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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만나기 전의 나

by 온평 Mar 1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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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2학년 때, 우리 집 식구가 늘었다. 생후 한 달쯤 지난 작고 하얀 말티즈였다. 태풍이 몰아치던 날에 만나서 태풍이라고 불렀다.


20대 초반의 나는 학업에 충실했다. 건축학과에서 실내건축학과로 전과했고, 4학년 때는 경영학을 부전공으로 공부했다. 학교에서 자주 밤새어 과제를 했고, 아르바이트와 연애까지 소홀하지 않았던 때라 집에서 보낸 시간이 많지 않았다. 강아지를 키우자고 조른 사람은 나와 동생이었지만 태풍이를 돌본 사람은 엄마였다.


대학교 졸업 후 곧바로 영화 미술팀에서 일했다. 밤도 낮도 휴일도 가족도 친구도 없이 일만 했다. 영화인은 그런 직업이었다. 프로덕션 기간에는 캐리어 한 개에 짐을 구겨 넣어 스타렉스에 싣고 전국 각지를 돌아다녔다. 제작부가 잡아주는 모텔에서 팀원들과 먹고 자는 생활을 했다. 태풍이가 건강했던 시절을 함께 보내지 못했다.


단편 영화 한 편, 저예산 영화 한 편, 상업 영화 두 편을 일하고 번아웃이 왔다. 프랑스 파리로 떠났다. 서른 살이 되기 한 해 전이었다. 워킹홀리데이비자를 받아서 1년만 쉬려고 했던 여행은 유학 생활로 이어졌다.


프랑스 체류를 연장하기 위해서 서류를 준비하던 때에 태풍이가 많이 아프다는 연락을 받았다. 수혈을 하고 있지만 피가 응고되지 않고 피하층으로 계속 새어 나온다고, 수혈 중에 쇼크사할 수 있다고 했다. 한국으로 갈 수 있는 가장 빠른 비행기를 탔다.


태풍이는 혈소판 감소증을 이겨냈다. 나는 계획했던 대로 학생 비자를 받아서 다시 파리로 갔다. 3년 후에 태풍이가 큰 수술을 받게 될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어학원을 다니면서 프랑스어가 늘었고, 파리 1대학 영화 미학과로 편입했다. 입학 서류로 프랑스 체류증을 계속 연장할 수 있었다. 에펠탑이 보이는 작은 집을 얻어 민박집을 운영해서 먹고살았다. 학교생활도, 민박집도 자리를 잡아갈 때 즈음 태풍이가 또 많이 아프다고 했다. 종양을 발견했고, 수술 중 사망할 확률은 30%, 수술하지 않으면 3개월 정도 더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가족들은 고민 끝에 수술을 시키기로 결정했다.


마침 프랑스는 여름 방학이었다. 한국에 와서 수술이 잘 되기를 기도했고, 프랑스로 가서 과락한 철학 수업의 재시험을 봤다가 다시 한국에 와서 태풍이의 회복을 도왔다. 가을 학기가 시작되어 프랑스로 돌아갔지만 유학 생활을 그만두기로 했다.


애초에 학업에는 뜻이 없었다. 국립 대학 입학은 프랑스 체류를 저렴한 비용으로 연장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태풍이가 오래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태풍이에게 남아있는 시간보다 파리 생활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았다. 민박집을 접고 귀국했다. 파리에서 폴란드를 경유하여 한국으로 오는 동안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발생하여 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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