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건 '물건'이 아니라 '미련'

미련은 마지막까지 가장 늦게 남는 물건이다.

by 온 세상이 내 편


고아가 된 집

4개월 전 세입자가 나간 Paris 집에 거의 5년 만에 들어왔다.

새로 사서 한 번 살아보지도 못하고 급하게 세주고 떠났던 집이다.

집을 살 때 마음에 담아뒀던 설렘과 뿌듯함은 아직도 내 가슴 한 켠에 살아있는데, 실재의 그 집은 더 이상 기억 속의 집이 아니었다.

빈집이라고 하기엔 상태가 꽤 심각했고, 남아 있는 건 너무 많았다.

그리고 남긴 그 대부분은 멀쩡하지 않았다.


식기세척기는 5분쯤 돌아가다 버튼이 깜빡이며 멈췄고, 청소기는 굉음을 내며 돌아가기만 할 뿐 흡입은 되지 않았다.

필터를 가져간 건지, 고장을 낸 건지 사용하지 않은 채 멀쩡한 척 있던 자리에 세워두고, 자동차용 작은 충전용 청소기를 사용해 온 흔적이…

TV는 켜지지 않았고, 리모컨은 사라졌다.

전기주전자며 냄비는 모조리 가져가고, 욕실은 물 때와 곰팡이가 눌러앉아 있었다.

세탁기는 급하게 수건부터 좀 증기세탁을 하려고 문을 열고 유리문 안쪽을 티슈로 한 번 닦아내는 데 새까맣다. (도저히 그대로 쓰기 찝찝해서 빈 채로 세제 넣고 돌렸다)

언제부터일까… 한 번도 닦지 않은 모양새다. 버튼 틈새마다 낀 먼지뭉치들…


겉은 멀쩡한데, 안은 완전히 망가진 집.

눈속임만 남은 상태였다.

남의 집도 세 내고 쓰는 동안에는 내 집인 건데 아니, 이렇게 다 망가지고 되는 게 없이 본인이 당장 불편해서 어떻게 살았을까?…


관리 맡겼던 부동산에도 화가 났지만, 이내 반성했다.

‘관리’란 내가 해야 하는 거지 남은 절대 내 맘처럼, 내 것같이 관리해주지 않는다.

주인의 마음과 손길이 멀어진 순간 그 집은 고아나 다름없다. 떨어져 있다는 이유로 너무 안 챙기고 살았다.

'하다 못해 돈 백만 원하는 휴대폰도 애지중지 관리하면서 전 재산이랄 할 수 있는 집에 왜 이렇게 맘을 쓰지 않았을까'… 내 잘못이다.


뉘우치고 반성하며 며칠 동안, 있는 내내 청소만 했다.

취리히로 돌아갈 일정을 미루고, 식기 세척기, TV 등 고쳐보겠다고 공구도 사고 부품도 찾아가며 분해도 해 봤고, 눈에 띄는 곳마다 계속 쓸고 닦았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집을 정리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시간을 정리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Good Bye – 작별의 명단

약속했던 기록을 꺼낸다. 미련 없이 비워낸 물건들의 목록을.


▪︎고장 난 가전제품들 - 공구까지 사 와서 하루 종일 붙잡았지만, 결국 안 됐다. (기능을 못하는 물건은 더 이상 물건이 아니라 폐품이다)


▪︎창고에 있던, 최근 10년 동안 한 번도 안 입은 옷들 전부.

유행이 다시 올 거라 믿었던 양복 포함. (한 번 손이 안 가기 시작한 옷들을 세월이 지나서 다시 입는 예는 없었다.)


▪︎예뻐서 샀지만 계절마다 꺼내지지 않던 이불보, 침대보 (한 번 이사할 때마다 침대가 바뀌니, 사이즈가 달라져서 결국 두 번 쓸 기회가 오지 않았다)


▪︎선물 받아서 ‘언젠가’ 쓰려고 모셔둔 식기, 선물 바구니, 은식기 세트는 다 녹이 슨 채로… 30년이 다 되도록 모셔만 뒀고 결국은 꺼내 쓰지 못했다


▪︎기타 집 공사 하면서 남았던 타일들, 페인트, 복고풍 샹들리에…


정리하다 보니 알겠다.

일단 한 번 손에서 떠난 채, 3년 동안 두 번 다시 안 쓴 건, 앞으로도 안 쓴다. - 아니, 어딘가에 있다는 사실도 완전히 잊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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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보다 더 많이 보이던 것

청소를 하다 보니 고장 난 가전보다 더 많이 보이던 게 있었다.

물건의 ‘상태’였다.


완전히 망가진 것들은 오히려 버리기 쉬웠다.

문제는 애매한 것들이었다.

돌아가긴 하는데 쓸 수 없는 것들, 고칠 수 있을 것 같은데 늘 미뤄둔 것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사람이 고장 난 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아직 쓸 수 있어서가 아니다.

