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밥 한 그릇의 크리스마스

by 온마음


어렸을 적,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면 아빠는 늘 진짜 나무를 구해 오셨다. 화분에 심은 나무를 거실 한가운데 두고 우리는 함께 장식을 달았다. 넉넉하진 않았지만 부모님은 늘 우리 남매에게 행복을 심어주려 애쓰셨다.


25일 아침이 되면 트리 밑엔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이 놓여 있었다. 그 믿음은 초등학교 3학년까지 이어졌다. 산타가 없다는 걸 알게 된 뒤에도 기대는 사라지지 않았다. 이번엔 부모님이 어떤 선물을 준비하셨을까. 선물 앞에서 실망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무엇이든 나를 생각해 고른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조금 더 커서는 더 좋은 선물을 원했다. 20대의 연애는 비싼 선물로 마음을 증명하는 일 같았다. 30대가 되어서도 기념일이면 좋은 레스토랑, 좋은 선물. 그게 기쁨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40대. 올해 크리스마스는 조금 달랐다. 비싼 선물도 좋지만 지금의 나는 평범한 하루를 함께 보내는 게 더 소중하다고 느꼈졌다.


어디 가고 싶냐는 남편의 질문에 딱 세 가지가 떠올랐다. 우리가 좋아하는 국밥집, 자주 가는 서점, 맛있는 커피.


“그거면 되겠어?”

“응, 그거면 충분해.”


그래서 우리는 조금 일찍 국밥집으로 향했다. 자리가 딱 두 개 남아 있었고 우리가 앉자마자 만석이 됐다. 서로를 보며 웃었다. 따뜻한 국밥이 나왔다. 고추와 양파, 깍두기까지. 오늘도 맛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국밥을 함께 먹을 사람이 있어 감사했다.


혼자였다면 배달 음식과 예능 프로그램으로 하루를 보냈을지도 모른다. 그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함께라는 건 확실히 다른 온도를 갖고 있었다.


두 번째는 서점. 책을 좋아하지 않는 남편은 그래도 내 옆을 걸어준다. 나는 책을, 남편은 컴퓨터 용품을. 각자의 취향을 존중한 채 우리는 잠시 떨어져 있다가 다시 만난다. 남편은 책 두 권을 선물해 주었다. 관심만 두고 있던 책들이었다. 그 마음이 더 고마웠다.


마지막은 커피. 집으로 돌아와 케이크를 나누며 커피를 마셨다.


특별한 이벤트는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아주 가득 찼다. 명품이 아니어도, 근사한 여행이 아니어도, 함께 국밥을 먹고 같은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는 하루. 여기서 포인트는 ‘함께’다. 서로를 귀하게 여기는 두 사람이 같은 방향으로 하루를 보내는 일.


아무래도 나이가 든 것 같다. 하지만 이런 나이 듦이라면 얼마든지 반갑다.


이렇게 이 사람과 마음을 나누며 다정하게 나이들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없겠다 라는 마음이 드는 하루였다. 다정한 사람이 곁에 있다는 건 평생을 살아갈 힘을 얻는 것이다. 그렇게 서로를 향한 마음으로 단단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세상의 화려함에 눈을 맞추기보다, 내 곁의 다정한 당신에게 눈을 맞추며 우리에게 주어진 대로 그렇게 고요하고도 꽉 찬 생을 함께 걸어가고 싶다.

%EC%8A%A4%ED%81%AC%EB%A6%B0%EC%83%B7_2025-12-25_211301.png?type=w1 출처 : 지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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