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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주말 목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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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천고래 Jul 16. 2019

살뜰한 손길 덕에 행복했네

주말 목욕_창원시 진해구 '옥수탕'


종종 지인들로부터 제보가 들어오곤 한다. 어딘가의 목욕탕 사진을 찍어 보내 주거나, 주변의 입소문을 전해주기도 하는데 무척 감사한 일이다. 검색으론 한계가 있어 꽤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번 목욕탕도 그렇게 알게 됐다. 눈 밝은 친구 덕이다. 벚꽃으로 유명한 도시의 4월, 이름난 명소를 뒤로 하고 목욕탕으로 달려갔다.



진해 이동 소재의 옥수탕. 전면 벽돌과 타일로 마감한 2층 건물. 흔한 간판 대신 타일로 글자를 새겨 넣은 것이 인상적이다.
나무로 단단히 짜인 옛날식 카운터. 요금은 어른 3,500원, 어린이 2,500원.


첫눈에 두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타일로 마감한 외벽이며 남녀 입구가 분리된 옛날식 구조를 그대로 간직한 곳이라니. 수수하지만 아름답고 낡았지만 선명한 인상이었다.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분명 뭔가 있다고.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려 노력했다. 오늘의 목욕은 혼자가 아니라, 제보해 준 친구와 친구의 딸과 함께였으니까. 어른 두 명에 어린이 한 명이니 도합이 9,500원. 만원 한 장으로 목욕 값을 치르고도 500원이 남는다. 잠깐 머무른 카운터도 옛 모습 그대로라 마음이 더욱 설렜다.



탈의실 전경. 놀랍도록, 모든 것이 그대로다. 가히 근대 문화 유산 수준이다.
무려 현역으로 잘 작동하고 있는 체중계. 함께 간 어린이(5세)의 몸무게도 정확하게 짚어냈다.


어느 정도 짐작하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사실 이쯤 되니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이렇게까지 그대로, 방금까지 쓸고 닦은 듯 모든 게 먼지 하나 없이 빛을 내고 있다니. 나도 모르는 새 타임머신을 타고 온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반질반질하게 윤이 나는 화려한 무늬의(아마도 90년대 초반에 보고 영영 보지 못했던 듯한) 장판, 단단하게 짜인 평상과 화장대, 손때 묻었지만 꺼진 곳 하나 없이 폭신한 소파, 무려 바늘이 움직이는 체중계, 먼지 한 톨 앉지 않은 깨끗한 선풍기까지.


카운터와 연결된 일종의, 비품 구매를 위한 개구멍. 목욕탕을 운영하던 중간에 나무로 직접 짜셨다고 했다.
1971년도에 받아서 지금까지 걸어 두었다고 하는, 목욕업 연합회 진해분회의 주의사항.


압권은 문을 열었을 당시부터 그 자리에 계속 걸려있었던 입욕자 주의사항. 한 문장이 눈에 띄었다. "위험 방지상 무기 등의 보관은 일체 취급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군사 도시 특성상 생긴 문구가 아니었을까.


탈의실에서 보이는 목욕탕. 아무도 없었지만, 어쩐지 이렇게 바라보는 게 좋았다.


탈의실을 뒤로하고 욕실로 들어섰다. 모서리가 둥글게 궁굴려진 사각 욕조가 한가운데 있고 벽 쪽으로 열 개 남짓의 자리가 전부인 아담한 욕실이었다. 묵묵히 몸을 씻기 바쁜 사람들을 비집고 겨우 귀퉁이에 자리를 얻었다.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어린이를 씻기느라 한바탕 하고서야 탕에 몸을 담갔다.


그런데 다시금 놀랐다. 탈의실에 이어, 탕도 그대로였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탕의 형태며 디테일을 보아하니 최소 삼십 년은 넘었다는 걸. 깨끗한 건 두 말하면 입 아플 정도였다. 대체 어떻게 관리를 했을까. 이쯤 되니 궁금증이 폭발할 지경이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곱씹으며, 물이 좋아 때가 잘 밀리나 보다 중얼거리며, 제법 오랫동안 흡족한 목욕 시간을 가졌다.


이번 궁금증 해결의 장소는 카운터가 아니라 탈의실이었다.


옷을 꿰어 입으며 카운터로 나갈 채비를 하던 중, 사장님이 탈의실로 들어오셨다. 한 손에는 걸레를 든 채로.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이며 먼지를 줍고 닦기에 여념이 없으셨다. 그 장면을 보니 이미 질문 하나는 해결한 듯했다. 저렇게 부지런히 쓸고 닦았으니 관리할 수 있었겠지. 밝은 표정으로 사장님께 말을 붙였다. 


"저 사장님, 오늘 여기 처음 와보는데 참 좋네요."

"하이고, 머가 좋다꼬. 요새 좋은 데가 얼마나 많은데요."

"아니에요, 진짜로 좋은데요. 물도 좋고요. 그런데 어떻게 옛날 모습 그대로인 거예요?"

"만날 이래 쓸고 닦고 안 합니꺼."

"그럼 얼마나 오래 하셨어요?"

"보자.. 아마 71년도에 문을 열었나 그랄낍니더. 울 큰 딸내미 태어난 그해에 열었응께네."

"그럼 지금 여기 있는 거 다 그때 그대로예요?"

"탕을 중간에 한번 틔운다꼬 공사한 거 빼고는 다 그대로다 아이가. 그것도 칠십몇 년도에 했으니까 오래됐다."

"저 여기 탕 얘기가 궁금한데, 더 얘기해주실 수 있나요?"

"그라면 난중에 영감님 있을 때 오소. 울 할배가 있으니까 그때 오면 알아서 해줄끼구만."


갑자기 집으로, 사장님의 이야기를 듣다.