고장 난 물건은,

“그래도 한때는 멀쩡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 물건을 샀던 시기, 잘 쓰던 때의 나, 그때는 괜찮았다는 기억.


버리지 못하는 건 물건이 아니라시절의 나를 완전히 놓지 못해서다.


친정의 ‘문간방’

친정에 가면 늘 같은 방이 있다. '문간방'이라고 부르는 방.

친정도 몇 번 번 이사를 했지만 어느 곳으로 이사를 가도 그 문간방은 늘 존재한다.


고장 난 선풍기, 쓰지 않는 가전, 유행이 지나 더는 입을 수 없는 아빠의 젊은 시절 양복, 사진 앨범이며 상자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우리들이 클 때 받은 상장, 트로피, 심지어 선물로 드렸던 종이로 접은 카네이션까지 몽땅 다 그 방에 있다.

그 방은 아무도 자지 않고 하다 못해 책상 하나조차 놓을 수가 없다.

짐이 다 차지한 방이다. - 생각해 보면 공간 낭비다.

아예 방 하나 덜 있는 집을 사면 집 가격이 확 떨어질 텐데. 방 하나 더 있는 만큼 가격을 더 비싸게 주고선 그 방을 짐에다 내주다니.


버리자고 하면 늘 같은 말이 돌아온다.

“얘, 아직 쓸 수 있어.”

“일단 둬봐. 언젠가 필요할 수도 있지.”


그런데 그 언젠가는, 오지 않는다는 걸 우리 모두 알고 있다.


풍수와 정리

동양철학이나 풍수에서는 고장 나고 쓰지 않는 물건이 쌓인 집을 '기운이 막힌 집'으로 본다고 한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평소엔 그런 얘기에 민감한 편이다. 꼭 믿어서가 아니라 ‘안 좋다는 건 굳이 하지 말자’라는 주의다.

재밌는 건, 그런 거 안 믿는다는 사람들조차 희한하게도 집을 사거나, 이사를 하거나, 어디에 터를 잡으려 할 때만큼은 평소엔 거들떠보지도 않던 풍수 이야기를 꺼내 든다.


방향이 어떻고, 물길이 어떻고, 빛이 어디로 드는지 따져보면서 말이다.

그런데 풍수에서 가장 먼저 말하는 건 의외로 대단한 게 아니다.


정리다.

비워내고, 흐르게 하는 것. 그게 모든 판단의 출발이라고 한다.


이번에 며칠 동안 집을 닦고, 버리고, 정리하다 보니 그 말이 아주 깊이 이해가 됐다.

고장 난 물건, 쓰지 않는 물건들은 공간만 차지하는 게 아니었다.

그 안에는 쓰지 않게 된 시간, 미뤄둔 결정, 지나간 시절이 같이 눌러앉아 있었다.


흐르지 않는 물건은 기억을 붙잡고, 사람을 그 자리에 멈춰 세운다.

정리되지 않은 집은 과거가 계속 현재를 점령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풍수에서 말하는 ‘기운’이라는 게 사실은 아주 현실적인 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워야 흐르고, 흘러야 다음이 들어온다는 뜻이라는 걸.


'물건'이 아니라 '가능성'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는 물건을 쌓아둔 게 아니라, ‘가능성’을 쌓아두고 있었다.

언젠가 입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언젠가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언젠가 필요해질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하지만 그 가능성들은 삶을 넓혀주기보다 공간과 마음을 막고 있었다.


‘언젠가’라는 말은 생각보다 잔인하다.

희망처럼 들리지만 실은 결정을 미루는 가장 부드러운 핑계다.


가능성을 쌓아두는 동안 현재는 선택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렇게 정리했다

이번에는 ‘아까운가’가 아니라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가’로 남길 걸 골랐다. 그리고 남기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는 미련을 두지 않기로 했다.


잘못 산 것도 아니고, 낭비한 것도 아니고, 그때의 나는 ‘그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지금의 나는 이제 다른 걸 원하고 있을 뿐이고.




【오늘의 단상】

- 정리의 끝에서 -


이제는 안다.

버리는 건 잃는 일이 아니다.

지금의 나에게 맞지 않는 것을

정직하게 인정하는 일이다.


집에 여백이 생겨야

삶에도 새로운 게 들어온다.


정리하면서 알게 된 건

비워야 할 건 물건이 아니라

계속 미뤄두던 결정들이었다는 사실이다.

언젠가 쓰겠다고 남겨둔 것들,

언젠가 필요해질 거라 붙잡아 둔 것들 사이에서

나는 계속 현재를 유예하고 있었다.


언젠가를 안고 사느라

지금을 놓치고 있었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물건을 정리하며, 기억을 정리하며, 1년을 정리하며…

From Pari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