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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형준 변호사 Jun 04. 2020

뮤지컬 '영웅'

장부가

저는 책에 대한 소장 욕구가 참 강합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다가 책의 내용에 흠뻑 빠지게 되면 책을 다 읽었음에도 서점에 가서 그 책을 사서 책장에 꽂아 놓아야 마음이 편해집니다. 서점을 둘러보다가 마음 가는 책이 있으면 언제인가는 읽게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몇 권을 사서 책장에 진열해 놓습니다. ‘안중근 평전’이라는 책도 그렇게 소장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메모해놓은 것을 보니 2016. 6. 6.에 ‘안중근 평전’을 구매했는데, 이후로 몇 번이고 읽어야지 마음만 앞서다가 분주한 일상에 마지막 쪽수를 넘기지 못하고 책을 놓기가 일쑤였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19년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뮤지컬 ‘영웅’의 안중근 의사 역할을 맡은 배우 중 한 명인 양준모 배우가 ‘장부가’를 부르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순간 전율이 느껴지면서 뮤지컬 ‘영웅’을 꼭 봐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 즈음에 뮤지컬 ‘영웅’을 영화로 만들고 주연배우는 정성화 배우가 캐스팅 되었다는 기사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정성화 배우가 안중근 의사로 연기하는 공연을 예매한 뒤, 작은 설레임을 갖고 2019년 7월의 마지막 날 예술의 전당을 찾았습니다. 공연 시작 전 공연장 주위를 둘러보고, 프로그램 북과 2장으로 구성되어있는 CD를 구매했습니다.      



공연장 안으로 들어가니 ‘영웅’이라는 자막이 무대 중앙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공연이 시작되고, 뮤지컬 ‘영웅’의 음악에 빠져듭니다. 잘 알고 있는 이야기가 줄 수 있는 나태함을 뮤지컬 ‘영웅’의 음악들이 바로잡아 줍니다. 공연 후반으로 갈수록 잘 알고 있는 이야기가 주는 나태함은 사라지고, 잘 알고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줄 수 있는 용기와 뭉클함이 다가옵니다.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 울려 퍼진 “꼬레아 우레”, “대한독립 만세”. 재판 과정에서 안중근 의사가 부르는 ‘누가 죄인인가’라는 음악 속에서 안중근 의사의 기개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1910년 3월 26일 여순감옥에서 순국하시기 전에 부르는 ‘장부가’에서는 안중근 의사의 내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깊은 처절함이 느껴졌습니다. 그 처절함은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지 110여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우리 곁에 영웅의 모습으로 남아 있습니다.     


뮤지컬 ‘영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한정된 무대 공간에서 펼쳐지는 추격전이었습니다. 뮤지컬 ‘영웅’ 출연진들의 피나는 연습이 있었기 가능한 장면이라고 생각됩니다. 뮤지컬 ‘영웅’의 영화 버전은 위 추격전을 어떤 식으로 풀어낼지 궁금합니다. 공연이 끝나고 출연진들이 무대인사를 할 때 힘껏 박수를 치고,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기 정신없었습니다.     



‘장부가 세상에 태어나 큰 뜻을 품었으니’ 장부가의 한 소절을 웅얼거리며 공연장을 나와, 내친김에 남산에 있는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도 찾아가 보았습니다.     



뮤지컬 ‘영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음악 ‘장부가’입니다. 장부가는 안중근 의사가 1909년 10월 22일 하얼빈에 도착한 후, 거사를 기다리면서 지은 시입니다.     



장부가 세상에 처함이여 그 뜻이 크도다
때가 영웅을 지음이여 어느 날에 과업을 이룰고
동풍이 점점 차가워짐이여 장사의 의기는 뜨겁도다
분기하여 한 번 지나감이여 반드시 목적을 이룰지어다
쥐도적 ○○여 어찌 즐겨 목숨을 비길로
어찌 이에 이를 줄을 헤아렸으리오
사세가 고연하도다
동포 동포여 속히 대업을 이룰지어다
만세 만세여 대한독립이로다
만세 만만세여 대한동포로다
-김삼웅, [안중근 평전], 216쪽 ~ 217쪽-


뮤지컬 ‘영웅’에서 안중근 의사가 부르는 ‘장부가’의 가사는 안중근 의사가 지은 시를 뮤지컬의 흐름, 음악적 운율에 맞게 개사를 한 것이라고 합니다.    

                              

하늘에 맹세한 장부의 큰 뜻
내게 남겨진 마지막 시간
내가 걷던 이 길 끝까지 가면
이룰 있나, 장부의 뜻

하지만 나는 왜 머뭇거리나
하느님 앞에서 무엇이 두렵나
장부이기를 맹세했는데 왜 이리 두려울까

뛰는 내 심장 소리 들리지 않을까
두려운 나의 숨소리 저들이 듣지는 않을까

하지만 두려운 마음마저 잊게 해주는
고마운 이 햇살, 따뜻한 이 바람

하늘에 맹세한 장부의 큰 뜻
내게 남겨진 마지막 시간
내가 걷던 이 길 끝까지 가면
이룰 수 있나. 장부의 뜻

하지만 나는 왜 머뭇거리나
하느님 앞에서 무엇이 두렵나
장부이기를 맹세했으니 두려워하지 말자

내 살갗을 파내듯 에이는 이 고통
내 어머니 가슴을 헤집는 이 시간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오늘이 과거로 바뀌는 이 순간
나는 무엇을 생각하나...

장부가 세상에 태어나 큰 뜻을 품었으니
죽어도 그 뜻 잊지 말자
하늘에 대고 맹세해 본다.

하늘이시여, 도와주소서
우리 꿈 이루도록 
하늘이시여, 지켜주서서
우리 뜻 이루도록

하늘이시여, 도와주소서
우리 꿈 이루도록
하늘이시여, 지켜주소서
우리 뜻 이루도록

장부의 뜻 이루도록
-뮤지컬 ‘영웅’ 중 장부가-


안중근 의사가 순국하시 전 안중근 의사의 동생들에게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라는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그런데 아직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안중근이 처형되던 날, 정근과 공근 두 형제는 감옥 밖에서 형의 시신을 넘겨줄 줄 알고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소식이 없었다. 너무 늦어져서 형무소장을 찾아가 시신을 달라고 했더니 이미 사형이 끝나고 묘지에 묻었다는 것이었다.” 두 동생은 통곡했다. “우리 형에게 두 번 사형을 하는 것이냐“”라며 두 동생이 항의했지만 시신을 찾아갈 수 없었다. 일제는 안 의사의 유해를 유족에게 돌려주면 안 의사가 묻힌 곳이 곧 한국독립운동의 성지가 될까 두려워했다. 그래서 의사의 유해를 공동묘지에 묻고 유족에게는 그 위치도 알려주지 않았다.

-김삼웅, [안중근 평전], 461-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찾는 일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하지만, 어느 때인가는 꼭 안중근 의사의 유언대로 안중근 의사의 유해가 대한민국의 하늘 아래 안장되기를 소망합니다. 코로나19라는 엄중한 상황 속에서도 대한민국의 의료진을 비롯한 많은 영웅들 덕분에 세계로부터 찬사를 받는 대한민국을 안중근 의사가 바라보시면서 춤을 추시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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