소리가 예사롭지 않더니 폐렴이 되었고 입원을 했다. 12일 독감이 발병한 순간부터 많은 부분들이 힘들어졌고, 19일부터 4박 5일 동안 병원에 갇혀 있었다. 가볍게 나의 일상은 무너졌다.




요즘 여러 종류의 호흡기 바이러스들이 총출동하여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 같다. 병원에는 대기 인수가 넘쳐나고 입원 병실도 없어 하루 지나 겨우 입원을 할 수 있었다. 아침 7시부터 병원에 택시를 타고 가서 대기표 2번 뽑아서 접수 후 무한 대기하는 시간들. 내가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시간이지만 하염없게 흘러가는 야속한 시간이었다.




집에서 챙겨간 침낭으로 어찌어찌 마련한 잠자리는 너무 불편해서 매일 멍석말이를 당하는 기분이었다. 단칸방이라도 좋으니 제대로 된 잠자리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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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트렁크에 짐을 야무지게 쌌다. 병간호를 많이 해서 그런지 병원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은 비교적 잘 챙긴다. 수건, 수저, 슬리퍼, 베개, 가습기까지 꼭 필요하지만 병원에서는 제공하지 않는 물건들을 꾹꾹 눌러 담았다. 나는 차를 처분하여 택시를 타고 이동해야 했고, 집과 제법 먼 병원으로 가야 했기에 입원 기간 동안 꼬박 트렁크 짐으로만 생활해야 했다.




정말 기본적인 것들만 챙겼고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없기에 식단이 엉망이 되어버린 것을 제외하면 생활을 하는 것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리고 무사히 퇴원하여 집에서 연말을 보내고 있다. 병원에 있으면 갑갑했지만 또 그럭저럭 살아진다. 그래서 퇴원 후 집에 돌아오면 꼭 물건 정리를 시작하게 된다. 필요하지도 않은 짐들이 집에 많이 쌓여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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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하거나 병원생활을 하게 되면 트렁크 하나의 짐으로 생활한다. 오히려 홀가분한 느낌이 드는 것은 잡동사니들과 멀어지기 때문인 것 같다. 집으로 돌아와 짐을 풀면서도 가방 한두 개를 채울 물건 정도만 있어도 살아가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당장 내가 가진 물건들을 트렁크 하나의 분량으로 줄일 수는 없다. 하지만 점차 더 줄여 나가고 싶다. 내가 신경을 써야 할 물건이 적었으면 좋겠다. 물건들을 관리하고 쓰는 것에도 에너지가 소모된다. 최대한 물건에 신경을 쓰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일,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이 훨씬 의미 있다고 느낀다.




예전에 <트렁크 하나면 충분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사실 정해진 것은 없다. 트렁크 하나의 분량이면 충분할 수도 있고 가진 물건이 그보다 훨씬 많아도 전혀 문제 될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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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짧은 병원생활은 나에게 작은 교훈을 주었다. 사실 트렁크 하나 분량으로도 기본적인 삶을 충분히 살 수 있었다. 천재지변이 일어나 짐을 챙겨 대피해야 할 때도 가방 하나 정도의 분량만 들고 갈 수 있다. 죽을 때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한다.




물건이 너무 많아 버거워지지 않도록 미니멀하게 살고 싶다. 내가 가진 물건이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또 한 번 다짐하게 된다. 쓸모없는 물건들을 더 이상 낭비하지 말자. 부족하다는 생각보다는 가지고 있는 것들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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