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퍼덕

지구와 가까워지기

by 모지

철퍼덕-


쉴 새 없이 걷다 보면, 그게 어디라도 풀썩 앉고 싶어진다.

짐승이 가만히 대지와 몸을 맞대고 에너지를 모으듯

우리도 중력에 못 이겨 그만 땅과 가까워지곤 한다.


걷는다는 건 단순하지 않다.

리베카 솔닛이 ‘걷기의 인문학’에서 말했듯

우리는 걸으며 생각하고 또 소통한다.

반대로 그렇다면, 걷다가 잠시 머무르는 것도 의미 있는 행위이자 과감한 선택이지 않을까.

걸어온 시간들을 되새긴다. 몸에 남은 여운과 함께



역마살이 있다더니,

나는 확실히 어디로든 떠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탈것보다는 내 다리에 의지해서.

처음 유럽에 갔을 때 정말 많이 걸었다.


1. 디즈니 랜드

실컷 줄 서서 놀이기구를 타고, 퍼레이드를 구경하고.

그렇게 걷다걷다

밤이 되면 마지막으로 디즈니 성을 배경으로 하는 일루미네이션이 있다.

명당 근처로 자리를 잡았다.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햄버거를 포장해 와 바닥에서 저녁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유럽 각국에서 온듯한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참 맛있게도 먹었다.


2. 파리 튈르리

정말 더운 날이라 기억이 난다. 당시 유럽에 폭염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고, 높은 온도에도 불구하고 에어컨 시설이 잘 되어있지 않은 탓에 일사병이 많았나 보다. 역에서 구호물품처럼 주는 물을 마시고 걸으며 친구와 나 둘 다 말을 잃었던 기억. 다행히 해가 진 공원은 시원했다. 이렇게 앉거나 누워있다 보면(친근한 다이소 돗자리 위) 날파리들이 머리 위에 모이기도 하고,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식사를 하는 쥐들을 마주하기도 했다.


낭만 그것은 마음속에서 기인하는 것.


3. 생 마르탱 운하

늘 사람이 모여 앉아있는 곳이었다.

물이 맑진 않은데 이렇게 물이 비친 풍경이 아름다웠다. 앉아서 수다 떨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어느 날엔 갑자기 물에 들어가 수영하는 아저씨를 보며 놀랐던 기억이 난다. 말했듯이 깨끗해 보이진 않았기에..


4. 쁘띠 팔레

파리의 시립 미술관.

미술관과 박물관이 넘치는 도시에서 그래도 적은 시간 안에 관람이 가능하다. 특히 이 정원과 카페에 반했다.

자유롭게 앉아 책을 읽는 사람들을 보며

우리도 책을 꺼내 읽다가 서로의 인터뷰를 찍었던 곳.

원형의 정원 그를 둘러싼 아름다운 기둥

한편의 카페와 사람들.


5. 암스테르담 운하

파리에서 버스를 타고 암스테르담에 갔다.

중심지는 운하 근처로 펼쳐져 있다.

정말 맛있었던 감자튀김과 네덜란드의 하이네켄.

노을이 멋지게 건물을 비춘다.

여기도 사람들이 삼삼오오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얼마 안 있어 어린 친구가 구급차에 실려가는 걸 봤다.

대마에 취했는지 술에 취했는지 알 길은 없었다..


6. 베를린 마우어 파크

베를린의 큰 마켓이 열리는 마우어 파크

또 버스를 타고 와 체크인하자마자 향했다.

녹초였던 우리는 여기서 찐하게 낮잠을 잤다.

그냥 옷과 가방을 깔고.

얼굴 타는 줄 모른 채.

자다가 흥겨운 버스킹에 깼다가 자다가 했다.


7. 베를린 마테지구의 공원

걷다가 걷다가 역시 지쳐 철퍼덕


해질 무렵이었다.

너무 아름다운 풍경들이었고

Do you read me?! 서점에서 산, 영어로 된 베를린 젊은이들의 인디 잡지를

열심히 읽었다. around 30


8. 박물관 섬

많은 베를린의 박물관 중 마르키쉬 박물관을 갔다

사람이 별로 없었고 우리 세상인 양

하나하나를 즐기며 구경했고

나와서는 쓰러졌다 냅다 누움.

티브이탑이 보인다.


9. 홀로 갔던 유대인 추모비

자유롭게 앉아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역시 정말 다양한 관광객이 모여있었다.

실제 기록물들을 아주 찬찬히 둘러봤다.

여행의 끝무렵이었다. 더운 여름의 끝

홀로 다니기로 한 날, 조용히 정리하는 시간이었다.


10. 브란덴부르크 문

하루 찢어져 각자의 일정을 마치고

브란덴부르크문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정말 다리가 아파서 아주 작은 턱에 앉아버렸다.

멀리서 날 찾은 친구가 찍은 뒷모습.

인상적이다.



최대한 많은 걸 담고 싶었고,

시간의 의미를 되새기고 싶었던 여행.

한바탕 여행이 끝나고 돌아오면

영혼은 그 중간쯤에 위치하게 된다.

묘한 부유감은 쌓여서 일상에 변화를 준다.

자연과 가까이서, 땅에 맞대어 있을 시간을 자주 찾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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