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수업
그날,
‘인도’라는 단어는 내 삶에
생각보다 조용히 들어왔다.
결정을 해야 할 만큼
거창한 사건은 아니었고,
이별을 각오할 만큼
비장한 선택도 아니었다.
다만
이대로 괜찮은 걸까,
라는 질문이
자꾸 마음에 남았다.
나는 오랫동안
교육이라는 세계 안에 있었다.
아이들의 문장을 고치고,
생각을 정리해 주고,
부모의 불안을 대신 말로 풀어주는 일이
내 일이었다.
국어학원을 운영하며
나는 늘 ‘교육’을 이야기했다.
아이의 성장,
공부의 방향,
부모의 역할 같은 것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작 내 아이들의 시간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남편의 주재원 발령 소식이
그 질문을 꺼내 놓았다.
선택지는 분명했다.
나는 한국에 남아
내 일을 계속할 수도 있었고,
아이들은 익숙한 학교에 다닐 수도 있었고,
가족은 떨어져 살아갈 수도 있었다.
누군가는 그게 더 현실적인 선택이라고 했다.
누군가는 아이들 교육을 생각하면
한국이 맞다고도 했다.
그 말들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맞는 말이라
더 마음이 복잡해졌다.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직 하루의 감정을
가장 먼저 부모에게 건네는 나이,
말투와 시선을
그대로 닮아가는 시기.
이 시기에
아빠는 화면 속 사람으로 남고,
가족은 각자의 자리에서
따로 성장해도 괜찮을까.
교육을 해온 사람으로서
그 질문을
외면할 수 없었다.
나는 늘 말해왔다.
아이들은
말로 배우는 게 아니라
어른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배운다고.
그 말을
이제는
내가 지켜야 할 차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가족이
어떤 선택 앞에서
어떻게 함께 고민하고,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는지.
그 과정 자체가
아이들에게는
가장 큰 수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래서 나는
‘따라온 것’이 아니라
‘같이 오기로’ 했다.
익숙했던 역할을
잠시 내려놓고,
나 자신을
다시 낯선 자리로 옮기는 선택.
쉽지 않았지만
후회하지는 않았다.
인도에서
아이들이 새로운 환경에
조심스럽게 발을 들이고,
서로 다른 언어와 얼굴 속에서도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모습을 보며
확신이 생겼다.
가족이 함께 있다는 안정감은
어떤 커리큘럼보다
먼저 작동한다는 것을.
인도에서의 삶은
나에게 교육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성적보다 먼저 길러야 할 힘,
언어의 뿌리,
국어가 해외에서도
왜 중요한지에 대한 질문들.
교육 전문가로서의 나와
엄마로서의 내가
이곳에서
다시 만났다.
이 글은
이유를 설명하기 위한 기록이라기보다,
내가 어떤 선택을 했고
그 선택을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에 대한
조용한 고백에 가깝다.
앞으로 이 공간에는
인도에서 아이를 키우며
다시 배우게 된 교육의 이야기,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흔들리고 고민했던 순간들을
차분히 적어보려 한다.
누군가
비슷한 갈림길 앞에 서 있다면,
이 글이
정답은 아니더라도
혼자가 아니라는 신호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