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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 여행, 코카서스에서 스노보드 타기

첫 해외 파우더 보딩 원정 후기

by 세상에없는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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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원정 도박, 해외 원정 성매매, 해외 원정 출산 등. 해외 원정이라고 말을 들으면 뭔가 부정적인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나처럼 레포츠와 액티비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늘 '해외 원정'은 꿈이자 목표가 된다.


나는 참 취미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다. 모터사이클, 낚시, 활쏘기, 사격 등등 하나같이 돈 많이 들고 위험한 것들이다. 그중에서 최근 3~4년간 내 인생을 통째로 바꿔 놓은 취미는 '스노보드'다. 대학 수업 때 억지로 학점을 채우기 위해 신청했던 그 과목이 내 인생의 중심에 들어올 줄이야.


이후 난 한국 스키장의 90%를 가볼 정도로 자타공인 마니아가 되었다. 물론 통장을 '텅장'으로 만들어준 사랑스러운 내 장비들도 함께. 그런 나에게도 충족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한국에선 파우더 보딩이 불가능할걸?" 이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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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다. 한국의 스키장은 자연설이 아닌 인공눈으로 만든 리조트다. 스키나 보드를 위한 시설이지만 점차 그 인구도 줄어들고 기상 이온까지 겹쳐 눈은 슬러쉬나 설탕뭉치에 가까워져 더 이상 눈이라 부를 수 없을 정도다.


파우더 보딩은 말 그대로 밀가루 같이 소복이 쌓인 자연설에서 자유롭게 보드를 즐기는 것. 정말 인공 눈과는 차원이 다른 재미를 느낀다고 한다. 강원도 일부 스키장은 여전히 풍부한 겨울 적설량을 자랑하지만... 일본이나 캐나다 스노보드 영상에 나오는 그런 곳을 가보고 싶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발견한 나라 '조지아' 조지아의 구다우리 스키리조트는 100% 자연설로 이루어진 거대한 스키장이다. 한국의 용평리조트의 수십 배의 규모를 자랑한다기에 더욱 끌렸다.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이곳으로 '해외 원정'을 준비한다.



조지아 구다우리에서 코카서스 산맥 즐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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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원정에선 스노보드의 '판때기'인 데크는 함께하지 않았다. 물론 파우더 보딩 원정만 목표로 삼았다면 모든 장비를 챙겨야겠지만... 이번 여행은 조지아의 다른 곳들도 둘러보는 관광형 원정이었기 때문이다. 캐리어에 들어갈 수 있는 보드복,보호대, 스노보드 부츠, 그리고 고글과 장갑만 챙겼다. 나머지는 현장에서 렌털 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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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에서 구다우리 스키리조트까진 약 자동차로 3시간 정도 걸렸다. 중간중간 므츠헤타 등 볼거리도 많아 꽤나 흥미로웠다. 트빌리시-구다우리 구간은 폭설이 내리면 일시적으로 길이 끊기기도 한다니, 일정은 가급적 여유롭게 잡을 것.


구다 우리에 도착했다. 이곳은 4월까진 풍부한 적설량을 자랑하는 곳이기에 세계 각국의 보더 스키어가 모였다. 그중에서 아시안은 나 혼자. 신기하게 쳐다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곳은 유럽 스키 선수들과 러시아 여행자들이 많이 모여드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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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한국 파우더 보더들은 일본의 니세코 혹은 러시아를 해외 원정의 목표를 삼는다. 또는 더 멀리 가는 사람들은 뉴질랜드나 캐나다를 생각한다. 조지아의 구다우리는 파우더 보더들 사이에서도 생소한 목적지. 그렇기에 리조트 전체에서 아시안이 나만 있을 수밖에.


스키장은 정말 말 그대로 거대하고 대단했다. 슬로프라 부를 만한 곳은 그냥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 일부 초보자 구간은 정설을 해놨지만 사실 난 아무도 밟지 않은 파우더 구간을 도전하러 온 것이다. 눈이 무릎 이상까지 쌓여 꽤 빠른 속도에서 넘어졌음에도 전혀 아프지 않았다.

9.jpg 스키장이 워낙 크기때문에 초코바, 물 같은 비상식량을 넣을 가방이 필요하다.

눈 앞에는 거대한 코카서스 산맥이, 뒤로는 사람 한 명 없는 비 정설 구간이 펼쳐졌다. 나도 모르게 경사를 내려가며 아이처럼 꺄악 소리를 질러댔다. 렌털 데크의 왁싱 상태가 좋지 못한 것이 좀 아쉬웠다. 파우더 보드를 탈 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왁싱 상태다. 건설에 가까운 눈에서 빠르게 데크를 조작하기 위해선 왁싱이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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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지도엔 별다를 게 없었지만 이곳엔 꽤 많은 렌털 샵과 카페, 그리고 식당이 있었다. 숙소는 4성급 호텔 2개 정도가 있었고 나머지는 에어비앤비 숙소였다. 리프트권은 정말 저렴했다. 시즌권은 총 20만 원 내외였다. 일일 권은 2만 원 정도로 한국의 반값도 안되었다.


한국 스키장에서 수배는 비싼 돈을 주고 긴 줄을 기다려 간신히 리프트를 타고... 또 수많은 인파 속에서 카빙을 하고. 리프트에서 누군가와 장비가 툭 부딪히면 죽일 듯이 서로를 노려보는... 그런 지치는 한국 스키장 문화.


이곳은 그렇지 않았다. 와인을 한잔하고 스키를 즐길 정도로 사람들이 여유롭다. 스키장이 워낙 넓어 부딪힐 일도 거의 없지만 초보를 배려하고 오히려 친절하게 넘어진 초보를 부축해주는 그런 문화. 한국의 스키장은 전투적으로 보딩을 하지만 이곳은 말 그대로 '펀보딩' 중이었다.


조지아 여행 중 4일은 구다우리에서 원 없이 보드만 즐겼다. 이후 1920 시즌을 한국 강원도에서 보내니, 다시금 조지아가 그리워졌다. 해외 원정의 매력은 이제 겨우 맛을 보았을 뿐이다. 다음 기회에는 세계 최고의 스키장인 캐나다 '휘슬러 스키장'을 목표로 또 일상을 보내본다.



조지아 스키장, 렌탈은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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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다우리에는 작은 렌털 샵이 약 3개 정도 있었다. 가격은 데크+부츠 기준 하루에 15000원 정도. 비싼 가격은 아니다. 3일 정도 연속으로 렌털을 하면 조금 더 할인을 해주기도 한다. 종류는 다양하지 않으나 그래도 꽤나 익숙한 브랜드를 빌려주긴 한다.


부츠 사이즈는 모두 유럽 기준으로 되어있다. 본인 신발 사이즈의 유럽 사이즈를 알아가기 바란다. 참고로 렌털 샵에서 스키복은 거의 보지 못했다. 있어도 유럽인 체형 기준이기에 아시안 사이즈는 없어 보였다. 스키복, 장갑, 고글 정도는 한국에서 미리 준비해 가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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