그래서 정말 찾아뵙게 되었다. 목욕탕 탐방 역사상 처음 있는 일! 마침 목욕탕과 무척 가깝게 댁이 있다며 흔쾌히 수락하셨다. 벚꽃 피던 계절에 약속했건만 사장님의 건강 문제로 수박 먹는 계절에야 만나 뵐 수 있게 됐다.


옥수탕은 1971년 9월 23일 추석을 목전에 두고 문을 열었다 했다. 그 말을 시작으로, 1대 사장인 함윤중(79)님의 입에서 목욕탕의 48년 역사가 빼곡히 정리되어 나왔다. 질문도 필요 없었다.


역사의 벽돌.


"그때 이 촌에 보루꼬(벽돌) 공장이 오데 있습니꺼. 세멘을 직접 개서 틀에 넣고 굳히고 들에 말라가 한 장, 한 장씩 쌓았다 아입니까. 회사 다니면서 주야로 이 목욕탕을 만들었지. 그때 샷시 그런게 어딨노. 그냥 나무로 일단 목욕탕을 지었다 아입니까. 나중에야 다 썩고 틀어져 고쳤지만. 그때 내 나이가 서른인가 그캤습니다. 73년도에는 오일쇼크로 힘들었지요. 그래서 목욕탕 카운터 고 쪼맨한데서 인자 막 태어난 큰 딸하고 세 식구가 같이 먹고 자고 생활했다 아입니까."


하루 영업을 마치고 물이 빠진 욕조. 71년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보기 드문 욕조에 반해버렸다.

"첨 시작할 적에는 1층에 남탕 여탕이 같이 있었는데, 지은 지 8년 후에 1층 전체를 여탕으로 만들고 2층을 지어갖고 남탕으로 만들었지요. 잘될 때는 참 잘됐지요. 손님이 많아서 탕도 넓히고 건물도 올렸으니까. 고생도 많이 했지요. 오늘날까지 새북(새벽) 다섯 시면 불 때러 일어나야 되고 청소해야 하고 영감 할마이 둘이서 일해야 한다 아입니까. 전부 내 손으로 고치고 쓸고 다 해가 그나마 이래 오래 했지요."


탈의실 벽에 붙어있던 휴업 공지. 한 달 좀 넘게, 더운 기운이 가실 때까지 쉬어간 뒤 다시 문을 열겠다고 하셨다.


"그래가 벌써 세월이 한 오십 년 됐네. 근데, 이제 그것도 끝이라. 금년 말까지만 하고 그만 막살해야제. 내가 몸도 안 좋고 염소 소독기를 설치를 해야 내년에 영업을 하는데 그것도 우리 사정에는 안 맞고. 손님이 많으면 그 재미로라도 여는데 동네에 젊은이들이 없응게 손님도 없고. 이 동네 목욕탕이 전부 다섯 갠가 있었는데 다 문 닫고 이제 우리가 마지막인데. 큰 고장이나 나면 문을 작정하고 닫을라 해도 관리가 잘 돼가 그런가 우째 고장도 안 나고 그렇네요."


살뜰한 손길이 수도 없이 닿았을 욕조.


"문 닫을라꼬 하니 서운키는 한데, 마 그래도 나는 여기에 만족합니다. 1남 3녀가 있는데 전부 대학 공부시키고 손주들도 학교 다니고 공부 잘하고 건강하면 그걸로 내 인생은 됐다꼬, 그것으로 족하게 여겨야지요. 그게 살아온 보람이고 행복이었으니까요."



목욕탕 굴뚝과 겹벚꽃이 있었던 2019년 옥수탕의 봄.


긴 세월을 담담히 풀어놓고, 객의 궁금증을 위해 흔쾌히 청소를 마친 뒤의 목욕탕까지 보여주신 사장님은 바깥 평상에 걸터앉아 목욕탕을 한참 바라보다 말씀을 이어가셨다. 


"인생 특별할 거 없지요. 나는 목욕탕 덕에 부지런히 살았고 또 그 덕에 자식도 키웠고 그런거지요. 감사하고 보람찬 일이지. 참, 우리 큰 손주가 공부를 참 잘해서 영재 소리도 들었고 좋은 대학교에 가서 지금 공부 중인데 그 생각만 하면 참 좋다. 자식들이 다 건강하고 잘 컸어요."


때마침 삼대가 모두 모이는 시간이었는지 어른과 아이들 목소리로 골목이 시끌벅적했다. 마당에선 가족들이 머리를 맞대고 불판에 불을 피우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사장님의 뒷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이 입간판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찬바람 불면 꼭 다시 찾아가고 싶지만 언제까지 허락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1971년 9월 23일생 목욕탕은 2019년 7월 16일부로 당분간 휴업에 들어간다. 가을에 문을 다시 열겠지만 내년부터는 더 이상 문을 열지 않겠다고 하셨다. 찬바람 불면 찾겠노라 약속드렸는데 올해 안에 다시 몸을 담글 수 있을까.


누군가의 가장 치열했던 삶이 담긴 공간의 의미를, 잠시 다녀가는 객이 헤아릴 수 없겠지만 그럼에도 듣고 싶었다. 기록되지 않고 숨어있는 목욕탕의 뒷이야기를. 그렇다면 정말 고생 많았다고, 이제 푹 쉬라고, 못내 서운해도 진심으로 안녕을 고할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마지막으로 사장님께 인사를 건넸다. "부디 건강하세요. 살뜰한 손길 덕에 행복했습니다."



목욕탕 정보

옥수탕 ㅣ 경남 창원시 진해구 충장로445번길 6

5:30~18:30(조기 마감 시 14~15시경 까지 영업) ㅣ 대인 3,500원, 소인 2,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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