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을 상실한 전문대학, 선수 탓만 하는 감독이다.
축구나 야구 등 스포츠 경기에서는 이길 수도, 질 수도 있다. 우리는 상식적으로 패배의 책임을 모두 선수들에게만 돌리지는 않는다. 만약 그렇다면 감독이나 구단 프런트는 존재할 이유가 없게 된다. 하지만 지금의 전문대학을 보면 경기에서 패배를 해도, 순위가 떨어져도, 관중이 줄어도 모두 선수, 즉 교수에게 책임을 묻는 분위기다.
실제로 경기하는 장면을 보더라도 각 선수들이 나름의 위치와 역할을 갖고 움직인다. 이 역시 현재의 전문대학과 비교하면 축구 경기가 훨씬 합리적이고 체계적이다. 지금의 전문대학은 음식 만들 조리사를 채용해 놓고는 음식도 만들어라, 홀에서 서빙도 해라, 거리에 나가서 손님도 끌어와라 같은 다양한 역할을 요구한다. 오히려 음식 맛은 이 식당이나 저 식당이나 다 거기서 거기이니 조리는 대충 하면 된다는 분위기다.
이러한 분위기의 배경에는 전적으로 대학 본부나 경영자의 책임으로만 물을 수는 없는 사회적 상황에서 비롯된 측면이 분명히 있다. 그렇지만 다른 영역에서는 발생하는 혁신이 유독 전문대학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것은 전문대학 구성원들이 살펴봐야 할 일이다. 충원율이 떨어져도, 취업률이 하락해도, 학생 만족도가 낮아도 모든 화살은 교수를 향한다. 마치 감독도 코치도 없는 경기장에서 선수들만 뛰고 있는 형국이다.
아래 차트는 비수도권 5개 전문대학의 업적평가 규정을 비교한 것이다. 크게 교육 및 학생생활지도 항목(파랑색), 충원율 및 취업률 등 실적 지표 관련 항목(주황색), 산학협력 및 봉사활동 관련 항목(초록색) 등 3개 영역으로 비교했다. E대학을 제외하고는 교수의 본업인 교육 영역의 비중이 20%에 미치지 못했다. 이 수치도 학생 생활지도를 포함한 것이다. 특히 B대학은 7%에 불과했다.
졸업생 취업률, 신입생 충원률은 교수 개인의 노력으로 달성하기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고, 정확한 측정도 불가능한 지표다. 이런 지표로 개인의 업적을 측정한다는 것 자체가 비중이 크든 작든 모순이다. 더군다나 B대학은 취업률이나 충원률이 총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9%나 된다. 교육보다 7배나 중요하게 여긴다. 물론 학과나 대학도 생존해야 하지만, 이윤을 추구하는 민간기업도 아니다. 공공성을 갖기 때문에 매년 거액의 국가 보조금도 받고 있다. 그렇지만 학생이 없으면 어떻게 교육을 할 거냐라는 주장이 모든 것에 앞선다. 공공성을 가진 기관으로 사회적 책무가 있고 실질적으로 정부의 재정 지원도 받고 있다는 점을 잊고 있는 듯하다.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일에서 의미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현재 전문대학 교수에게 요구되는 많은 일들이 그러한 기능을 하는지는 의문스럽다. 입학생 모집을 위해 고교를 방문하는 일, 취업률을 올리기 위해 산업체를 방문하는 일을 비롯하여 비합리적이거나 시대에 맞지 않거나 효과가 없는 이른바 가짜 노동을 반복해야 하는 상황은 없어져야 한다.
이러한 단순한 활동 외에 많은 문서화 작업도 해야 한다. 교육과정 개발 계획서, 교과목 CQI 작성, 교육과정 운영 성과 검증, 재학생 만족도 조사 결과에 대한 대응방안 수립 등 꽤 많고, 겉보기엔 체계적이고 작성률도 100%다. 그렇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전년도 문서를 복사하여 붙여넣기한 흔적이 역력하다. '개선의 도구'가 아니라 '평가 대응용 서류 생산 시스템'이 되어버렸다. 진짜 문제를 발견하고 새로운 시도를 할 여력은 사라진 지 오래다.
