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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랑 Jan 12. 2019

학교에 성평등이 필요합니다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강연을 듣고

서지현 검사의 검찰계 성폭력 폭로로 시작된 대한민국의 미투 운동은 연예계, 문학계 등으로 퍼졌고 교육계에서도 미투가 잇따랐다. 스쿨 미투라는 페이스북 페이지도 개설되었는데, 100여 개의 미투가 올라와있다. 지난 11월 3일에는 학생 독립운동 기념일을 맞아 서울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스쿨 미투 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전국에 있는 30여 개 단체가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는 주제로 모여 학생들의 발언과 각종 퍼포먼스로 집회를 구성했다. 또한 이들은 학내 구성원 모두에게 정기적인 페미니즘 교육 시행 등 5개의 요구안을 제시했다.     


미투 운동의 흐름에 따라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이라는 프로그램에서도 스쿨 미투와 관련된 강연을 진행했다. 11월 27일 목동 KT 체임버홀에서 진행된 강연은 ‘학교에 성평등이 필요합니다.’를 주제로 6명의 연사가 15분씩 강연을 하는 방식이었다. 3명의 연사가 강연을 한 후, 관객 2명에게 각각 90초의 강연시간을 주었다. 한 고등학생은 자신을 여고에 다니고 있는 학생이라고 소개했고, 주변에 있는 남고는 그냥 고등학교인데 왜 자신이 다니는 학교는 ‘여’고 임을 드러내야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다음에 올라온 관객 강연자는 초등 교사였다. 초등젠더교육위원회 ‘아웃박스’에서 활동하고 있다며, 교사들은 성평등 교육을 할 준비가 되었으니 시켜만 달라고 말하였다. 이들은 제도적 뒷받침을 기대하고 있었다. 사전에 공지된 시간도 아니었고 주어진 시간도 짧았기에 즉흥적으로 빠르게 말을 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막힘없이 하고 싶은 말을 했다. 그들이 평소에 하고 싶은 말을 얼마나 곱씹었는지 알 수 있었다.     


첫 번째 강연자는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었다. 그는 대한민국의 성별임금격차가 OECD 33개국 중 부동의 1위인 것, 여성 월평균 임금이 남성 임금의 67.2%수준인 것, 남성 고용률이 71.2%인 것에 비해 여성 고용률이 고작 50.8%인 것 등을 언급하며 권력에 의한 성폭력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고발했다. 안전과 생명은 누구든지 누려야 마땅한 기본권 중의 기본권임을 말하며 살아있어야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데 ‘살아있는 것’조차 쉽지 않은 대한민국 여성의 현실을 밝혔다. 한국의 씁쓸한 현실을 다시 한 번 마주하고 나니 막막함이 앞섰다.     


정춘숙 국회의원은 성폭력이 여성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말하며 어머니, 여자형제, 여자 친구를 생각해보게 했다. 이런 식으로 남성을 설득해야 하는 사회가 답답하다. 어머니와의 관계가 좋지 않고, 여자 형제와 여자 친구도 없다고 해서 성폭력 문제에 무관심하고 여성 혐오를 가해도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는 이름하에 어떤 이유가 없더라도 모두의 인권이 존중되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회를 바란다.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도 ‘용기 있는 목소리를 지지해야 하는 이유’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그는 2017년에 실시된 초, 중, 고 교사에 의한 학생 성희롱 실태조사 중 일부인 응답자 중 27.7%가 ‘교사가 나를 성희롱한 적이 있다.’고 말한 사실을 보였다. 청소년 전화 1388을 알려주며 성폭력이 아닌 어떤 문제를 갖고 있더라도 청소년이라면 이곳에 전화를 해달라고 했다. 진선미 장관은 강연을 마치고 사회자와 강연 소감에 대해 말을 하던 중, 또래 상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성희롱, 성폭행 등을 당했다면 혼자 앓지 말고 전국 각 학교에 있는 또래 상담을 담당하는 같은 학교 친구에게 말하라고 했다.  

청소년 전화 1388은 처음 들어본 좋은 정보였다. 믿을 만한 보호자가 없는 청소년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제도였다. 하지만 또래 상담을 활용하라는 진선미 장관의 말은 다소 뜬구름 잡는 듯했다. 또래 상담사가 되는 학생은 정기적으로 또래 상담법 공부를 한다. 꽤 전문적인 상담이 가능하며 비슷한 나이기에 좀 더 편안함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학교에서 또래 상담 제도가 믿음직하게 진행되는 것은 아니며, 같은 학교 학생이기에 오히려 피해 사실을 마음 놓고 털어놓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설령 털어놓았다고 해도 그것이 자신에게 2차 가해로 돌아오지는 않을까 염려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또래 상담 제도를 피해자가 완전히 신뢰할 수 있으려면 좀 더 확실한 제도관리가 필요하다. 현장에서 직접 겪은 청소년들의 말을 들어보고 그에 맞게 제도를 제정하거나 개정해간다면 더 효과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이 마련될 것이다.     