측정 또한 무의미하다. 교육 프로그램의 성과를 만족도로 판단하고 만다. 고급스럽고 맛있는 간식을 줘도 학생은 만족한다고 답할 수 있고, 에어컨이 고장 나서 수업 시간에 더웠다면 불만족한다고 답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측정 지표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발견할 수 없었다. 즉, 무의미한 측정만 반복되고 엉터리 결과가 누적된다. 성과를 직접 측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만족도만 묻는 관행이 굳어지면, 개선점 탐색이 아니라 실적 포장을 위한 조사로 변질되기 쉽다. 현장의 제안과 고충을 정책으로 연결하기보다 형식 요건만 점검하는 문화가 강하면, 교수는 '의미 있는 시도'의 기대를 접고 수동화된다.
대부분 대학에서는 교무, 학생, 입학, 산학, 기획 등 5명 정도의 핵심 보직교수들이 있을 것이다. 대학마다 사정은 다르겠지만, 내가 개인적으로 경험했던 보직교수들에게서는 역량이든 인품이든 안타까움과 답답함이 동시에 느껴진 경우가 많았다. 나는 적어도 아래 두 가지는 보직교수가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보직교수들은 적극적으로 학습해서 담당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규모가 큰 일반대학이라면 교육학과 교수가 교무처장을 하고, 언론홍보학과 교수가 입학처장을 담당하면 나름 전문성을 갖출 수도 있다. 그렇지만 전문대학은 쉽지 않다. 공학이나 보건 출신 교수가 취업처장이나 입학처장을 할 수 있다. 그러면 보직을 맡는 순간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한 치열한 학습을 해야 한다. 이런 전문성은 정책의 합리성을 통해 드러난다. 단순히 관행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 대다수가 논리적으로 수긍할 수 있는 정책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전문 지식을 갖춰야 한다.
둘째, 보직교수가 아무리 전문성을 갖춰도 모든 상황에서 완벽할 수는 없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직간접적으로 전해지는 전체 교수의 의견과 제안을 두루 들어야 한다. 꼭 직접 만나라는 얘기는 아니다. 학과에서 만든 각종 보고서를 볼 수 있고, 업적평가를 위한 개인별 자료를 모두 접할 수 있는 권한이 보직교수에게 있다. 이런 것들을 잘 살펴보면 활용할 만한 제안이나 아이디어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회의록에 영수증과 사진이 있는가만 따지고, 평가항목에 포함되지 않으면 아무리 의미 있는 시도라도 거들떠보지 않는 상황이 안타깝고 답답하다. 현장의 고충과 개선 제안을 찾아내어, 이를 대학 본부의 정책으로 연결하는 통찰력이 필요하다.
물론 대학도 생존해야 한다. 학과도 지속 가능해야 한다. 하지만 전문대학은 이윤 추구 기업이 아니다. 공공성을 가진 기관이고, 매년 거액의 국고 보조금을 받는다.
"학생이 없으면 교육을 어떻게 할 수 있느냐"는 논리가 모든 것에 앞서지만, 대학 본부는 자신들이 사회적 책무를 가진 기관임을 잊고 있는 듯하다. 대학 본부는 늘 학과별 취업률과 등록자 수와 충원률로 학과를 경쟁시킨다.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면서도 대외적으로 아무리 좋은 평가를 받아도 충원 지표가 미달이면 가장 먼저 폐과 대상이 된다. 공적 자금을 지원받고, 대학의 자율성은 최대한으로 요구하면서, 공공적인 교육기관으로서의 성격은 잊는다.
좋은 음식을 만드는 건 결국 조리사다. 하지만 그런 조리사는 식당 주인이 만든 분위기와 제도에서 나온다. 좋은 학생을 길러내는 건 결국 교수다. 하지만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교수는 대학의 분위기와 시스템이 만든다.
지금 전문대학에 필요한 건 더 많은 서류도, 더 복잡한 평가 지표도 아니다. 교수가 다시 교육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 그리고 그것을 제대로 평가하고 지원하는 시스템이다.
혁신은 다른 영역에서는 계속 일어나고 있다. 왜 유독 전문대학에서만 멈춰 있는가. 이제 전문대학 구성원 모두가 함께 살펴봐야 할 때다.