이용석 현직 교사가 강연을 이어갔다. 그는 요즘 학생들이 재미로 사용하는 ‘느금마 걸레년, 니에미 김치년. 니에미 십창년’과 같은 말을 띠우며 여성 혐오의 심각성을 알렸다. 성평등 교육은 당연히 필요하다고 말하며 ‘성평등’이라는 새로운 교과목을 만들자는 것이 아니라 교과 내용을 페미니즘 시각으로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선녀와 나무꾼’을 예로 들며, 노루는 개인 정보를 동의 없이 넘겼고 나무꾼은 선녀의 옷을 훔치고 그를 강제로 임신을 시키는 등의 행위를 했다며 지극히 남성의 욕망만을 위한 이야기라고 했다. 강연이 끝나고 사회자가 “실례지만 외적으로 국어선생님같이 안 생겼다는 말을 들으시면 어떤가요?”라는 질문을 하자 그는 “일단 실례라고 생각하면 안 하는 게 맞고요”라고 답을 시작했다. 관객들은 통쾌한 박수를 보냈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 만났던 선생님들은 대부분 이용석 선생님과 달랐다. 치마 짧은 친구를 향해 창녀냐고 비아냥거리는 선생님, 은근슬쩍 브래지어 끈이 있는 곳을 터치하던 선생님, 알면서도 방관하던 선생님, 생리 주기를 언급하던 선생님이 거의 전부였다. 치가 떨리는 학교 분위기와 그 분위기를 더 공고히 하던 선생님들이 원망스럽다. 초등젠더교육위원회 ‘아웃박스’에서 활동하는 선생님 같은, 페미니즘이 교과목에 스며들어야 한다는 이용석 선생님 같은 어른들이 늘어나길 바란다. 학생 개개인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어른들의 수가 부디 늘어나길 바란다.     

20대 초반의 강연자가 차례로 두 명 등장했다. 먼저 용화여고 성폭력뿌리뽑기 위원회의 오예진 대표가 말을 시작했다. 그는 스쿨 미투를 가장 먼저 시작한 학교인 용화여고의 졸업생으로 재학 중 들었던 성희롱과 성추행을 예시로 들며 말문을 열었다. “너네 이렇게 공부 안 하면 빡촌(창녀촌) 간다.”, “다리 벌리고 있으면 박아버린다.”등과 같은 언행과 구강성교 과정을 묘사하는 등 교사들은 재미로, 이유 없이 학생들에게 여성혐오 가득한 말들을 뱉었다고 한다. 전해 들어도 충격적인 말임에도 불구하고 처음 미투를 시작할 때 이렇게 일상적인 일이 화젯거리가 될 수 있을지 염려했다고 한다. 자주 겪다보니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앎에도 불구하고 위축되었고 교사는 “대학 가려면 내 말 잘 들어야 해.”라고 하니 학생들은 용기를 내기 쉽지 않았다.     

다음은 장유정 하자센터 청소년 활동가가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에 나오는 문장인 “인간 남성은 인간으로 규정되지만 인간 여성은 여성으로 규정된다.”를 인용하여 강연을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하든 여성으로서의 가치도 추가적으로 평가요소가 되는 현실을 꼬집었다. “너는 왜 화장 잘 안 해?”, “안 시켜도 알아서 잘하네. 시집가도 되겠다~”등 자신이 들었던 말을 언급하며 이런 말 안 들어본 여성은 없을 거라고 덧붙였다. 그는 한 방송사에서 진행했던 오디션 프로그램을 언급했다. 여자 연습생이 대상이었던 시즌1의 주제곡은 ‘pick me’이고 남자 연습생이 대상이었던 시즌2의 주제곡은 ‘나야나’였던 점을 설명했다. 두 시즌을 비교함으로써 여성은 뽑히는 위치에 수동적으로 존재하고 남성은 자신의 매력을 한껏 뽐내는 능동적인 위치에 있다는 것을 잘 알려주었다. 그는 “이상으로 장유정, 여성 그리고 사람이었습니다.”라는 말로 강연을 끝냈다.     

마지막 강연자는 손희정 문화평론가였다. 그는 자신을 “페미니스트 손희정입니다.”라고 소개했다. 자신이 페미니스트임을 아는 사람들이 ‘잘못된 말’을 하다가 “손희정씨 있을 때는 이런 말을 하면 안 된다.”고 말했던 적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조용히 화면에 “알면 하지 마세요.”를 띠웠다. 재치 있는 강연의 시작이었다. 그는 여성들이 말을 하기 시작하고 특히 페미니즘을 말할 때 많은 남성들은 지나치게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성들이 요구하는 것은 ‘몰래 찍지 마라, 때리지 마라, 죽이지 마라, 여자는 남자의 소유물이 아니다’와 같은 당연한 것일 뿐이니 두려워할 필요 없다고 덧붙였다. 영향력 있는 언론인 2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한 남성 언론인이 혜화역 시위를 어떻게 폄하했는지, 그것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사례를 들어 설명하기도 했다. 그는 페미니스트와 친하기 지내기 위해서는 그들의 말을 경청하라는 말로 끝을 맺었다.    

 

학교 내의 성평등을 추구하는 방법도 결국에는 사회에서 여성 혐오를 없애는 길과 같다.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고 그에 맞는 법과 제도도 필요하다. 사회는 더 이상 학생들 혼자 감당하게 놔둬서는 안 된다. 스쿨 미투가 무려 68개의 학교에서 터져 나올 만큼 교내 성폭력 문제가 심각하다면 결코 한 개인의 힘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을 뜻한다. 문제제기와 인식의 변화에 학생들이 앞장서고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어렵게 내 준 용기 덕분에 사회는 그들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 학생들의 용기와 노력이 헛되지 않게 사회와 정부가 할 일은 무엇이 있을까 끊임없이 생각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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